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라켄] 나는 젊은이에게 투자하는 거예요.

혼자에서, 동행으로

by Cosmo

인터라켄에 도착했을 때,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사진 찍고, 혼자 길 헤매는 게 이제는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속도를 방해받지 않는 게 편했다. 혼자의 리듬이 생겼다고 할까.

그래도 ‘스위스니까 이번엔 동행을 구해볼까?’ 싶어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다. 답도 오고 연락도 닿았지만, 정작 나는 아무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내가 뭘 알아야 의견도 내고 조율도 할 텐데, 그저 쫓아다니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 그게 싫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 결국 동행 계획은 접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써 동행을 찾으려는 집착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둘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강제로 맞추지 않아도 결국 만날 인연은 만나는 걸까... 스위스의 여행 테마는 ‘동행’이었다.




1. 하늘에서 시작된 동행

스위스에 온 이유 중 하나는 단연 스카이다이빙이었다. 가격은 약 60만 원. 가볍게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었지만, “인생에 단 한 번은”이라는 말이 떠올라 주저 없이 결제했다. 순서를 기다리며 혼자 긴장하고 있던 순간, 옆에서 한국 여행객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그 한마디에 긴장이 풀렸다. 낯선 외국 땅에서 들은 모국어가 그렇게 따뜻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어주면서 웃었다.



2. 맥주와 불고기, 김치찌개

스카이다이빙이 끝난 뒤, 애매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근처에 있는 하더쿨름에 같이 가기로 했다. 케이블카에 오르자, 한국 아저씨 두 분이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처음엔 ‘갑자기 왜?’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하더쿨름 전망대에 도착하자 아저씨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맥주를 사주셨다. 스위스 물가를 알기에, 그 한 잔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았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호의였고, 그 순간 내 안의 경계심이 스르르 풀렸다. 따뜻한 호의 앞에서 방어적으로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내려와서 아저씨들이 저녁까지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한국 음식을 사주겠다고 했다. 여행 중반부에 접어든 나는 이미 한국 음식이 간절히 그리웠다. 김치찌개, 불고기… 생각만 해도 침이 고였다. 식탁에 앉아 김치찌개를 떠먹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울컥했다. 이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는 돌봄의 맛이었다.

식사 중에 나는 조심스레 내 진로와 고민을 꺼냈다. 그러자 한 아저씨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실력과 인성이 필요하다. 넌 인성은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 실력만 쌓아라.” 내가 가장 불안해하던 부분을 정면으로 짚어주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말이었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나도 해낼 수 있겠다’는 묘한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젤라또까지 사주며 웃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마치 ‘네가 소중하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3. 별빛 아래 게스트하우스

숙소로 돌아오니 이번엔 젊은 한국 남자들이 같은 방에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비슷한 또래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주는 안도감은 컸다. 밤이 되자 누군가 “야경 보러 가자”라고 제안했다.

테라스에 나가니, 눈앞엔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별들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보던 흐릿한 밤하늘이 아니라, 숨이 막힐 만큼 선명한 하늘이었다. 해먹에 기대어 맥주를 마시며 별을 올려다보는 순간, ‘이건 음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에서 ‘Lost Stars’를 재생했다.

별빛, 음악, 맥주 한 캔. 순간이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사라졌다. ‘이거 너무 사기적으로 낭만적인 거 아니냐’며 웃으면서도, 마음속 깊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울컥했다.



4. 융프라우의 커피와 50유로

다음 날, 융프라우에 올랐다. 전날의 과도한 행복 때문일까, 오히려 마음이 공허했다. 정상에서 먹은 신라면 소컵은 믿기 힘들 정도로 맛있었다. 결국 한화로 8,000원을 내고 하나를 더 사 먹었다. 라면 두 개와 빈 물병, 그리고 멍한 표정의 나. 풍경은 장관인데 내 모습은 왠지 초라했다.

그때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걸어주셨다. 대화를 나누다 커피와 과자를 사주시더니, 결국 50유로까지 내 손에 쥐여주셨다. 거절했지만 돌아온 말은 단호했다. “나는 젊은이에게 투자하는 거예요. 당신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되고, 그래야 나도 편히 살 수 있어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그 돈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내 존재를 응원해 주는 믿음이었고, 내가 더 잘 살아야 할 이유였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눈 덮인 정상보다도 더 깊숙이 내 마음을 울렸다.




50유로와 커피, 그리고 젤라또까지

돌이켜보면, 인터라켄에서의 며칠은 감사로 가득했다.

맥주 한 잔, 김치찌개 한 그릇, 별빛 아래의 노래, 그리고 50유로.

모두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순간들이었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내가 받은 이 따뜻함을 언젠가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돌려주겠다고.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었다. (아니면… 내가 진짜 너무 불쌍해 보였던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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