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노동자들에게거절당하는 어르신들의 의기소침해진 등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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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는 있지만 차가 없고, 운전도 잘 하지 못한다. 늘 이동할 때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 중에서 버스를 이용하다보면 공통된 장면들을 목격한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노인'들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노동자에게 "이거 어디어디 시장 가요?"하고 묻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버스 기사들은 "안갑니다!"하고 얼른 문을 닫고 출발한다. 가끔 친절하게 "이 버스는 안가고 몇번은 가니까 그거 타세요"하고 안내해주는 사람도 있다. 전자의 경우 단호한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출발하는 버스를 야속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창 밖으로 의기소침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있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 후자의 경우에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이야기를 길게 하느라 출발이 늦어져서 뒤에 탑승객들의 시선이 싸늘해진다. 버스 노동자는 싸늘한 뒤통수의 시선을 느끼다가 문을 닫고 서둘러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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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웬만한 버스정류장에는 버스 도착시간 번호나 버스 배차가 음성과 전광판으로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하는 장소의 버스 노선은 카카오맵 등 어플을 통해서 미리 찾는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음성이나 전광판이 없어도 배차나 버스 정류장 위치까지 전부 알 수 있다. 나의 이동경로를 모두 다 털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편리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디지털로 연결되어서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이 시스템에서 소외되어 있다. 스마트폰으로 미리 버스를 찾아볼 수 없으니 일일이 표지판을 보거나, 버스 노동자에게 물어봐야하는 수고가 발생한다. 배차 시간의 압박에 늘 시달리고 혼자서 신경서야할 것이 너무 많은 버스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이런 질문에 일일이 친절하게 답해주기 힘들다. 버스 노동자는 강한 노동 강도에 날카로워지고, 디지털 소외계층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묻는 것에도 인격의 손상을 입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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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폰 교육 등을 실시한다. 스마트폰을 쓰면 해결될 일이니, 스마트폰을 쓰는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어느 정도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완전히 해결할 수도 없을 뿐더러, 디지털소외계층 뿐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이동약자는 훨씬 다양하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버스에 타려고 했는데 타는 것이 쉽지 않다면, 휠체어로 버스를 이용하는 교육과 연습을 시킬 것인가?
또 하나의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것이 버스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예절교육이다. 손님을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서 문제이니 교육을 시키고 불친절한 버스 노동자를 버스 회사에 신고하면 징계를 주겠다고 한다. 앞에서는 스마트폰을 제대로 못쓰는 사람들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친절하지 못한 버스노동자가 문제다. 하지만 버스 노동자들의 불친절은 단순히 인성의 문제가 아니다. 버스 자본이 요구하는 꽉 짜여진 버스 배차, 근로기준법에서도 특례로 하고 있는 과도한 노동시간 등이 바탕이 되어서 발생하는 문제다. 하루 15시간씩 일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감정노동까지 하라는 것은 '폭력'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버스 배차를 늘리고, 노동자를 더 충원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적어도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동하고자 할 때 여러 사회적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서 원하는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어야한다. 그것에 조건이 있어서는 안된다.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 '언어사용이 가능한 사람' 등등 이런 조건들은 사람의 이동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국가와 공동체는 더 직관적 표지판의 도입이나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으로 더 많은 사람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종국에는 '돈이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도 없애기 위해서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해야한다.
교통은 단순히 선택이 아니라 삶의 필수이기 때문에 그 어떠한 조건에 있는 사람도 이동할 수 있어야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버스 운전을 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 복지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서 노동자들을 희생하면 안된다. 야간에 버스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야간 버스 서비스 제도는 이런 잘못된 복지의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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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제도의 미비함과 인식의 더딤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몰아세우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스마트폰 교육을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해서 그것을 통과한 노인만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노인 개인이 문제라는 문제인식을 하고 있다. 또 버스 노동자가 친절하지 않은 문제를 버스업체에 노동자를 신고하는 번호를 부착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버스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배차의 문제 등 구조적 문제를 배제하고서 단순히 버스기사의 인성에 그 모든 문제를 전가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해결해야할 부분도 있지만, 그 개인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손보는 것이 공동체와 국가가 할 일이다. 개인이 그 이후에 그것을 해결하지 안할지는 선택의 문제이다.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제도로 제공하고, 개인이 재량 것 선택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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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을 공경하고 배려해야한다고 노약자석 까지 만들었지만, 그것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버스 노동자들은 임금도 높으면서 불친절하다고 신고하는 것은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 버스가 증차되서 버스 노동자들의 배차 압박이 덜해진다면, 버스 노동자들이 좀 더 여유롭게 화장실도 다녀오면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1분정도 정류장이 어디인지 물어보는 어르신의 물음에 더 친절하게 답할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렇게 무시당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잘 찾아서 목적지에 간 어르신들은 젊은 세대에 대한 혐오를 덜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자신들이 혐오당하거나 무시당한다고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논리적 공백도 많고 과도한 상상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노동의 조건이 나아지는 것은 누군가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것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사회적인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과 사고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http://m.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102
http://www.hani.co.kr/arti/PRINT/7499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