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본 시민 교양론 - 제3장-2'
[표지사진: 필자가 감마로 생성]
자유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개선되어야 하는 진행형의 실험이며, 동시에 언제든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취약한 체제이기도 하다. 특히 한 정당이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들을 살펴보면,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정교한 균형 위에 서 있는지 알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우려되는 상황 중 하나는 한 정당이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특정 정당이 국회 300석 중 190석 이상을 확보하면, 이론적으로는 헌법 개정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막강한 입법권을 바탕으로 행정부 인사들을 자의적으로 탄핵하거나, 특정 인물 보호를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대법원장 탄핵·특검·국정감사 등을 통해 사법부를 압박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나아가 해당 정당의 대표가 대통령이 된 후 진행 중인 재판을 중지하거나 면죄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이는 더 이상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뿐만 아니라 소수 보호, 권력 분립, 법치주의라는 핵심 가치들이 균형을 이룰 때 실현된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당 독주 상황은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린 사례들이 있다.
1930년대 독일에서 나치당이 선거를 통해 다수를 차지한 후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과정이 대표적이다. 히틀러는 처음에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었지만, 일단 압도적 다수를 확보한 후에는 반대 정당들을 억압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며 사법부를 장악해 나갔다. 이처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얻은 권력이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런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터키의 에르도안 정권, 헝가리의 오르반 정권, 폴란드의 법과정의당 등이 모두 선거를 통해 집권한 후 점진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약화시켜 온 사례들이다. 이들은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며, 시민사회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비자유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를 만들어갔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위험은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기반하지만, 다수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며,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민자에 대한 차별적 법안이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이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존 스튜어트 밀이 일찍이 경고했던 "다수의 폭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적인 위협이다.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51%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100%의 권력을 갖게 된다. 49%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 게임으로 전락하고, 소수의 목소리는 영원히 묻혀버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 민주주의를 넘어서 헌법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헌법과 인권선언을 통해 다수라 하더라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의 영역을 설정하고,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같은 사법기관이 이를 보호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권 밖에서의 견제 장치들이 필수적이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제4부'의 역할을 하며, 시민사회단체들은 다양한 이익과 가치를 대변하며 정치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런데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가 되고 어용시민단체들이 홍위병 노릇을 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설자리가 없어진다.
공론장의 중요성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론장(public sphere) 개념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 공론장은 시민들이 공적 관심사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카페, 광장, 신문, 방송 등이 전통적인 공론장의 역할을 해왔다.
하버마스는 건전한 민주적 토론이 이뤄지기 위한 '이상적 발화상황(ideal speech situation)'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모든 참여자가 동등한 발언 기회를 갖고, 어떤 강제나 조작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으며, 오직 더 나은 논증의 힘으로만 설득이 이뤄지는 상황을 말한다. 또한 참여자들은 진실성을 갖고 토론에 임해야 하며, 사회적 지위나 권력에 관계없이 평등한 위치에서 소통해야 한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이상적 조건이 완벽하게 실현되기는 어렵다. 경제적 불평등, 교육 격차, 언론의 편향성 등이 공론장의 질을 저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 조건을 지향점으로 삼아 공론장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이다.
21세기 들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민주주의에 새로운 가능성과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가져왔다. 이른바 '디지털 민주주의'는 기존의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거나 때로는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참여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기회들
첫째, 디지털 기술은 시민 참여의 장벽을 크게 낮췄다. 온라인 투표, 전자 청원, 디지털 공청회 등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기존 정치제도에 무관심하던 상황에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정치 참여는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둘째, 실시간 소통과 투명성이 증대되었다. 정치인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민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정부 데이터의 공개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정보 접근성 향상으로 정부의 투명성이 높아졌다.
셋째, 다양한 목소리의 증폭이 가능해졌다. 기존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소외되었던 집단들도 온라인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미투 운동, 환경 운동, 각종 사회 개혁 운동 등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위험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험을 가져오기도 한다. 첫째, 가짜뉴스와 정보 조작의 문제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허위 정보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고, 이는 시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특히 선거 시기에 의도적으로 유포되는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정한 선거를 위협한다.
둘째,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와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다. 알고리즘 기반의 소셜 미디어는 사용자의 기존 신념과 선호에 맞는 정보만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어,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의견에 노출될 기회가 줄어든다. 이는 사회의 분극화를 심화시키고 합리적 토론을 어렵게 만든다.
셋째, 디지털 포퓰리즘의 등장이다. 복잡한 정치 이슈들이 140자 트윗이나 짧은 영상으로 단순화되면서, 감정적이고 선동적인 메시지가 더 쉽게 확산된다. 이는 깊이 있는 정책 토론보다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정치 참여를 조장할 수 있다.
