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30일 여행의 첫 관문, 출국 해프닝
[목차]
- 출발 전, 그토록 기다렸던 유럽 여행
- 들뜬 출국날, 나를 기다리던 시련
- 절체절명의 공항 해프닝
- 여행의 시작, 그리고 다짐
유럽 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은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도 언젠가 저 별이 빛나는 밤에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있을 거야’ 했던 그 꿈.
그리고 마침내, 휴학을 감행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그 꿈을 실현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돈도 많이 들고 참 복잡했다. 어설프게 간만 보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싶어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돌이켜보면 전체 교통편도 아니고 In/Out 항공권 예매가 용기이자 결심이자 첫 관문이었다. 휴학 시작한 방학 7월부터 2월까지 근 8개월이 걸린 것 같다.
*이동 리스트
[한국] 인천
[중국] 베이징(경유)
[영국] 런던 - 버밍엄 - 맨체스터
[프랑스] 파리 - 스트라스부르
[스위스] 인터라켄
[이탈리아] 밀라노
[스페인] 바르셀로나 - 마드리드
[중국] 베이징(경유)
[한국] 인천
비행기를 예매하니 그다음 순서대로 차근차근 일이 시작됐다. 구체적 일정 짜고 숙소 예매하고 등등. 이전에는 끽해봐야 3박 4일 정도의 여행을 세세하게 계획하던 내가, 갑자기 30박 31일 계획을 짜려니 너무 방대했다. '세상 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세세하게 일정을 짜나' 싶기도 하고. 결국 세세한 계획은 포기하고 꼭 가고 싶은 장소, 숙소 정보 등 큼지막하게만 준비했다. 그렇게 비행기 티켓부터 숙소, 바우처, 환전, 보험 등등 이미 한국에서만 200만 원 넘게 사용했다. 여행을 떠나기도 전인데, 큰돈이 빠져나가고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커져갔다
나 진짜 다음 달이면, 다음 주면, 내일이면, 떠나나 봐…
출국 당일, 나는 여행자답게 짐을 쌌다. 배낭과 캐리어. 그런데 마음속 환상이 떠올랐다. ‘진정한 배낭 여행자는 배낭 하나로 떠나는 거지! 캐리어는 걸리적거릴 뿐!’ 그렇게 캐리어 대신 운동용 가방을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미래의 내가 선물 살 자리가 없다고 한탄할 줄도 모르고.)
엄마는 출국날 공항까지 따라와서까지도 걱정이 많았다. 소매치기, 강도, 꼭 혼자 가야 하냐 등등. 물론 나는 단호했다: "혼자 세상 경험하려고 가는 거니까요!" 그리고… 출국 심사 줄을 서다가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정말 드라마처럼(?) 사건이 벌어졌다.
어? 뭐야? 핸드폰이 없어...
머릿속이 하얬다. 핸드폰 없이는 정말 아무것도 못 했다. 티켓도, 숙소도, 지도도, 심지어 여행 계획조차 전부 휴대폰에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냥 집에 가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문제는 출국 심사 줄에서 이탈도 안 되고, 주변 사람의 도움도 받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돈도 없어 가성비가 중요했던 내가 선택한 항공편은 '에어차이나'. 자연히 주위엔 대부분 중국인뿐이라,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운 좋게도 한국인 부녀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님께 조심스레 사정을 설명하고 핸드폰을 빌릴 수 있겠냐 했더니, 굉장히 경계하셨다(나였어도 그랬을 듯). 핸드폰은 본인이 직접 들고 계시겠다며, 난 번호만 찍으라 하셨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엄마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화 걸자고 폰을 빌렸는데 번호를 몰라하는 더 수상한 상황... 정말 미친 상황... 겨우겨우 기억을 더듬어 전화를 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모르는 번호는 절대 받지 않는 우리 엄마는 역시나 전화를 거절하셨다. 나의 입장이 더욱더 난처해지는...ㅎ 사정을 말씀드리고 한 번만 더 부탁드려 두 번째 시도. 이번엔 다행히 엄마가 느낌이 오셨는지 전화를 받으셨다.
나: 엄마, 내 핸드폰 가지고 있어?
엄마: 응? 아니?
다시 멘붕의 시작... ‘이제 진짜 여행 못 가는 건가…?’ 체념하고 있다가 번뜩 생각났다. 공항 도착 직후, 엄마가 “여기부터 외국이라 생각하고 조심해라”며 핸드폰을 가방 안에 넣으라고 했던 잔소리를 했다. 내가 알았다며 나의 배낭 사이드포켓에 핸드폰을 넣었던 기억이 명탐정 코난의 깨달음처럼 떠올랐다.
바로 다시 한국인 아버님께 부탁드려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말했다: "어디 있는지 알 거 같아. 해결되면 연락할게" 그리고 얼른 출국 심사 후 게이트로 직행했다. 직원에게 내가 부친 수하물에 핸드폰을 넣은 것 같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말은 “그럴 일 없다”... 나는 끝까지 우겼고 결국 짐을 열어 확인한 결과, 정말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원래 밥도 먹고 온갖 여유를 즐기며 비행기에 탑승할 생각이었는데, 이 소동으로 인해 딱 맞춰 겨우 비행기에 올라탔다. 엄마에게 무사히 탔다고 문자를 보내고, 도움 주신 부녀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이 사건 때 진짜 말 그대로 '머릿속이 하얘졌다'는 느낌을 생생히 느꼈다.
비행기에 타고 있으면서 생각에 잠겼는데 여행을 떠나기 전, 세상이 나에게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고 말한 것 같았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의 구름을 바라봤다. 한국에서 사건이 벌어졌으니 그나마 잘 해결했지. 외국에서 이랬어봐…. 외국어로 샬라샬라… 생각만 해도 끔찍…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치 세상이 나에게 조심하라고, 호통치듯, 걱정하듯.
“정신 차려, 지금 해외 간다.”
19.05.06 (실제 비행기에서 적은 메모...)
‘눈물 난다 진짜… 핸드폰을 왜 사이드포켓에다 쳐 두고.. 하 이놈아… 시작이 참 좋네. 한국에서나 똑바로 살지. 뭘 해외로 나가보겠다고... 무튼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