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복귀족 군벌귀족 학벌귀족(?)

유독 대학생들의 '옷'을 가지고 난리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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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과잠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각 대학의 명칭과 상징을 걸고서 높은 위치에 있는 대학생들은 자랑스럽게 과잠을 입고 다니고 그렇지 못한 대학생들은 과잠을 입지 않았다. 입는 경우에도 학교의 이름과 과잠을 디자인을 통해서 서로를 서열화한다. 그런의미에서 과잠을 당당하게 어느 순간에나 입을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선 서울대 뿐이다. 요즘에는 서울대학교 내부에서도 인문계와 검정고시 출신 등과 구분짓기 위해서 본인들의 출신고등학교를 함께 병기하는 일도 있다. 계속해서 칼로 내부를 자르고 자르고 토막내는 철저한 위계사회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탄을 했다. "사회가 젊은이를 망쳤다.."부터 시작해서 "젊은 대학생들이 저렇게 하면 안된다. 대학도 썩었다." "우리때 대학생들은 연대했지 저렇게 하지 않았다"와 같은 꼰대도 간간히 섞여있었다.


나도 계속해서 학벌로 위계를 세우는 이런 행위들은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잠은 한국의 학생들이 계속해서 경쟁논리와 적자생존의 논리에 꾸준히 길들여지고, 경제적으로도 살아남기 힘든 사회가 도래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과잠을 입어서 세상이 망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망해서 과잠이라도 입어서 살아남고자 하는 것이다. '현상'인 것을 마치 '원인'인 것으로 둔갑시켜서 비난하고 걱정하는 시선들은 이런 현상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더욱더 내집단 의식을 강화시켜서 이 것을 정말 '문제'로 만드는 것에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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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의문인 것은 왜 '과잠'만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초중고교복은 노골적으로 청소년시기의 학벌을 결정한다. 교복하나로 그 사람이 사는 집의 가격, 학군, 부모의 교육 수준 등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이 교복을 통해서 사람이 구별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한다. 서울대학교 내에서 고등학교 이름을 적어서 차이를 두려고 하는 것 처럼, 초중고내에서는 교복위에 비싼 외투를 입어서 그 차이를 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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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복을 없애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교복에 대해서 청소년시기의 학벌에 대한 갈망이나 차별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도리어 공부에 동기부여가 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학생의 단정함과 '학내 질서 확립'을 이유로 획일화된 옷을 입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옷을 완전히 자유롭게 하며 돈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극심해져서 학생들이 더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마지막 이야기가 교복이 존재해야하는 이유 중에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에 무상교복 정책들이 등장하면서 마지막 이야기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교복은 최대한 차별을 줄이기 위한 것이 일부분이라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 단체복들은 왜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대표적으로 법원에서 판사 검사들이 입는 법복과 군인들이 입은 군복이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군복도 군대의 특성상 집단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적과 아군의 구분을 위해서 동일한 유니폼을 착용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하지만 법원에서 판사와 검사들은 왜 법복을 입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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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재판장에서 그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함일 것이다. 중세말 근대초의 법복귀족 부르주아들 때 부터 입었던 것이 21세기인 지금도 남아있다. 세상과 법은 민주화 되었지만 정작 법을 집행하는 기관과 사람들은 전혀 '민주화'되고 있지 않고, 본인들도 그러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의 상징이다. 일개 대학생들보다 훨씬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판사들의 법복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위계를 조장한다거나 재판장에서의 평등을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하지 않으면서 대학생들의 과잠하나에는 세상이 망할 것 처럼 떠드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재판장의 판사들이 법복을 입고 피고인들과 법위에 군림하려 들고 버티고 있으니 세상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뒤로 망해가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자들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신보다 만만하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에게만 책임과 의무의 화살을 던지는 것은 비겁한 행위다. 학벌은 귀족이 될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과잠처럼 차이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렇게 옷 가지고 차별하고 위계서열 짓는게 싫다면 일단 판사검사 법복부터 벗기자. 세상의 진보를 '옷'가지고 굳이 이루고 싶다면 과잠을 욕하고 벗기지 말고, 군복을 입는 집단을 줄이고, 법복을 입는 사람들의 옷을 벗기자. 그게 먼저다. 그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어쩌면 과잠을 입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이 대학을 다닐지도 모른다.



*법복귀족

법복귀족(法服貴族, 프랑스어: Noblesse de robe)은 사법적 행정적 권한을 유지함으로써 발생한 프랑스의 귀족들이다. 이러한 법복귀족들은 정통귀족, 즉 공후백자남의 작위를 가진 이들과는 출신이 달랐으며(물론 법복귀족 개개인이 작위를 가질 수는 있었다), 거의 모두 특정한 관직과 관계된 존재로 남았다. 그들의 관직은 세습이 가능했으며, 1789년에 이르면 거의 모든 법복귀족들이 상속을 통해 지위를 물려주고 물려받았다. 가장 영향력 있는 법복귀족들은 전국 13개소 고등법원이나 왕실 추밀원에 속해 있는 1,100 명의 귀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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