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보수여 각성합시다
대한민국 도덕이 진정으로 죽은 날이 있다면, 그것은 법전의 조문이 무너진 날이 아니라, 만인의 상식과 양심이 침묵하는 날일 것이다. 2025년 6월 3일, 이 땅의 도덕은 마침내 그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동서고금의 종교는 인간의 행실에 사후의 심판을 약속해 왔다. 기독교는 천국과 지옥을, 천주교는 연옥이라는 재심의 관문까지 두어 인간의 삶에 영원한 책임을 묻는다. 불교는 업(業)의 사슬로 전생과 내생을 잇고, 선악의 과보를 현실과 미래에 실현한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태동한 유교의 도덕은 다르다. 유교는 저 먼 내세가 아닌, 바로 이 세상, 이 마을, 이 순간에 도덕의 심판을 실현한다.
동네 어귀의 느티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은 어른들은 지나가는 젊은이의 행실을 평한다. “저 아이는 아버지를 닮아 성실하고, 공부도 잘해 출세했구나.” “저 청년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행실이 불량하니, 부모를 닮았구나.” 이렇듯 유교적 심판은 법정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눈과 입, 그리고 전통의 상식 속에서 이루어진다. 법을 넘어선 도덕의 심판, 그것이 곧 동양 도덕의 본령이었다.
6월 3일, 우리는 대통령이라는 국가의 최고 어른을 뽑았다. 그러나 새로이 선출된 이는 인성, 청렴성, 능력에 있어 상대 후보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파파미 김문수를 외면하고, 수많은 글로도 다 담을 수 없는 흠결을 가진 이를 국민 49%가 선택했다.
물론 이번 선거에는 비상계엄, 탄핵, 부정선거 의혹과 제도적 불신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운명을 걸고 내린 선택이 도덕적 기준을 저버리고, 상식의 최후의 보루마저 허문 날로 기록되고 말았다.
유교의 도덕은 현실에서의 심판은 이번 대선에 없었다. 동네 어른의 한마디, 이웃의 평판, 후손의 역사적 평가가 곧 도덕의 법정인데 말이다. 6월 3일, 대한민국 국민의 법정은 무엇을 했는가? 도덕과 청렴의 기준이 무너진 이 순간, 우리는 동양 도덕의 마지막 보루마저 붕괴되는 광경을 목도했다.
통탄스럽다.
이제 누가 아이들에게 “바르게 살아라, 성실하라, 청렴하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지도자의 인성, 도덕, 능력을 논할 수 있겠는가. 법 이전의 도덕, 상식의 심판이 사라진 사회는, 법치의 껍데기만 남은 공동체일 뿐이다.
오늘의 선택은 단지 한 사람의 당선이 아니라, 한 시대의 도덕적 붕괴를 선언하는 사건이었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도덕의 부활을 꿈꿀 수 있을 것인가. 느티나무 그늘 아래, 다시금 상식과 양심이 살아나는 그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오호통재(嗚呼痛哉)! 도덕이 죽은 이 땅에, 다시 도덕이 살아날 그날을 위하여 자유보수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칼럼니스트 박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