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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pr 04. 2018

'사랑'은 사치가 아니라 전부다.

'사랑은 사치일까?'를 읽고서

- 예전부터 많은 '여성주의' 활동가 동료, 선배들이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던 '사랑은 사치일까?를 읽었다. 에세이집이라고 해서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내가 '남성'이어서 이 책에 소개되어있는 사례들과 그 사례들 속에 들어있을 누군가의 감정을 파악하고 공감하는 것에 힘들어서 쉽게 읽히지 않은 느낌이 제일 컸다. 그리고 여성주의를 무섭고 어렵게만 느껴와서 책을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고, 글도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 그것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장벽들도 내가 이 책을 어렵게 여기는 것에 한 몫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일단 읽었으니 무작정 두려워만 하던 시절보다는 한층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 책은 '사랑'에 대한 벨 훅스의 생각을 담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여성들의''사랑'이다. 더 들어가자면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이 주로 하는 이야기다. 대강 이런 주제라고 파악을 하고 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주로 지옥에서 올라왔다고 수식을 자주하는 페미니스트들과 핑크와 하트로 점철된 사랑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벨 훅스는 책에서 실제로 가부장적 남성들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서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여성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벨 훅스는 그것은 사랑의 속성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만 드는 '가부장제'의 속성이라고 말한다. 

가부장제 속에서 (주로) 남성들은 정서적으로 소통을 거부하고, 육체적인 관계 만을 추구하거나 여성을 계속해서 자기보다 부족한 존재로서 유지하는 것에 집중함으로서 파트너로서 여성의 정신과 물질적 성장을 지지하고 응원하지 않는다. 또한 남성들은 가부장제 속에서 모든 것을 파트너에게 알려주지 않는 '신비주의'를 유지하면서 여성을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고립시킨다. 이런 경험 속에서 여성들은 '사랑'이라는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그리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그들은 도리어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성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관계들에서 '지배'를 행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주었던 남성들처럼 힘과 권력을 가지면 상처받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힘과 권력을 통한 서열과 '지배'가 동반되는 이상 그것은 '사랑'이라는 관계와 공존할 수 없다. 결국에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리 가부장적이지 않다고(자칭)생각하는 나 조차도 나의 파트너가 (꼭 파트너가 아니라 주위 여성 동료들이) 나의 능력을 넘어설려고 한다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면 기분이 나쁘고, 괜히 꼬투리를 잡고 괴롭혔던 과거의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연애를 하는 지금도 정서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모르겠다. 그냥 내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회피하고 도망치려고만 한다. 그때 마다 나의 파트너가 '니가 그렇게 반응할때 마다 무섭고, 두렵고, 고립되는 느낌이라 싫다. 니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형식적인 사과만 하고서 넘어갔지만, 그 이후에 몇몇 계기들을 통해서 내 감정이나 생각들을 더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파트너에게 이야기했다. 그런 시도들을 한뒤에 우리의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졌고, 서로에게 경쟁의식과 불신을 가지고 있는 관계에서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보내주는 사이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 책에서 '성적대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 역시 여전히 나의 파트너를 비롯하여 내가 많은 여성들을 성적대상화 하고 있음을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특정 신체 부위에 눈이가고, 그것에 시선을 더 오래두었던 적도 있었다. 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하지만, 단순히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고의 문제가 아님을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몸'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대하고 육체적으로만 탐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분과 생각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여성들과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남성들과 함께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평등한 나를 만드는길 일 것이다.  

- 책의 중간 부분을 넘어가면 여성들뿐 아니라 가부장제의 논리와 '지배'의 삶을 거부하는 '신남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남성들은 가부장제의 논리를 거부하기는 하였으나 가부장제의 시선과 관점을 대체할 만한 시선과 관계들이 없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어진다. 나도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남성다움'에 대해서 거부하고 살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거부하고서 그 이후에는 어떤 기준에 따라서 어떤 '남성'이 되어야하는 가에 대한 상은 없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가부장적인 공간에 들어서면 나는 또 다시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 침묵하는 방관자로 전락한다. 이 책 이후에는 벨훅스의 책을 더 찾아보거나, 가부장제에 거부하는남성들의 삶과 고민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 나의 기준과 원칙이 생기면 가부장제 속에 다시 빨려들어가는 나를 좀 더 잘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이전에는 잘못이 드러날까 무서워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던,주위에 있는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도 조언을 많이 구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이제는 해보고 싶다. 

