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의 엄마 이야기

'엄마'라는 이름의 억척스럽고 속물적인 여성 만들기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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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여느 때처럼 애인과 통화 중이었다. 애인이 요즘 자신이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다 그 중에서 가장 나쁜 '악역'인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해서 비난했다. 애인에게 들은 그녀의 속성은 '딸은 소유물로 취급해서 마음대로 다루려고 한다.' '결혼을 함에 있어서 오로지 집안 만을 따지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무시한다.' '딸의 사랑을 억지로 깰려고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등등이다. 나도 들으면서 정말 짜증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딸을 자신이 낳았다는 이유로 소유물로 취급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딸의 인생을 끌고 나갈려고 하는 오만함에 화가 났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인격을 짓밟고 무시하는 것에는 경멸도 느껴졌다. 정말 드라마에 나올 법한 최악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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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좀 하다가 이 여성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녀의 직업은 몇십년째 '전업 주부'다. 남편은 돈 잘벌어오는 직장을 가지고 있다가 무난히 은퇴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양육하고 집을 관리하는 일을 몇십년째 해왔다. 취미 생활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전업주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사회적인 삶의 수준은 '중산층'이다. 자가 아파트와 차도 있고, 딸는 번듯한 직장에서 일정한 수입이 있고, 아들은 소위 높은 학력을 가진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 여성은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름이 없다. '어머니' 혹은 '엄마'로만 표현된다. 직장에서 불리는 호칭이나, 별명, 등도 거의 없다. 남편에게는 '여보'이고 전업주부 모임에서는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린다. 남편과 자식들을 매개로 하지 않은 자신고유의 사회적인 명명이 그녀에겐 없다. 드라마를 전부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성명이 제대로 나온 장면은 거의 없었다. 언어는 단순히 언어가 아니라 현실의 표현양태이기도 하다. 그녀가 하는 일 중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은 없다. 그나마 인정받는 것은 남편에 대한 내조, 자식에 대한 양육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누구의 아내로 살 것인지, 어떤 이의 엄마로 살 것인지, 어떤 이의 시어머니로 살 것인지에만 몰두한다. 그것이 그녀가 사회적으로 명명되는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세계는 남편 직장의 안정성, 자식들의 결혼상대에만 한정되어 있다. 그 외의 세계에서 그녀가 존재할 수 없다. 자식과 남편이 사라진 세계에서 그녀는 무력하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딸의 애인을 공격하는 방식은 매우 사회적이지 않다.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딸의 애인을 압박하지 않는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에 호소하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통해서 공격을 시도한다. 인성이 틀려먹은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녀에게는 사회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전업 주부'라는 위치에서 그녀가 타인에게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남편에게 힘을 양도 받는 것이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주는 것 뿐이다. 물을 뿌리거나, 돈봉투를 집어던지는 것이 대표적인 모습이다. 드라마에서는 남편이 그 힘을 양도하기까지 거부한다. 그러니 오로지 인격적인 모독이거나, 과거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한다. 딸의 애인을 반대하는 사람이 만약 검사장이었다면 이런식의 인격모독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 자체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는 사회적 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조용히 처리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그녀는 자식의 결혼에 더욱 집착한다. 자식이 온집안이 서울대인 변호사와 결혼 하는 것에 설레어 한다. 그것이 깨졌을 때 슬퍼한다. 그녀의 남편은 자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남편이 자식의 삶의 존중하는 멋진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개인적인 성격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남편은 딸이 어느 집과 결혼하건 말건 사회적인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딸의 결혼은 그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딸의 결혼이 자신의 직장이나 사회적 지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여유롭지 않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딸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줄 수 있다. 사회적 으로 안정적인 지위를 가진 덕에 그는 든든하고 자애로운 아빠가 될 수있었다. 반면에 그녀는 억척스럽고, 딸의 인생을 존중해주지 못하고 속세에 물든 '여자'로 비난받는다. 이 역시 그녀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녀의 상황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음을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다. 한국의 드라마는 억척스럽고, 속물적인 중산층 여성상을 '양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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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녀가 과거에는 대학을 다니거나 어떤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 후에 경력이 단절되고 전업주부가 되었을 것이다. 사회적 관계는 모조리 끊기고 가족을 매개로한 관계들만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다. 그녀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남편에게 이혼이라도 당하면 그녀는 바로 극빈층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겟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믿음 역시 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더 단단한 가족관계를 원한다. 그 방식이 감정적으로 따듯하고 푸근한 가족은 아니지만, 지배와 권력, 더 많은 힘을 가짐으로서 가족의 구성원이 아닌 '가족' 그 자체가 묶여져있길 바란다. 가족의 지원이나 가족을 떠나서는 개인의 인생을 쉽게 개척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일 것이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남편에게서 이혼당하거나, 자식들에게 버림받을 확률이 낮아진다. 노후를 위한 고민이자,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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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에 대한 이해없이 그녀가 보이는 매우 폭력적인 행위에만 집중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 '주부'라는 맥락에서는 '억척스럽고, 무례한 아줌마'의 상이 만들어지고, 남편은 자애롭지만 아내는 속물적이고 돈 밖에 모르는 존재로 만들어 깎아내린다. 드라마의 과거 회상이나 역사 씬에서도 아내의 과거 이야기를 들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기억은 오로지 남편과 만날 때의 기억을 되돌릴 때만 등장한다. 아내의 독자적인 과거의 이야기는 극단적 위기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가 '왜' 가족에 집착하는지, 그 토록 '집안'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역사와 삶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지만 여전히 매채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차별과 편견으로 똘똘 뭉쳐져있다. 극단적 상황의 인간을 등장시켜서 그 계층,계급 전반을 깍아내리는 식의 시나리오나 서사는 줄어들어야 한다. 그것의 파급력은 우리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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