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런던_4] 실력 하나로 환호받을 수 있다면

Vㅏ실르와 윙봉-신라면 小컵 스왑딜

by Cosmo

토트넘 핫스퍼의 EPL 마지막 라운드 경기를 토트넘 홈에서 직관하는 날이었다.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여유롭게 일어나 점심을 먹으려고 주방으로 갔다. 주방엔 나보다 먼저 나온 외국인 게스트가 있었다.


많은 이들과 대화해 보는 여행 목적에 맞게 이제는 당당하게 인사하며 말을 걸었다. 그는 영국에 유학을 와서 장기 투숙하며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바실르'였다. 내가 ‘바실르’라고 부르자 그는 연신 “No... No... Vㅏ실르!” 하며 정정했다. 나도 최대한 혀를 굴러보며 따라 해 봤지만... 그 이후로 그냥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도 나처럼 축구를 좋아해 관심사가 겹쳤다. 마침 그날 경기를 직관하러 간다고 말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이전과는 다른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경험이었다. 성격도 유쾌해서 많이 웃었던 것 같다.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냉장고를 열면서 어느 칸을 가리켰다. 장기 투숙객은 냉장고에 개별 공간을 배정받았었는데,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여기 다 내 거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어!” 툭툭 냉장고를 치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외국식 환대에 당황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나는 가방 깊숙이 넣어둔 신라면 소컵을 꺼내 건넸다. “It's a famous Korean noodle.” 이게 나의 한국식 인사였다.


우리는 서로가 준 음식을 같이 먹었다. 나는 윙봉 10개쯤은 가볍게 클리어했고, 그는 포크로(?) 신라면 소컵 한 입 먹고 “Spicy!”를 외쳤다. 그리고는 조용히 뚜껑을 덮고 냉장고로 향했다. (나는 말했다. “그렇게 보관하는 건 추천하지 않아…”)

KakaoTalk_20250713_152045632_07.jpg
KakaoTalk_20250713_152045632_06.jpg
KakaoTalk_20250713_152045632_05.jpg
Vㅏ실르의 포크 식사, 신라면과 윙봉 스왑딜




그렇게 아주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에서 쉬다가 토트넘 경기장으로 향했다. 축구 덕후로써 EPL 직관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 실감되면서 너무 좋았다. <Come and get your love> 노래를 들으며 아주 신나게 경쾌하게 모든 관련 형용사를 써도 부족할 만큼 그 순간을 만끽하며 떠났다.


나름 토트넘 구장이 새로 지어졌기에 기대가 컸다. 기대했던 만큼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아, 여기가 진짜구나’ 싶은 실감은 확 왔다. 그러나 하필 손흥민 선수가 이전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아서 내가 본 경기는 직접 뛰지 못했다. 그러나 리그 마지막 라운드라서,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돌면서 선수와 가족들이 이번 시즌에 대한 감사 인사를 도는 것을 보았다. 경기력은 뭐... 감탄은 했다. 그러나 얼마 뒤에 챔스 결승이 있고 EPL 순위도 거의 확정됐기에 불같은 경기력은 아니었다.


경기 전후 전광판에 손흥민 선수의 장면이 나오자, 그때마다 경기장이 환호로 들썩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낯선 땅에서, 말도 안 통할 때도 있었을 텐데... 실력 하나로 이 자리까지 왔구나.” 존경심. 부러움.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실력만 있다면 가능하겠다는, 아주 단단한 자신감 하나.

KakaoTalk_20250713_152045632_04.jpg
KakaoTalk_20250713_152045632_01.jpg
KakaoTalk_20250713_152045632.jpg
토트넘 경기장 가는 길, 실제 모습




이렇게 영국 런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목적지는 '버밍엄'이었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버밍엄?'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 옆 '호텔 풋볼'에 가기 위해 날짜를 조율하다 보니, 중간 기착지로 적당한 곳이 ‘버밍엄’이었다. 런던을 떠나 처음으로 다른 도시로 향했다.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하지만 인생도 그렇지 않나. 다음 페이지는 늘 낯설고, 그래서 의미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런던_3] 사람 만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