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문일석, 펜에서 붓으로 향하는 예술적 여정
[표지: 문일석 브레이크뉴스 대표가 소장 중인 누드화 중 하나 / 페이스에서]
인간의 몸은 언제나 예술의 근원이었다. 라스코 동굴의 원시 벽화에서 현대 갤러리의 설치 작품에 이르기까지, 누드화는 인류가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해 온 가장 솔직하고도 보편적인 예술 언어였다.
그리고 지금, 수십 년간 펜으로 세상의 진실을 추적해 온 브레이크뉴스 문일석 대표가 3,000여 점의 누드화 컬렉션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열고자 한다.
누드화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의 자화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나체는 신성과 완전함을 상징했다. 올림픽 경기장에서 벌거벗은 채 경쟁하며 이상적 육체미를 찬미했던 그리스인들은 '원반 던지는 사람'을 통해 인간 존재의 숭고함을 대리석에 새겼다.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여신의 나체를 통해 아름다움이 영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최초로 선언한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르네상스는 인간을 다시 예술의 중심에 세웠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신화적 모티프를 빌려 관능과 순수가 공존하는 육체의 미학을 탐구했다. 이는 단순한 감각적 재현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미학적 승화였다.
근대에 들어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와 마네의 '올랭피아'는 사회적 통념에 균열을 냈다. 누드화는 이제 형상 묘사를 넘어 시대를 비판하고 의식을 깨우는 메시지의 통로가 되었다.
한국 누드화의 여명은 김관호의 1916년작 《해질녘》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인이 그린 최초의 누드화로 기록되는 이 작품은 당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후 이쾌대, 이인성, 박영선 등의 작가들이 꾸준히 인체 표현을 통해 한국 근대 미술의 지평을 넓혀갔다.
누드화의 진정한 힘은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탐구하는 데 있다. 사회적 지위나 역할을 규정하는 의복에서 벗어난 몸은 가장 솔직하고 연약하며, 동시에 강인한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존재의 유한함, 희로애락의 감정까지, 누드화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보편적 경험을 깊이 있게 포착한다.
숙련된 예술가의 손에서 인체의 곡선은 우아한 율동이 되고, 빛과 그림자는 생동하는 입체감과 감정을 불어넣으며, 색채는 피부의 온기와 생명력을 전달한다. 이는 감각적 자극을 초월하여 영혼을 울리는 순수한 미적 체험으로 승화된다.
문일석 대표의 '누드화 미술관' 건립 구상은 개인적 열정을 넘어선 문화사적 의미를 지닌다. 거의 한평생을 펜으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제시해 온 그의 예리한 시각이 이제 캔버스 위에 펼쳐진 인류의 역사와 만나고 있다.
첫째, 이 프로젝트는 누드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누드화는 여전히 외설이라는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사회 문제를 조명해 온 언론인의 시각으로, 누드화가 지닌 예술적 깊이와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여 예술에 대한 이해를 성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국 누드화의 가치 재조명이다. 3,000여 점의 방대한 컬렉션은 한국 누드화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조망하고, 우리 미술사에서 누드화가 지닌 예술적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셋째, 문화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이다. 독특한 주제와 방대한 규모로 국내외 관람객의 관심을 끌어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한국을 세계적인 예술 허브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미래는 누드화 미술관 관장이다"라는 문일석 대표의 선언에는 예술에 대한 진정한 헌신이 담겨 있다. 펜으로 진실을 추구해 온 언론인이 붓으로 그려진 아름다움을 통해 다시 한번 세상과 소통하려는 이 여정은, 예술이 지닌 변혁적 힘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누드화에 새겨진 인류 문명의 궤적을 현재로 이어가려는 그의 비전이 실현된다면, 이는 한국 미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의미 있는 성취가 될 것이다. 예술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2025년 6월 20일
페이스북에
하정열 장군 화가님과 찍은 사진과
문일석 대표님의 글을 보고
칼럼니스트 박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