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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pr 05. 2018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공부

책<호모 쿵푸스>를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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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없지만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르게 되는 날이 있다. 어떤 책을 사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발이 향해서 느낌이 그래서 간다. 이 책을 비롯하여 10여권의 책을 그렇게 한 날 한시에 구매했다. 돈은 없었고, 생활비가 줄었지만 기분은 좋고 마음은 든든했다. 책이니까 괜찮다. 난 책에게 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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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회를 엄청 열심히 하던 시절부터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다. 예전에 하던 학회의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기도 했고, 책 제목부터가 자극적(?)이어서 더욱 그랬다. 공부를 그저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달인'이라니! 나에겐 이보다 자극적일 수가 없었다. 책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통해서 사람들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나에게는 특히 더 끌리는 책이었다.

이 책은 '호모'시리즈 중에 하나이다. 사랑의 달인, 놀이의 달인, 언어의 달인, 돈과 화폐의 달인 등 다양한 '호모'달인 시리즈가 있다. 다른 책들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달인'이라는 단어가 제일 처음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이름이 '달인'이기도 했고, 늘 어떤 분야에서 '달인'이 되고 싶었다. 달인이란 통상 어떤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자라고 말한다. 어떤 분야든 본인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야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분야의 '달인'이 되고 싶어 한다. 나는 '공부' 그중에서도 책을 읽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사랑한다. 책은 그 달인이 되는 길을 나에게 어렴풋이 나마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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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전혀 어렵게 쓰여있지 않다. 평이한 문체들로 '독서'는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한다. 저자는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책에서 '독서는 곧 존재다'라고까지 표현한다. 비약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저자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책을 읽는 것은 가장 위대한 스승과 독대하는 것이고, 가장 친한 친구를 만드는 것이고, 세상만물 모든 것과 만날 수 있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부'라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공부의 개념보다는 확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부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펴고 문제를 풀거나, 글을 읽는 것이다. 책은 이것도 공부이긴 하지만, 공부는 그것을 넘어서서 확장되고,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통해서 하는 것이라 말한다. 공부를 '몸'으로 한다니 처음 들으면 도통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그런 '몸'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엉덩이'로 상징되는 버티는 힘, 인내심도 공부의 요소이고, 그 자체도 공부이다. 다만, 여기서 엉덩이로 상징되는 것은 공부를 위해 도구화되는 것이다. 공부를 위해서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이지, 엉덩이를 버티고 있는 그 자체를 공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에서는 엉덩이를 붙이는 것과 책을 읽는 것 그것이 어느 하나를 위해 도구화 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그 자체로서 공부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고 절제하는 것 역시 눈으로 책을 읽는 것 만큼이나 매우 중요한 공부인 것이다.

또 책에서는 책을 '함께' '소리내어 읽기'를 강조한다. 저자는 동양고전연구자이고, 책에서도 서양고전과 책에만 빠져있는 '편향'에서 벗어나서 동양고전을 읽고 그 속의 지혜를 탐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지혜를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사람들과 고전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엉덩이'로 하는 공부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간 공부이다. 이 방법은 예로부터 동양인들이 공부를 해온 방식이다. 쿠란,불경,천자문등등 동양의 고전들은 암송을 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전해진 것들이 많다. 한국의 사극을 보아도 선비들이 다같이 모여서 경전을 소리내어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책은 쓰여지고 만들어진 방법대로 공부하는 것이 최고라고 한다. 애초에 함께 소리내어 읽고 이야기하며 만들어진 동양 고전을 공부하는 방법에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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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공부의 비법으로 제시 되는 것은 '네트워킹'이 있다. 혼자 모든 학문을 다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전공의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망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동양고전전공자 이지만, 서양철학자인 니체의 사상에 대해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 다른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묻고, 맑스의 사상이 궁금할 때에는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물어보고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학습의 공동체(코뮌)은 혼자서만 공부했을 때는 만들기 힘든 깊이와 넓이를 가질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배움을 나누어주고 받는 과정에서 각자의 역량도 커져가는 공부야말로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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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신선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늘 서양에서 시작된 책과 생각들을 많이 읽었고, 동양의 철학들은 억압적이라거나 구리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작 제대로 그것을 공부해본 적은 없었다. 책은 읽기 나름이고, 근기를 가지고 공부한다면 동양의 고전들에서도 위대한 삶의 지혜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참에 동양고전들을 조금씩 읽어보아야 겠다. 학습의 코뮌을 만들어보라는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항상 꿈꾸는 나의 공동체는 책과 말이 넘실거리는 곳이었다. 그것의 구체적인 상을 하나 얻어간다.

읽으면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저자는 제도교육(정규학교, 대학)등의 교육으로는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탈학교 대안교육을 더욱 활성화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나도 다양한 교육의 주체들이 교육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교육은 사회적 공공성을 지녀야만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나 기존의 학교들로는 어려우니 탈학교 하자는 것은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것이다. 지금도 대안학교들이 있지만 국가의 지원이 적은 등의 이유로 학비가 비싸서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절대로 그곳에 갈 수 없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 진정한 '공부'의 길이라는 것은 맛볼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서 천하를 얻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불행해지는 것이다. 개인적인 결단들을 통해서 공부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정보를 얻고 결단을 할 수 있는 것도 최소한의 물적토대의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돈이 없으면 정보도 없고, 결단을 할 만한 근거도 없다. 조금은 타협하더라도 대학과 기존학교의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고, 교육 전반에 대한 공공성을 더욱 강화해서 이러한 공부법들을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가 연구하고 있는 수유너머를 비롯하여 자유로운 학술자들의 네트워크는 온통 한강 위에만 가득하다. 나도 서울의 여러 학술 공동체에서 열리는 강연이나, 간담회, 세미나에 참여하고 싶지만 부산에 살아가는 나는 불가능하다. 부산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강연을 듣기 위해서 왕복으로 10만원이 넘는 차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불합리하다. 부산에서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란 쉽지도 않고, 조금 하려고하면 공부를 위해서 부산을 떠나야한다. 부산에는 인문사회연구기관도 거의 없고, 부산대학교를 제외하면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과 자체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부산에 철학과라는 이름으로 과가 있는 곳은 오로지 '부산대학교' 단 하나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단이니, 공부니, 공부는 스스로가 하는 것이니 따위는 너무 가혹한 처사아닌가. 한강 밑에 사는 사람들, 학교에서 가는 수행여행비도 없어서 힘들어해야하는 사람들을 공부와 어떻게 만날 수 있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 이 글은 저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발행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daehee756/22124012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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