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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Sep 04. 2020

2. 바퀴

#90일간의글쓰기대장정 #그냥쓰기

#90일간의글쓰기대장정 #그냥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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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잠들려고 누워있다가 옆구리가 간지러웠다. 쎄한 기분이 들었다. 내 옆에는 옆구리를 긁을 만한 존재가 없었다. 일어나서 불을 켜니 검은색 윤기나는 껍데기 3개가 혼비백산. 색과 크기를 보아하니 바퀴벌레다. 3마리가 지나갔다. 그중 한 녀석이 길을 지나다가 내 옆구리를 긁었다. 아마 가는 길이니 좀 비켜보라는 뜻이었겠지. 그 작은 노크에 기겁을 했다. 나보다 수백 배는 작은 파충류가 왜 그리 무서운지 모르겠지만. 흉측하고 무서웠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부엌으로 대피했다. 확인해보니 작은 녀석 2마리에, 중간 크기 1마리 총 3마리. 동생에게 소식을 알렸다. 동생은 터벅터벅 걸어가서 에프킬라를 분사하더니 혼비백산 도망치는 바퀴벌레들을 소탕했다. '퍽! 퍽! 퍽!' 폭력과 죽음의 소리만 가득했다. 


동생에게 큰 감사를 표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다시 누우니 매캐한 에프킬라 냄새가 가득했다. 모기를 잡기 위한 홈 메트까지 켜두니 화학약품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다. 눈이 따갑고, 몸이 마취되어가는 느낌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동안은 내 옆구리를 노크하는 바퀴벌레는 없을 테니. 그 불편함과 공포를 없애고 얻은 대가치고는 가벼웠다. 그네들에게는 치명적이지만 나에게는 언짢은 정도이니까. 


바퀴벌레보다 수백 배 큰 인간과 대화도 하고 일도 하면서 그 작은 녀석들은 어찌나 무서운지. 볼 때마다 무서워서 놀라고, 놀래는 내 모습을 보고 한 번 더 놀란다. 어디서 주워들은 진화심리학 지식 쪼가리에 따르면 고대 인류들이 바퀴벌레 같은 해충들을 먹거나 접근해서 세균에 감염되어서 죽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DNA에 각인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사람이 차는 안 무서워하고 무단횡단을 하면서, 차보다 훨씬 덜 위험한 뱀을 보고서는 그토록 혼비백산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사실인지 확인은 안 해봤지만 그럴듯해서 믿고 있는 중이다. 하여튼, 왜 바퀴벌레는 무서울까. 


아마도 이질감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와 가깝지 않다고 여길수록 쉽게 무서워한다. '무섭다' '공포스럽다'라고 표현하지만 그 감정은 실은 혐오다. 접근조차 하고 싶지 않은 존재로 취급하는 것. 우리는 다양한 존재들을 다양하게 혐오한다. 사무직은 생산직을, 중년은 청소년을, 남성은 여성을,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의사는 간호사를. 일반화할 수 없지만 하나도 없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것. 혐오는 개인의 마음 안에, 사회 속에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여름철 길가는 노동자의 땀 냄새를 맡고서 고개를 돌리고 인상을 찌푸린 기억, 새벽에 생활 쓰레기를 수거하는 노동자를 보고 길을 돌아갔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


빙글빙글 돌아왔지만 어쨌든. 난 바퀴벌레는 혐오하는 것 같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 갈색 뒤통수를 도통 애정 할 수 없다. 예전보다 덜 난리 치긴 하지만 여전히 무섭다. 내가 방에서 사라지든, 바퀴벌레는 없애버리든 공존은 없다. 폭력과 파괴만 있을 뿐. 자랑은 아니지만 녀석들은 너무 빠르고 무서우니까. 예전에 농활 가서 신부님에게 '모기도 생명인데 죽여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신부님 왈 '모기가 생겨나는 이유는 인간이 환경을 더럽히기 때문이니 그들을 없애버리는 것도 우리 책임이죠 껄껄. 모기를 죽여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모기가 나타나는 환경을 만들어서 지옥에 가는 거지요.'


그렇다. 바퀴벌레는 죽여서가 아니라, 바퀴벌레가 생존할 만한 관리하지 않은 방가라지가 문제다. 바퀴벌레가 생겨난 것조차 내가 지옥에 가까워졌다니 증표이거나, 이미 그곳에 좌석을 예매했다는 증거. 어차피 갈 지옥 자다가 바퀴벌레한테 옆구리 찔리며 살고 싶지 않으니 돌아다니는 녀석들은 처단하고, 청소라도 부지런히 해서 치우고 살아야겄다. 미안하지만, 일단 나는 살아야겠어.


https://blog.naver.com/daehee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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