넷째, 디지털 감시와 조작의 위험이다. 권위주의 정부들은 디지털 기술을 시민 감시와 여론 조작에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의 사회신용시스템이나 러시아의 인터넷 검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세대를 거쳐 발전해 왔다.
1세대: 저항과 투쟁의 시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의 시민운동은 명확한 적과 아군의 구분, 집단적 저항과 연대의식, 그리고 희생을 감수하는 숭고한 정신력이 특징이었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고, 그들의 피와 땀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대립적 구조는 민주화 이후에도 진영논리와 이분법적 사고의 관성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2세대: 감시와 비판의 시대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감시와 비판을 중심으로 한 2세대 시민운동이 전개되었다. 경실련, 참여연대, 시민의 신문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시민단체들은 정부와 기업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부패척결, 정책 비판, 권력 견제가 주요 활동 영역이었다.
이 시대의 시민운동은 전문성과 체계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변호사, 교수, 전문가들이 시민단체를 이끌며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언론을 통해 여론을 형성해 나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여전히 수동적 후원자나 관찰자의 역할에 머물렀고,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 사이의 거리감이 존재했다.
3세대: 참여와 협력의 시대 - 그리고 그 한계
2000년대 중반 이후 3세대 시민운동은 단순한 비판과 견제를 넘어 직접적인 참여와 협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시민배심원제, 참여예산제, 시민참여위원회 등 제도적 참여 채널이 확대되었고, 시민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이런 제도화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이 정치권력의 어용기관으로 변질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부나 정치세력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들러리 역할에 그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별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정부 지원금이나 위탁사업에 의존하게 되면서 비판적 독립성을 잃고 권력에 순응하는 경우가 증가했다. 이로 인해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견제 기능이 약화되고, 진정한 시민 참여보다는 형식적 참여에 머무르는 한계가 드러났다.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제도적 차원에서는 권력분립과 견제균형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단순히 삼권분립이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권력기관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정치문화 차원에서는 관용과 타협의 정신이 뿌리내려야 한다.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보지 않고 동반자로 인정하며, 선거에서 지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민주적 성숙함이 필요하다.
셋째, 시민 차원에서는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정치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필요할 때는 목소리를 내는 능동적 시민권의 행사가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핵심이다.
넷째, 공론장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아우르는 건전한 토론 문화를 만들고, 시민들이 다양한 의견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시스템의 개선, 언론의 공정성 확보, 디지털 플랫폼의 책임성 강화 등이 필요하다.
국민저항권(국민의 저항권)은 정부나 국가권력이 헌법질서를 파괴하거나 민주주의를 위협할 때 국민이 이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한국 헌법은 저항권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지만, 헌법 전문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어 헌법정신에 저항권이 내재되어 있다고 해석된다. 헌법재판소는 여러 결정에서 "헌법질서를 파괴하려는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권은 국민의 자연권적 권리"라고 인정한 바 있다.
저항권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행사 가능하다. 헌법질서의 근본적 파괴나 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시도가 있어야 하고, 합법적·평화적 수단(선거, 법원, 국정감사 등)이 모두 차단되었거나 무력화된 상태여야 한다. 또한 저항으로 얻을 이익이 저항으로 인한 피해보다 현저히 커야 하며, 다른 대안이 없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저항권은 평화적 시위, 시민불복종부터 시작하여 극단적 경우 무력저항까지 포함할 수 있지만, 항상 비례성 원칙을 지켜야 한다. 4·19 혁명이나 6월 민주항쟁이 대표적인 저항권 행사 사례로 평가된다. 다만 저항권은 매우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할 권리로, 단순한 정책 불만이나 정치적 대립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법철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법조문 하나도 투쟁을 거치지 않고서 얻어진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일 뿐이란 통찰이다. 고정된 사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동하는 힘으로서의 법을 예링은 웅변한다. 불법에 대한 저항은 인간됨의 의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다. 도덕적인 자기 보존의 준엄한 명령은 바로 이 시대 대한민국 자유애국 시민이 듣고 있는 시대의 목소리다.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된 제도가 아니다. 매 순간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끊임없는 개선 노력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소중하면서도 취약한 실험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민주주의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가져왔다.
중요한 것은 기술 발전에 따라 민주주의의 형태는 변할 수 있지만, 그 핵심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법치주의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버마스가 제시한 이상적 발화상황의 조건들을 디지털 공론장에서도 실현하려는 노력과 함께, 시민들의 성숙한 민주적 소양이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때로는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라도 지켜야 할 만큼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