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서 생산자를 고민하다
이렇게 계속 가도 괜찮은 걸까?
직장생활 5년 차. 어느새 달력은 또 한 장 남았고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연말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요즘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크게 보면 질문은 단순하다. 이 판 안에 계속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직접 짠 판의 안에 있을 것인가. 물론 당장 회사를 박차고 나갈 것까지는 없다. 다만 이 질문이 예전보다 훨씬 진지해졌다는 게 스스로도 느껴진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이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판을 짜는 사람과 그 판 안에 있는 사람. 누가 더 낫다거나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역할의 차이다.
이 감각을 처음 또렷하게 느낀 건 군대에서였다. 훈련을 나갔을 때, 쉬는 시간에 우연히 간부들의 텐트 근처를 지나가게 됐다. 안에서는 작전 회의가 한창이었고, 지도 위에는 말판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말판 하나를 툭 움직이며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가보죠.”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빠르게 끝났다.
잠시 후, 각 부대에 지시가 떨어졌다. 그날 밤 우리 부대는 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 그들에게는 지도 위 말판 하나를 옮긴 것뿐이었겠지만, 그 말판 자체였던 나는 지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다는 사실. 그 순간 처음으로 실감했다. 나는 지금 판을 짜는 사람이 아니라, 판 위에서 움직이는 존재구나. 이 감각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사회에 나와 직장인이 된 뒤, 이 감각은 형태만 바뀐 채 다시 나타났다. 회사에서도 나는 주어진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를 내고, 성과를 만든다. 하지만 판의 크기와 방향은 내가 정하지 않는다. 누군가 정해둔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허용된 작은 범위에서는 내가 판을 짜지만)
그렇지만 이를 통해서도 얻는 건 있다. 안정적인 월급, 배울 수 있는 환경, 함께 일하는 사람들 등등. 다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질문이 스쳤다. “나는 계속 판 안에 있는 사람으로만 남을 것인가?”
이때부터 주변의 풍경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왜 사업이나 부업을 하는지. 예전에는 막연히 욕심 같아 보이던 행동들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해석됐다. 불안해서라기보다 이 판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감지했기 때문 아닐까. 나 역시 비슷한 감정 위에 서 있다.
이쯤에서 생각은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구조로 이어진다. 자본주의의 규칙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누군가의 필요를 해결해 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이 구조 안에서는 2가지 종류의 player가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그동안 나는 비교적 명확한 소비자의 위치, 혹은 생산 과정의 일부로서 움직여왔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다른 입장이 궁금해졌다. 아주 작게라도, 느리게라도, 내가 만든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 쪽. 판을 완벽하게 짜지 못하더라도, 말판이 아니라 말을 움직여보는 쪽 말이다.
연말이 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생산자의 마인드로 살아보고 싶다.
결과가 어떻든, 크든 작든, 성공이든 실패든 말이다.
최소한 판의 구조를 알고 움직여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