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문턱에서 본 세계 그리고 한국

"야만의 시대에서 상생의 문명으로, 홍익인간 정신이 여는 새로운 천년"

by 박대석

가을문턱에서 본 세계 그리고 한국

"야만의 시대에서 상생의 문명으로, 홍익인간 정신이 여는 새로운 천년"


울부짖던 매미소리는 잦아들고 귀뚜라미 소리가 공백을 메우며, 유난히도 무더웠고 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7월 말부터 8월까지 한국은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약점 많은 정권이 들어서서 급작스럽게 친미 성향을 보이느라 70여 년 한미동맹 프리미엄이 사라졌다. 0%인 관세가 15%로, 약 5천억 달러 투자, 그것도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있을 수 없는 매국적 협상을 했다.


다행히 진정성은 논란 중이지만, 이재명 정권이 안미경중과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공개적으로 한미동맹 강화, 친미 스탠스를 취한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는 진정성 있는 동맹국으로 후속 협상을 잘하면 의외의 좋은 성과도 나올 수 있다.


가을문턱에서 바라본 세계와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인류는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점에 서 있고, 한국은 그 중심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의 도전


세계는 지금 전통적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에 봉착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4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1%로, 2000년대 평균 4.3%에 크게 못 미치는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닌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0개국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출산율은 인구대체율 2.1명을 크게 밑돌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25년 1분기 합계출산율이 0.8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기존 성장 모델의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하는 신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득 불평등의 심화다. 옥스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가 전체 부의 47%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경고했듯이,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상회하면서 부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기술 혁신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현실은 기술 발전이 고용 창출보다는 일자리 대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까지 8,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9,7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충격은 만만치 않다.


▲ 글로벌 메가트렌드와 범용기술의 대전환


2025년 현재 글로벌 메가트렌드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도시화 가속, 기후변화와 자원 부족, 인구구조 변화, 글로벌 경제력 이동, 기술의 도약이라는 틀은 유지되지만, 그 세부 내용은 크게 진화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AI와 데이터 중심 혁신이 모든 변화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단순한 범용기술을 넘어 문명 전환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지식 노동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AI 에이전트가 독자적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범용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 관점에서 보면, 과거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 인터넷이 그랬듯이 AI는 산업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AI가 2030년까지 전 세계 GDP를 13조 달러 증가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동시에 양자컴퓨팅, 생명공학, 나노기술,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여러 기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기술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술 주권을 확보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 다극화되는 글로벌 질서 속 한국의 위치


현재 글로벌 질서는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다극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의 고립주의 회귀와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현실화되었고, 이에 대응해 중국과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 반미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BRICS 국가들의 결속력도 강화되면서 미국 주도의 단극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이런 지정학적 경쟁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교역 의존도가 25%에 달하면서도, 안보 측면에서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복잡한 상황이다. 8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런 양다리 외교의 한계가 명확히 노출되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중견국 외교를 통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멕시코,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등과의 연대를 통해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완전한 중립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 한국의 글로벌 위상과 잠재력


2025년 기준 한국의 주요 지표를 보면 놀라운 성취와 동시에 심각한 도전이 공존하고 있다. 총인구 약 5,168만 명, 1인당 국민총소득 36,624달러로 세계 6위 수준, GDP 세계 13위라는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반도체 메모리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조선업 세계 1위, K-컬처의 전 세계적 확산 등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다.


글로벌 메가트렌드와 범용기술 측면에서 한국이 보유한 우위는 상당하다. AI와 반도체 기술의 결합, 5G·6G 통신 인프라, 디지털 헬스케어, 그린에너지 기술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 현대차의 수소차 기술,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기술 등은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인프라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 최저 출산율 0.82명,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 행복지수 최하위권이라는 어두운 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경제적 성장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 홍익인간 정신과 상생 헤게모니의 가능성


5천 년 한민족 역사의 근저에 흐르는 홍익인간 정신은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홍(弘)은 사랑과 자비를, 익(益)은 실질적 이익을, 인간(人間)은 사람과 관계된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인본주의를 넘어 우주 만물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총체적 사상이다.


흥미롭게도 현재 글로벌 투자계를 주도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철학이 홍익인간 사상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는 사실상 홍익인간 정신의 현대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민주주의 위기, 국제갈등 등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 핵심에 홍익인간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책임의 균형, 경쟁과 협력의 조화 등 상생의 가치가 절실한 시대다.


▲ 미국이라는 천혜의 자산 활용 전략


한국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천혜의 자산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70년 한미동맹은 단순한 군사동맹을 넘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문명 동맹이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혁신적 접근이 필요하다. 주한미군의 북한 분산배치를 통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유엔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관을 겸직한다는 점에서 법적 근거도 마련되어 있다.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후 30년간 GDP가 15배 증가한 사례를 보면, 북한도 체제 안정을 보장받으면서 경제 개방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 한미연방제라는 혁명적 대안도 검토할 만하다. 영연방 모델처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강력한 연방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하와이가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가 된 이후에도 고유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더 긴밀한 연대를 모색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구상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주권 포기라는 비판, 중국과의 관계 악화 우려, 국민적 합의 부족 등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 보면, 한국의 생존과 번영은 가치를 공유하는 강대국과의 연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 가을 아침, 새로운 천년을 향한 다짐


매미소리가 잦아든 가을 아침, 세계사의 새로운 장을 써나가야 할 때가 왔다. 한국은 더 이상 강대국의 틈새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약소국이 아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기술 선도국으로서, 인류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책임과 역량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야만적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를 끝내고, 상생의 문명을 여는 것. 이것이 홍익인간 정신을 계승한 우리 세대의 사명이다. 미중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되, 그 토대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주의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 굳건히 서야 한다.


코리아 헤게모니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의한 지배가 아닌, 모범과 협력을 통한 자연스러운 리더십이다. K-팝과 K-드라마로 시작된 한류가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처럼, 홍익인간 정신에 바탕한 상생의 철학이 인류의 미래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한 학인의 마음에 품은 것은 작은 나라의 큰 꿈이 아니라, 큰 민족의 당연한 사명감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되찾아, 21세기 인류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할 때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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