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법무부장관 내정자 "공소 취소가 맞다?"
"짐이 곧 국가다(L'État, c'est moi)" - 루이 14세가 남긴 이 오만한 선언이 35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에서 "李가 곧 국가다"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떨리는 손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일들이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지 불과 한 달, 우리는 전례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2025년 5월 1일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6월 9일 헌법 제84조를 근거로 중단되었다. 이어 6월 29일 지명된 정성호 법무부 장관 내정자는 "입법적으로 해결하겠다"며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대통령 재판 중단 법제화 의지를 밝혔다.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줄곧 "무죄임에도 검찰이 정치적 의도로 기소했다"라고 주장해 왔다. 그렇게 결백하다고 확신한다면 왜 재판을 회피하려 하는가? 무죄라면 당당히 재판을 받아 결백을 입증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재판 중단을 위해 온갖 법리적 해석을 동원하는 모습은 오히려 결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이 조항의 해석을 둘러싸고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는 "소추"의 범위를 재판까지 포함한다고 보지만, 다수 헌법학자들은 이를 검찰의 기소 행위로 한정해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현재 사법부가 이 조항을 권력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확대 해석하여 모든 재판을 중단시켰다는 점이다. 헌법 제84조의 입법 취지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보장하는 것이지, 법적 책임 자체를 면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기소된 사건에 대해서는 직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재판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 통상적 해석이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권력이 법 위에 서려할 때마다 비극이 반복되었다. 물론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과거의 독재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법부와 입법부가 존재하고, 언론과 시민사회가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며 왕권을 법 위에 두었지만, 그 결과는 국고 탕진과 백성의 고통, 그리고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진 왕정의 몰락이었다. 더욱 주목할 점은 히틀러의 사례다.
히틀러는 처음부터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거쳐 수권법을 통과시키고, 법의 이름으로 독재를 정당화했다. 합법적 절차를 가장한 권력 장악, 법을 권력 보호의 도구로 활용, 사법부의 독립성 상실이 그 과정이었다.
20세기 공산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련, 중국, 북한 등은 모두 "인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당과 지도자 개인을 법 위에 두었다. 그 결과는 수천만 명의 희생과 인권 유린이었다. 이들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법이 권력자의 도구가 되는 순간, 법치주의가 아니라 인치주의(人治主義)가 되면 그 사회는 자유를 잃고 전제주의(專制主義) 국가가 된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지난달 26일 한 강연에서 "국민들은 재판이 진행 중인 걸 알고 대통령을 선택했다"며, "공소 취소가 맞다"라고 주장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내정자는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38년간 인연을 이어온 정치적 최측근이다. 그의 지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추진하려는 정책들을 보면 심각한 우려가 든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대통령 재판 중단 법제화, 공직선거법에서 '행위' 조항 삭제를 통한 이재명 대통령 관련 혐의 해소, 검찰 조직 개편을 통한 수사권 무력화가 그것이다. 이는 법무부 장관이 해야 할 "법무행정"의 범위를 넘어 특정 개인의 법적 문제 해결에 국가기관을 동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국가의 법무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지, 특정 개인의 법적 리스크를 해결하는 기관이 아니다. 16세기 교황 레오 10세가 면죄부를 판 것처럼, 현대의 "사법적 면죄부"를 국가 차원에서 발행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필자는 30여 년간 금융 현장에서 독서와 글을 쓰면서 수많은 기업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법치 수준이 1% 개선되면 실질 국민소득이 최대 1.75%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대로 법치주의가 무너진 국가들은 예외 없이 경제적 침체를 겪었다.
투자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법의 예측가능성이다. 법이 권력자의 편의에 따라 해석되고 적용되는 국가에 자본을 투자하려는 투자자는 없다. 권력자가 법 위에 서면 모든 계층에서 부패가 만연해지고, 공정한 경쟁질서가 파괴되어 혁신과 성장 동력을 잃게 된다.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 전체의 신뢰 기반이 무너진다.
존경하는 이재명 대통령님, 진정 결백하다면 다음과 같이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죄가 없다. 따라서 대통령 재임 중에도 당당히 재판을 받겠다. 법 앞의 평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대통령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나의 결백함을 재판을 통해 당당히 입증하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닌가? 법을 회피하려는 모습은 결백에 대한 의문만 키울 뿐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법치주의의 모범을 보일 때, 국민들도 법을 신뢰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입니다. 우리가 침묵한다면 법치주의는 점진적으로 무너질 것이고, 권력자의 자의적 판단이 법을 대체할 것이며, 우리 자녀들은 법의 보호 없는 사회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견제와 균형의 장치들이 남아 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성 강화, 권력 분립의 실질적 실행, 시민 참여의 확대를 통해 법치주의를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감시와 참여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입니다.
"李가 곧 국가다"라는 새로운 절대왕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루이 14세의 프랑스도, 히틀러의 독일도, 스탈린의 소련도 모두 "합법적" 절차를 거쳐 독재로 치달았습니다. 차이점은 단 하나, 국민이 깨어있었느냐의 여부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李가 곧 국가다"라는 새로운 전제국가로 전락할 것인가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법치주의는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있고, 행동할 힘이 있습니다. 지금이 그 힘을 발휘할 때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마스 제퍼슨은 "자유는 영원한 경계를 요구한다"라 말했습니다. 자유를 얻는 것만큼이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끊임없는 노력과 주의를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무관심은 자유의 적입니다. 시민들이 권력에 경계를 늦추고 무관심해지는 순간, 자유는 서서히 침식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그 경계선에서 역사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박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