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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pr 26. 2018

사회경제적 변혁와 함께 하는  '여성해방'

책 <지금 여기 페미니즘>을 읽고서

지금 여기 페미니즘              

저자 이유미

출판 사회운동

발매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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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페미니즘>을 읽었다. 이전에 학회에서 페미니즘 개론서로 읽으려고 구입했던 책이었다. 하기로 했던 세미나가 진행되지 않아서 집에 잠들어 있었다. 페미니즘 책을 읽어보려고 찾아보다가 눈에 띄었다. 두껍지 않고 한 손에 들어오는 책이라 금방 읽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읽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있어서는 약간은 '상식?(이미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고 있는 내용'들이 많아서 지루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고, 책의 서술방식이 시민단체 토론회 발제문처럼 딱딱하기도 했다. 지루함은 '개론서'의 주 독자층이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딱딱한 문체나 딱딱 끊기는 서사의 흐름은 더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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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운동 작은 책' 시리즈의 3번째 책이다. 어떤 사회적 주제 '세월호와 같은 대형참사' '페미니즘' '일본의 군부재무장과 동북아 평화' 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뱡향잡이를 해주기 위해서 씌여진 책들이다. 페미니즘 책 외에 다른 2가지 주제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서술을 토대로 추측해볼 수는 있다. 어떤 사회적 문제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엮여있으니, 그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인 것들을 독파해내고, 사회경제적인 문제의 해결을 통해서 그 문제도 본질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종국에는 그 사태의 주체들이 직접 나서서 조직화하고 투쟁에 나서서 변혁의 길로 가야한다는 것이 주 내용일 것이다. 시리즈의 제목처럼 '사회운동' 을 어떤 이유로 해야하고, 어떤 뱡향으로, 누가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목표점이 이렇다보니 앞에서 이야기한 딱딱한 문체나, 약한 서사성, 조금은 지루한 이야기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학자나, 지식인들이 읽는 책이라기 보다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나 활동가들이 조직화를 위해 읽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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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페미니즘>에서는 '페미니즘'을 '노동과 사회변혁'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앞 선장에서는 여성이 처해있는 '이중적인 처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성적으로 순결해야하면서,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해야하고, 여성의 노동을 '집안일'이나 부차적인 것들로 취급하면서 여성의 그러한 일들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거나 국가적으로 책임지려는 노력은 없다. 오로지 여성이 자신의 개인기와 가족 모두를 착취해서 해결한다. 국가는 끊임없이 출산률을 높이기 위해서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압박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고 싶어도 직장에서의 차별과 보육의 문제로 낳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은 '낙태'에 대한 국가적 처벌과 사회적 비난을 통해서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문제들을 나열난 뒤에는 해결책으로 여성의 사회경제적인 지위의 향상, 보육과 육아의 국가적 책임,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을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러시아의 혁명가였던 콜론타이였다. 여성이었고, 혁명가였던 콜론타이는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러시아 혁명에 합류해서 함께 혁명을 이루어낸다. 그러나 단순히 혁명 만으로는 모든 여성의 권리가 자연스럽게 쟁취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국가(공동체)적으로 정책을 통해 보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집안일'로 이야기되던 모든 것들을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고 그 속에서 여성의 진정으로 해방을 맞이 한다. 또 이런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관계를 맺는 방식'도 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서 '사랑의 학교'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혁명에서 부차적인 문제들로 치부되어 뒤로 미루어졌지만, 여성의 해방이 어떤 식으로 쟁취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단순히 여성이 자유롭게 섹스를 할 수 있게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기업의 간부가 되는 것만이 여성 해방의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여성의 억압에 더욱 일조하는 부분도 있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노력하면 즐기고 성공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여성들을 게으르고 무능력한 여성들로 낙인찍는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이중의 부담들을 공동체 혹은 국가적으로 함께 해결하고, 남성과 여성(여러 가지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하게 관계 맺는 것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성폭력문제 같은 것들도 '본질적'인 시각에서는 이런 접근법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여성 문제'는 여성의 경제적 물리적으로 '의무'에서 해방시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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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대공장의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해고되면 '가족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주 구성원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아내들이었다. 아내들이 투쟁하는 남편을 돕고, 응원하고 함께 싸우고 사회적 여론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목적상의 필요와는 별개로 가족대책위원회가 정규직노동자들을 돕는 방식은 전형적이다. 밥을 해주고, 아내로서 자식과 가족의 평화를 위해 남편의 일자리를 지켜달라는 요구를 한다. 회사의 사정을 노동자에게 전가해서 해고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당한 일이다.

다만, 싸움을 이어가는 방식이 '아내'를 등장시키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지켜야할 여자,아내,가족'을 통해 힘을 얻어 싸운다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아내'들은 분명 다른 어딘가에서 노동자로서 일하고 있을 테지만, 노동자로서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여자' '지켜져야 할 아내'로 변해서 백마탄왕자님의 귀환을 기다리는 꼴이 된다.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그 공간에서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관계는 더욱더 위계적으로 변하게 된다. 가족대책위원회에 있었던 아내들 뿐 아니라, 함께 했던 여성 동료들도 '연약한 여자'로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도 갑을오토택 같은 곳에서 가족대책위원회가 등장했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전에 비해서 더욱 많아졌다. 70년대 청계피복노조, 구로파업동맹 등에서 노동운동의 역사에 등장했다가 80년대 중공업 남성 정규직 노동자로 흐름이 넘어가면서 수면 아래로 묻혔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다시 전면에 나타난다. 제조업들이 쇠퇴하고, 서비스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해서 여성노동자들이 투쟁을 이끌어간다. 학교비정규직노조, 마트노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투쟁들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주로 남편들로 구성된 '가족대책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잘 보여준다. 아마 투쟁하면서도 남편이 알 것이 두려워서 발을 동동구르는 조합원도 있을 것이고, 집에서 조용히 '힘내라.'문자 한마디 보내는 남편에 감동하는 조합원도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모습에서 인간적인 감정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에는 '여자가 일하는 것이 잘리던 말던 가계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 주된 생각이다. 그러니 목숨걸고 함께 하지 않는다. 또 자신이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 아내가 먼저 나서서 싸우고, 자신이 그것을 지원하는 방식이 어색하기도 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추측일 뿐이긴 하지만 거의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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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spaper.org/article/17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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