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멀리서, 전체를 보다

맥락 속에서 완성되는 인간 이해

by 진현정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어리고 더 연약하던 시절, 아버지는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너처럼 많은 혜택을 누린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다문화상담 수업에서 깨달은 특권과 환경

미국에서 상담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을 다시 다니며 다문화상담 과목을 들었던 시기애,
이 문장은 내게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다문화상담에서 말하는 ‘문화’는 단지 인종이나 민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정체성, 사회경제적 지위, 교육 수준, 가정환경 등
한 사람을 둘러싼 모든 맥락을 포함한다.


즉,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삶을 이루는 배경 전체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담자에게는 문화적 감수성(cultural competence)이 매우 중요하다.


내담자의 문화와 사회적 배경이
그 사람의 문제와 삶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이해해야 하고,
도움을 줄 때에도 그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 중 하나는
‘내가 소외된 부분’이 아니라
‘내가 가진 특권(privilege)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 수업이었다.



각자 자신이 가진 특권을 적어보고,
그것이 상담자로서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한계를 만드는지 나누는 활동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 능력과 지금의 모습, 그리고 삶이
오롯이 내 노력만의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여러 혜택과 기회의 결과라는 것을.


이 깨달음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또 내가 가진 것을 사회에 어떻게 환원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다.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인간

타인을 판단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놓인 상황과 환경을 쉽게 놓치곤 한다.

누군가는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 속에서
사랑받으며 성장했기에 세상에 날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어떤 이는 늘 생존을 위해 방어적으로 살아야 했기에
조금 거칠고 예민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정말 선한 사람도, 만약 전혀 다른 환경에 놓였다면
여전히 선할 수 있었을까?’

‘지금 내가 부정적으로 여기는 그 사람이

다른 조건에서 자랐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사람을 단순히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부드러운 사람, 거친 사람처럼
일직선상에서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선함이나 악함조차도
우리가 자라온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배경과 한계를 자각하고,
그 영향 속에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노력—
그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실존적 책임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대학 상담센터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부모와의 갈등, 불행한 가정환경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부모가 행복한 가정의 부모들보다 인격적으로 부족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어려움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많다는 걸 느꼈다.


그 현실을 함께 바라보고 부모가 처한 한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에서,
내담자들은 부모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회복할 수 있었다.



멀리서 전체를 볼 수 있을 때: 사회와 연결된 따뜻한 시선

상담자로서 나는 언제나
내담자의 환경적 맥락을 다각도로 살피고,
내가 가진 문화적 배경이 만들어내는
편견이나 선입견에 예민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담자가 처한 환경적 어려움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잠재력과 강점을 발견하고
스스로 인식하도록 돕고 싶다.


상담실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단편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들이 처한 현실과 맥락을 이해하려는 시선을 잃지 않는다면,

조금 더 평화롭고, 조화롭고,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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