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을 때 싸워야 한다.
[표지: 폭앞에 항거하는 판사들이 모습을 whisk로 생성]
대한민국이 헌정질서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이라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조희대 대법원장의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 나타난 일련의 변화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검찰 해체, 예산 통제권의 대통령실 이관, 감사원 정책감사 기능 마비, 금융위 해체시도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권력 기관들을 하나씩 장악해 나가는 체계적 전략의 일환이며, 특히 방송통신위원회 해체와 방송 3 법 강행은 언론 장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 축출 시도 과정에서 보인 여당의 행태는 '개혁'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진짜 목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요 언론사 약 10여 개는 사실상 민주노총이 장악환 상황이다.
6시간 만에 평화적으로 해제된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리적 판단보다 정치적 계산이 앞선다. 당시 모든 정보를 장악한 대통령이 지적한 민주당의 탄핵 폭거로 인한 국정 마비 상황과 부정선거 의혹이라는 배경은 외면한 채, 오직 정치적 적(敵) 제거에만 매몰된 모습이다. 이는 단순한 과거 청산이 아니라 미래의 비판 세력까지 원천 차단하려는 예방적 숙청의 성격을 띤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제거함으로써 향후 정권에 대한 견제 세력 자체를 소멸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외교 정책의 위험한 변곡점이다. 지난 8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한 5천억 달러 대미투자 공약이 불과 몇 달 만에 "사실상 불가능"으로 번복된 것은 심각한 외교적 신뢰 위기를 예고한다. "미국 요구대로 했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는 발언은 책임 회피를 넘어 한미동맹 자체를 볼모로 삼는 위험한 도박이다. 70년 한미동맹의 균열은 북한 위협 대응은 물론, 외국인 투자 철수와 경제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정치적 계산을 위해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잡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한 여당의 사퇴 압박은 사법부 장악의 마지막 단계다. 허위 AI 녹음까지 동원하는 치밀함은 그들의 절박함을 보여주며,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요구 또한 같은 맥락이다. 지난 5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이 보인 애매한 태도가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 선거 전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서울고법으로 떠넘긴 것은 사법부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방기한 결과다.
조 대법원장은 최근 "법관은 권력이나 여론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라고 천명했다. 하지만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헌법 제84조를 근거로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 관련 재판을 즉각 재개해야 한다. 법적 근거는 충분하고, 정치적 부담은 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사법부 독립성을 지키는 마지막 기회다. 조 대법원장이 물러나는 순간 사법부는 권력의 들러리로 전락하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는 무너진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경고는 80년 전 나치 독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에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도,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도,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도 나는 침묵했다.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바로 그 과정이다. 오늘 윤석열을 침묵으로 방치하면 내일은 조희대가, 모레는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칼날 앞에 홀로 서게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