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코야도비얄바에서의 마지막 일기

31일 여정의 마무리

by Cosmo

숙소 해프닝

한국에서 마드리드의 숙소를 예약할 때 가장 중요했던 건 ‘가격’이었다. 그래서 마드리드 중심지에서 차로 50분 거리의 숙소를 잡았다. 그때 나는 단순히 이렇게 생각했다. “경기도에서 서울 오가듯, 뭐 비슷하겠지.”

막상 도착해 보니 그곳은 마드리드 외곽 도시 코야도비얄바.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마치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듯 끝없는 황무지가 펼쳐졌다. ‘현지인의 집에서 진짜 생활을 체험해 보자’는 기대였는데… 그냥 싸게 잡은 게 실수였구나 싶었다.


숙소에 도착해 호스트가 간단히 규칙을 설명해 줬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장면이 있었다. “My doctor says… 수돗물 마셔도 된대”라는데, 어디 아프신가... 왜 자꾸 의사 얘기를 꺼내나 싶었다. 다음 날엔 화장실에서 헤어드라이기를 꺼내 쓰다가 “그걸 왜 doctor 허락도 없이 쓰냐고” 호스트에게 혼쭐이 났다. 그제야 알았다. 그건 doctor가 아니라 daughter였다. 지금은 웃지만, 당시엔 당황스러웠다. 마드리드의 시작은 이렇게 잔뜩 꼬인 해프닝으로 가득했다.




시계와 위기의 하루

큰 관광지엔 마음이 안 갔다. 대신 “이 여행의 기념으로 남을 걸 하나 사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쓰고 싶었던 시계를 떠올렸다. 도심까지 나가 시계점을 둘러보고, 결국 '시티즌 에코드라이브'를 골랐다. 빛으로 충전돼 배터리를 갈 필요가 없는, 약 20만 원짜리 모델이었다. ‘조금 덜 먹고, 덜 놀면 되지.’ 그건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나를 위한 보상”이라는 다짐이었다.

그런데 시계를 사러 다니던 어느 날, 큰 사건이 터졌다.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돌아오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꺼져버렸다. 보조배터리도 없었다. 주변은 시골이라 길이 낯설었고, 해까지 지고 있어서 핸드폰 없이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어디서 내려야 할지도 몰라 감으로 내린 순간, 해는 저물어갔고 주변은 다 똑같아 보였다. 길도 사람도 낯설었다.


급히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다행히 젊은이 무리에게 부탁해 휴대폰을 빌렸지만, 그의 핸드폰으로는 구글의 보안 인증에 막혀 내 계정 로그인조차 하지 못했다. 버스가 와서 그들마저 떠나버렸을 때, 정말 막막했다. 마지막 희망은 내 핸드폰을 살리는 것뿐.

근처 가게에 들어가 충전을 부탁했다. 첫 번째 곳에선 거절당해 쫓겨났고, 두 번째 빵집 아저씨가 흔쾌히 받아줬다. 충전이 되는 동안 고마운 마음에 빵을 사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말했다. “여기 청년들은 다 떠나. 일자리도 없고, 경제도 힘들어.” 그러면서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나도 잠시 멈춰 섰다. '정말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곳인가? 나도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사람인가?'

충전된 핸드폰을 손에 쥐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을 때, 다행임과 동시에 무서웠다. 만약 그 아저씨가 거절했더라면? 충전 타입이 내 거랑 달랐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작은 친절이 나를 구했다. 그 순간은 시계보다도 더 값진 선물이었다.




마지막 일기

마지막 날은 아무 일도 없이, 숙소에서 조용히 보냈다.

지난 여행을 회상하며, 앞으로 다가 올 일들을 생각하며 일기를 썼다.

이제 내일이면 내 유럽여행도 끝나는구나. 돌아가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 여행이 나를 바꿨을까? 진로가 명확해졌을까? 정말 열심히 달릴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다.
너무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배운 것도 많았다.
25년 인생에서 나 자신에게 가장 크게 투자한 일이었고, 그만큼 값진 보상이 됐다.

잘했다. 고생했다.
앞으로도 또 고생하자. :D
(아마 그땐 또 ‘왜 이렇게 고생하냐’고 불평하겠지ㅎ;;)
2019.06.02 코야도비얄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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