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말들에 숨어 있는 "본질"
‘본질이 뭐야?’라는 말,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지겨울 지경이었다. 정작 그게 뭔지는 아무도 말 안 해준다. 그러나 살다 보니까 이 단어의 정체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은 누가 무슨 말을 길게 늘어놓으면,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변환이 된다. 이걸 깨닫고 나서는 세상이 조금 덜 피곤해졌다. ‘왜 저 말을 하는지, 핵심이 뭔지’를 파악하면 정보도, 대화도, 업무도 훨씬 심플해졌다.
이 사람 지금 힘들다는 말 하고 싶은 거네!
결국 이건 못하겠다는 말이구나!
아, 이건 업무 자동화에 대한 얘기구나!
지금 나만의 용어로 정의하자면 본질이란 "여러 가지 내용을 압축하는 감각" 아닐까 싶다. 결국 본질은 딱 한 줄이다. 나머지는 부연이고, 배경 설명이고, 표현 방식일 뿐이다.
예시 1: 개인 근황 토크 → 결국 “힘들다”
예시 2: 회사 동료 업무 요청 → 결국 “못하겠다”
예시 3: 키오스크 현상 → 결국 “자동화”
예를 들어 회사에서 동료에게 업무 요청을 했다. 그가 답변한다. “요즘 일정이 너무 바쁘고, 병원도 다녀야 하고, 업무가 겹쳐서요...” 이 말들이 향하는 방향성은 동일하다. “지금 요청한 업무는 당장은 못하겠습니다.”
이걸 놓치고 “어 그래? 병원은 왜 갔어?” 하고 이쪽으로 접근하다 보면 나중엔 쓸데없는 감정싸움, 시간 버리기 싸움이 된다.
나는 지금 아픈데 왜 이해 못 해? vs 그건 네 사정이고…
그럴 땐 오히려 본질만 짚어서 얘기하는 게 낫다. “그럼 언제까지는 가능할까요?” 이 한 마디로 대화가 맺히기도 한다. (실생활에서 더 와닿게 예시를 들자면.. 부모님께 어릴 때 시전 했던 "아 알았다고요!!" 이것도 어쩌면 본질...?)
본질을 보는 감각이 생기면 다른 분야와의 연결도 자연스러워진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가 늘어나고 있다. 이 현상의 본질은? “내부 인력이 시간을 덜 쓰게 하려는 구조 변화”, 즉 점원이 굳이 손님 주문을 직접 받을 필요 없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단편적 현상은 ‘키오스크 증가’, 그 본질은 ‘내부 인력의 시간 절감’ 혹은 ‘인건비 절감’이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인구구조, 생산성, 고객 경험 등 다른 본질도 파생된다.)
이걸 알면, 다른 분야에서도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도 직원이 붙는 업무들이 많은데, 그들이 없어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거리가 있을까? 어쩌면 고객 피드백 수집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받고 있는데, 이걸 자동화하거나, UI 흐름에 녹일 수 있으려나? 하는 고민들.
선물로 치면 포장은 달라도 내용물은 비슷한 걸 찾아내는 감각. 그걸 읽어내면 더 빨리, 더 똑똑하게 움직일 수 있다.
사실 이 감각이 생긴 계기가 멋지진 않다. 어디선가 들은 문구인데 "열정은 분노와 열의의 합성어"라고 한다. 나는 순전히 분노로 시작했다. 왜냐하면 회사의 상사에게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요약해줘.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한 줄로 말하면 뭐야?
알맹이 없이 나열만 하면 듣는 사람은 정보의 폭력이야!
그때는 억울하고 답답했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 그게 ‘받는 사람 관점에서 정리하는 훈련’이었다는 걸. 내 말이 길면 상대는 피곤해진다. 그래서 본질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 결국 더 설득력 있다.
본질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다른 포장지를 쓰더라도, 안에 들어있는 것은 같다는 것, 상/하위 개념을 잘 구분하는 것, 하위 개념들이 패러프레이징된 것을 반복해서 보면, 같은 방향성을 향하는 핵심이 보인다.
어쩌면 기획자는 무언가의 속성, 기질, 근본적인 내용을 알아차리고 접목하는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