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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pr 14. 2018

'성정체성'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전혀 다른 삶

'제시카 발렌티'의 <성적 대상>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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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대상>을 읽었다. 처음 제목만 보았을 때, '성적 대상화'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한 책이라 생각했다. '대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늘 하고 있어서(모든 대상화는 나쁜 것인가, 대상화를 해서 안된다면 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등등) 대여했다. 책 내용을 들여다보니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저자인 제시카 발렌티가 자신의 경험이라는 '특별한 내용'들로 여성들의 삶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드러내려 한다. 남성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책의 내용 중에는 충격적인 것들이 많았다. '지하철에서 어떤 남성이 자신의 뒷주머니에 정액을 넣고 사라졌다.' '길을 가던 남성이 자신의 자지를 입으로 빨라고 했다' 등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화들이 등장한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저자에게는 평생의 일상이었고, 수 많은 여성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책에서 등장하는 저자의 삶의 이야기는 타인이 보기에는 '청교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의 입장에서는 불편했다. 학교 교정에서 마약을 하고, 꾸준히 마약을 집으로 배달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 핀다. 밤이 되면 의식을 잃을 때 까지 술을 먹고, 스트립클럽에가서 처음 만나는 남자와 섹스를 하기도 한다. 책 표지에 있는 저자 소개만을 보고 '대학을 나와서' '글을 쓰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에 강한 충격을 가했다. 고정관념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마약을 하고 술을 먹으면서 여러 남자와 만나는 여성'의 이야기를 만나니 편견은 강하게 작동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페미니스트를 어떤 고정된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학력이 높고, 글을 잘 쓰고, 깔끔하고 평범한 외형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페미니즘을 책으로 마주하고, 대학생 활동가를 중심으로 마주해서 생긴 편견이다. 이런 전형적인 모습을 정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 생각했다. 내 생각 속에 여전히 편견이 많이 남아있음을 마주했다. '옷을 그렇게 입었으니 성추행을 당하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과는 나는 전혀 다른 인간이라 생각했지만, 나의 머릿 속에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사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부끄럽기도하고, 놀랍기도 하고, 많이 반성하기도 했다. 난 여전히 차별을 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으면 머리가 깨지는 것과 같은 감각을 느껴야 한다고들 한다. 나에게는 이 책이 그 감각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감각하는 '평등'은 여전히 모든 인간에게 주어져야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한 전형에게 주어지는 '조건형'이다. '모두에게' 어떤 복지나 혜택을 주어야한다고 자주 이야기했지만, 그 '모두'는 어떤 기준을 통과한 인간들이었다. 길가면서 담배를 피고,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은 그 '모두'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나의 역사에서 경험적으로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나 모습에 대해 더 신중하게 바라보는 연습이 나의 '모두'에 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시키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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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나와 비슷한 사고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당한 상처가 있다. 그 이후로 사람을 공포스러워하고, 불안해한다. 집도 부유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상처를 받은 역사가 있고 지금도 불안에 시달린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저자는 여성이라는 성으로 인해서 나보다 더 많은 상처가 있다. 낙태를 하고, 임신 위험에 시달리고, 성폭행의 위험이 노출되고, 자신의 외모에 대해 끊임없이 자학한다. 아마, 여성이라는 이유 뿐 아니라 미국사회와 한국사회의 차이, 백인과 황인종, 영어권문화 등등 더 많은 차이들이 저자와 나의 다른 경험들을 구성했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낙태, 임신, 성폭행, 가슴, 성희롱 등 한국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서 살아가는 '남성'인 나는 평생 고민할 일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 지금은 저자가 작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어느 정도 입지를 가져도 여전히 위협을 느낀다. 분명한 '성'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있다. 나라면 '억울하다'는 감정도 느낄 것 같다. 

이런 '성'에서 나타나는 차별과 위협을 '남성'으로서 살아가는 나는 어떻게 함께 저항할 수 있을지 늘 고민이다. 내가 당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앞에 나서기도 피해가 될 것 같아 쉽지 않다.
다만, 추상적인 수준에서나마 여성이 노출되는 폭력과 차별에 대해서 함께 저항하고 고민할 수 있는 남성들을 많이 만나고 모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남성들은 사회적으로는 '겁쟁이'라고 불리는 약한 남성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겁쟁이 유니온' 과 같은 이름으로 남성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차별당했던 역사를 이야기하고, 그 최소한의 남성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여성들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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