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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후보의 단계에서 명함 뿌리기를 모두 끝냈다면 이제 본 선거가 시작 된다. 예비후보 단계에서는 후보를 포함해서 2명정도만 움직인다면 본선거에서는 본격적으로 수십명의 사람들이 선거를 위해서 움직인다. 현행 선거법상 예비후보 단계에서는 본인을 포함해서 지정1인만 명함을 뿌릴 수 있고, 피켓이나 차량을 이용한 선거운동 등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비후보 단계에서는 조용히 워밍엄을 하고 주변 지지자들을 만나고, 본선거 기간이 되면 본격적으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선거운동원 숫자나 차량의 크기 숫자 등으로 뽐낸다.
선거운동원 본인이 집권여당이나 제1,2야당 등 국회의원 의석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면 본인을 포함하여 (기초자치의원 선거 기준) 1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본인이 가는 곳 마다 거대하고 시끄러운 선거차량이 따라다니면서 음악을 틀어준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정의당을 시작으로 노동당, 녹색당, 우리의 미래, 민중당 등 원외정당이거나 의석이 2자리도 안되는 정당들은 거대 정당들과는 다른 모습과 규모의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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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정당들은 기존에 정당에서 활동해온 활동가들은 선거캠프의 중요한 간부역할을 하게 된다. 회계나 조직, 선거캠페인 총책임자 등이다. 하지만 작은 정당의 활동가들은 인력과 재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한 명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나의 경우에는 선거사무원이면서 동시에 언론담당자였다. 우리 선본은 후보 본인이 홍보 및 캠페인 기획 과 동선을 짜는 역할을 잠시 겸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역할이 정해지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후보가 아니라면 선거사무원(운동원)이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은 피켓을 들고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피켓들고 있기는 이전에 이야기했던 명함 뿌리기보다는 간단하고 '멘탈'에 타격도 덜 가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쉽고 즐거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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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 거점에서 4시간에서 5시간 (우리 선본 기준) 선거운동을 진행한다. 후보자가 마이크를 이용해서 주민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선거사무원들은 피켓을 들고서 지나가는 시민이나 차량에 인사를 한다. 처음 1시간 정도는 그리 힘들지도 않다. 특히 예비후보 시절이나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명함 뿌리기를 했던 사람이라면 '명함에 비하면 꿀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2시간 3시간 지나면서 피켓들기의 어려움이 시작된다.
일단, 몸이 힘들다. 우리가 살면서 몸을 움직이면서 어떤 일을 하다가 힘들다고 생각할 일은 많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생각할 일은 별로 없다. 피켓 들기는 우리 인생에 흔치 않은 후자의 고통을 알려준다. 피켓을 들고서 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몸을 움직이고 싶어서 온 몸이 들썩들썩 거린다. 플랭크와 같은 코어운동, 혹은 버티기 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정도 운동을 하는 느낌의 고통이 몸을 휘감는다. 플랭크를 1분만해도 온 몸이 후들후들 거리는 것이 사람이다. 그 정도 강도의 일을 몇 시간해야한다. 어떤 정도인지 감이 오시는가.
그리고 시간이 정말 안간다. 이것은 어떤 일을 하던 마찬가지이겠지만 '일'다보니 시간이 정말 잘 안간다. 평소에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핸드폰을 보면 훌쩍 가버리던 시간이 정말 천천히 간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온 몸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피켓을 들고 있더라도 후보의 경우에는 말도 할 수 있고, 유권자들의 호응이나 반응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서 시간이 잘가는 편이다. 하지만 선거운동원들은 그런 '소통'이 없고, 일뱡향적인 허리숙이기와, 버티기만 있다. 후보는 누군가와의 '만남과 소통'을 하지만 선거운동원들인 우리는 자기자신과 '싸움과 버티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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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피켓을 들고 있으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구호를 크게 외쳐보기도 했고, 지나가는 차 한대한대에 전부 인사를 하기도 했다. 다른 할 일이나 생각을 구체화 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시간을 낭비해보려는 처절한 시도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꿔서 선거운동을 자기수행의 시간으로 가져가고자 했다. 일명, '감사의 피켓들기' 였다. 지나가는 차 한대 한대에 인사를 하면서 속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마음 속으로 나에게만 들리는 인사를 한번 더 했다. 그렇게 인사에 인사를 거듭하다보면 인사에 몰입하게 되서 시간이 그나마 흘러갔다. 물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이 흐뜨러지고 몸이 베베꼬이기 시작하면서 흐지부지 되긴했지만 피켓을 들고 있으면서 했던 일 중에는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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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선거운동이 모두 끝내고 쓰는 글이라 선거운동원분들에게 지금 힘내라고 쓰기는 시기상 어렵다. 그래도 길게 느껴지고 힘들었을 선거운동 동안 너무 많은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돈을 벌기 위해서 선거운동을 했건, 본인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서 했건 둘다이건 간에 선거운동이라는 쉽지 않은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노동을 끝까지 해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인정받아야할 일이다. 혹자는 돈을 받았다고 '알바냐?'고 비아냥 거리지만 이는 '알바'라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 천대에 의한 것이지 정말로 우리의 선거노동이나 알바노동이, '선거알바노동'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정치참여를 강조하는 데 선거운동 만큼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래서 본인의 정치참여 경험인 선거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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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말 수고하셨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돈도 인력도 넉넉하지 않았을 진보정당의 많은 후보들의 선거운동원들에게 조금 더 큰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