- 또 책을 읽고서 파트너와 이야기를 하다가 들었던 고민이 있다. '사랑'을 추구하는 개인이 되는 것은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자신의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솔직하고 튼튼한 사람이 되고, 주위에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관계의 고리들을 많이 만들어내면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이 드는 부분은 그러면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식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공동체'라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합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발생하지는 않는 다양한 압력과 폭력들이 발생한다. '사랑'을 추구하는 이들의 공동체란 어떻게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할까 고민이 든다. '사랑'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단순히 모여있기만 한다고 해서 그 공동체 자체가 '사랑'을 추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벨 훅스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가부장적 질서를 누구나 교육받는 세상에서 레즈비언이 이성애자보다 당연히 페미니즘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마냥 말이다.

- 마지막으로 '사랑'은 나에게 어울리는 파트너를 찾는 것에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행위를 하는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요즘 종교책도 읽고, 심리학, 사회과학 다양한 책을 읽고 있는데 대부분 책의 결론이 이것과 비슷하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할 수 있는 '사랑' '운동' '관계' 따위는 없는 것 같다. 파트너와 더 잘 소통하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도 그 만큼 나의 마음과 생각에 더 집중해야겠다.

- 이 책을 읽고 있는 이 순간의 나는 객관적으로 보면 전혀 행복하거나 희망찬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남은 시간은 많지 않고, 노력해왔던 것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상황이다. 주위에 관계들도 많이 끊기거나 소홀해져서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늪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순간에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불행이나 우울, 등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행복에 가깝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던 차에 책을 읽으면서 어떤 힌트를 얻었다. 내 감정과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내가 처해있는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조건들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벨훅스의 말에 따르면 내 감정과 삶의 질은 오히려 전적으로 내가 얼마나 '사랑'을 추구하고 그런 관계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나의 파트너와 그 어느 때보다 열렬히 사랑하고 함께 미래를 고민하고 현재를 나누고 감정을 보듬어주는 시간들이 나에게 있어서 그 어떤 객관적 조건들보다 나를 풍족하고 행복하게 한다. 다시한번 나를 풍만하게 해주는 파트너와, 잘 버티면서 나를 잘 보살피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한다. 


* 마음에 드는 구절 정리
"무엇보다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들에게 온전한 인간성을 되찾고 자신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감정을 표현할 것을 요구했다. 모두가 간과하는 사실은 페미니즘 운동의 진정한 원동력이 여성 개개인의 남성 일반에 대한 실망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과 생식권의 문제가 중심에 자리 잡았지만, 여성의 가장 큰 분노는 남녀관계에서 비롯했다. 여성은 남성에게 친구든 연인이든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운동의 초기부터 선경지명을 지닌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의 삶도 개선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고, 사실이 그랬다." P227

"우리는 과거의 가부장적 남성 지배 모델을 버렸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농담조로 말했던 '약골 남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든 성관계가 강간으로 느껴져 발기를 지속할 수 없는 남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혹은 목소리를 높이고 분위기를 이끄는 여성에게 종속되는 남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숨 죽은 채소처럼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모든 관계에는 지배자와 종속자가 있다는 성차별적 관념을 바꾸는 대신 그들은 종속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이런 남성이 매력적이지 않은 것과 동시에, 여성이 진정으로 신남성에게 원하는게 무엇인지 분명치 않은 것 역시 사실이었다." p228

"사랑을 행하는 남성"

"사랑과 상호성은 모두(의식적인) 노력과 수고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관계에서의 사랑과 결합된 자기애"

"자아실현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의 작업보다 남성을 상대로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더 쉽다. 현명한 여성은 가부장제가 아무리 막상하더라도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삶의 방식을 바꿀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안다. 스스로의 삶과 행복에 책임을 지는 것은 자기 존중을 위해 필수적이다." P281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영혼을 보살피고 여성만의 지혜와 정신적 지침을 재발견할 수 있다. 모든 여성은 사랑의 원안에서 영혼의 동반자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영혼의 자양분은 힘과 성공, 물질적 행복이 그 의미를 잃었을 때 우리를 지탱해준다. 내가 '좋고 나쁘고 추하고 음란한'것이라고 부르는 삶의 충만함과 복잡성을 타락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대면하기 위해서는 바로 선 영혼, 우리 자신의 편안한 방어막이 되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영혼이 필요하다. 그 충만함과 기쁨을 마주하며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사랑을 향한 탐색, 사랑을 향한 여정의 길이 열린다. 그것은 삶의 선물과도 같다. 

진정한 사랑은 너그러우며, 끝없이 다시 채워진다. 현명한 여자라면 자기보다 어린 여자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 가장 깊은 곳의 두려움과 요구, 소망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성차별주의가 세대를 가로막고 분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경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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