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파도처럼 스쳐간 사색

여행 막바지의 고요한 시간

by Cosmo

바르셀로나는 소매치기로 악명 높다는 얘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의외로 평온했고, 오히려 조용히 사색하며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도시였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막 익숙해진 것 같다가도…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렸다.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5층에 배정되었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헉헉대며 올라가다가 비슷한 처지의 서양인 여행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냐, 어디로 가냐… 가벼운 대화 끝에 우연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가 방금 다녀온 도시가 내가 곧 갈 마드리드였던 것. 그러더니 그는 마드리드에서 쓰고 남은 교통카드를 내 손에 쥐여줬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바르셀로나에서의 시작을 괜히 더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숙소 방에는 나보다 두 살 어린 한국인 여행자도 있었다. 붙임성이 좋아 자연스레 동행이 됐는데, 이 친구 덕분에 바르셀로나의 음식을 훨씬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다양한 타파스, 빠에야, 그리고 샹그리아까지. 특히 샹그리아의 달콤한 맛과 알싸한 기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가 먼저 바르셀로나를 떠난 뒤, 나는 혼자가 되었다. 문득 바다를 보고 싶어 해변에 나갔는데, 거기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다들 수영복 차림으로 배구를 하거나 모래에 누워 자유롭게 쉬고 있었다. 유교적 얌전함에 길든 나로서는 처음엔 그저 낯설기만 했다.

나도 샌들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파도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평화로운데도 묘하게 이질감이 몰려왔다. ‘와… 내가 지금 바르셀로나 해변에 있구나.’ 그 순간, 여행이 정말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시간이 너무 아쉽기도 했다. '또 이런 날이 올까..?'

사실 이 여행을 떠날 때는 기대가 있었다. 자신감도 얻고, 명확한 방향도 세워서 돌아가리라. 그런데 여행 거의 막바지에 바닷가에 앉아서 생각해 보니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는 거 같았다. 여전히 진로는 안개 속이었고, 아마 그대로 돌아가게 될 것 같았다. 파도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됐잖아. 이미 많이 경험했고, 조금은 성장했으니까. 여기서까지 조급해할 필요 없어.”


기대했던 여행 막바지의 ‘성숙한 나’는 없었다. 오히려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고등학교 때의 나와 다르지 않은 '나'만 있었다. 파리든 바르셀로나든, 풍경은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장소는 수단일 뿐, 결국 내가 바라봐야 할 건 내 감정 그 자체였다.

파리에서 같은 숙소의 아저씨가 말했던 ‘고독을 즐겨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땐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혼자 파도 앞에 앉아 있으니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어쨌든 이건 나만을 위한 여행이었으니까. 지금까지 고생했고, 앞으로 더 고생할 테지만…(?) 그러니 오늘만큼은 그냥 파도처럼 흘러가는 이 순간을 즐기면 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밀라노] 혼밥의 기쁨과 외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