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에 선 AI, 그러나 진짜 승부는 제조에서 갈린다
2025년 10월, 인공지능 시장은 결정적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다.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생성형 AI 지출이 전년 대비 76.4% 증가한 6,4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지출의 80%가 하드웨어 부문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AI가 소프트웨어 차원의 실험을 넘어 우리 손 안의 스마트폰과 데스크톱, 산업 현장의 기계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화려한 AI 붐의 이면에는 심각한 경고가 울리고 있다. 2025년 10월 22일, 노벨상 수상자 제프리 힌턴과 요슈아 벤지오를 포함한 1,000명 이상의 저명인사들이 초지능 AI 개발 금지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은 초지능을 "모든 인지 과제에서 인간을 현저히 능가하는 수준의 AI 시스템"으로 정의하며, 스스로 전략적 결정을 내리고 코드를 수정하며 인간의 감독을 벗어나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심지어 극우 인사인 스티브 배넌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을 초월해 이 서한에 서명했다.
유발 하라리는 명확히 지적했다. "초지능은 인류 문명의 운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가능성이 높으며, 전혀 필요하지 않다. 지금은 통제 가능한 AI 도구를 개발해 실질적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오픈 AI,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귀를 닫았다. 오픈 AI 샘 알트먼은 올해 1월 "오픈 AI의 초점이 초지능 개발로 전환되고 있다"라고 공언했고, 메타는 '슈퍼인텔리전스 랩스'에 143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제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통제 불가능한 소프트웨어 기반 초지능 경쟁에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제조업이라는 물리적 안전장치를 갖춘 새로운 길로 방향을 전환할 것인가. 그 답은 'Quantum AI 기반 제조업'에 있다.
'Quantum AI 기반 제조업'은 두 개의 핵심 축이 융합된 미래 제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 번째 축은 양자컴퓨팅 하드웨어 제조다. 양자컴퓨터를 구성하는 큐비트, 극저온 케이블, 절연체, 제어 칩 등 모든 핵심 부품의 초정밀·최소화 집적 생산을 의미한다. 이는 나노급을 넘어 원자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극한제조 기술의 집약체다. 절대온도 0.015K(영하 273.135도)라는 우주 공간보다 차가운 환경에서 작동하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일이다.
두 번째 축은 AI를 활용한 양자컴퓨팅 제조 및 산업 최적화다. 양자칩 설계 단계에서 AI는 수백만 가지 설계 조합을 시뮬레이션하여 최적의 큐비트 배치와 연결 구조를 찾아낸다. 삼성전자가 AI를 활용해 반도체 설계 시간을 30% 단축한 것처럼, 양자칩 설계에서도 AI가 설계 공간 탐색을 극적으로 가속화한다.
소재 연구에서는 'AI for Quantum Materials'라는 새로운 분야가 형성되고 있다. AI가 양자 특성을 가진 신소재를 예측하고, 실험 전에 후보 물질을 선별한다. UNIST 김제형 교수팀이 개발한 상온 작동 양자 소재처럼, AI 기반 소재 탐색이 혁신적 발견을 이끌고 있다.
제조 공정에서는 AI가 극저온 환경의 미세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보정한다. 큐비트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노급 결함을 AI가 조기에 감지하여 수율을 향상한다. SK하이닉스가 AI 기반 품질 검사로 불량률을 40% 줄인 것처럼, 양자칩 제조에서도 AI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완성된 양자컴퓨터는 다시 AI가 풀지 못하는 복잡한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여 제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끈다. 이것이 바로 'Quantum AI'의 선순환 구조다.
이 두 축이 만나는 지점에서 통제 가능하고 안전한 기술 혁명이 시작된다. 소프트웨어로만 존재하는 초지능과 달리, 물리적 제약이 명확한 하드웨어 기반 기술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실험실의 이론이 아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신약 개발과 의료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10~13년과 25억 달러 이상이 소요됐다. 그러나 BASF는 양자컴퓨팅과 AI를 결합한 분자 시뮬레이션으로 실험 횟수를 90% 이상 줄였으며, 개발 기간을 3년에서 6개월로 단축하는 혁신을 이뤄냈다.
모더나는 mRNA 백신 설계에 양자 AI를 활용해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앞당겼다. 이는 난치병 치료제를 더 저렴하고 빠르게 보급하게 만들어,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향상하는 기술이다.
금융 분야에서도 실질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영국 너트웨스트 그룹은 양자 알고리즘을 활용해 부실채권 처리 비용 계산 시간을 몇 주에서 초 단위로 단축했다. JP모건 체이스와 골드만삭스는 포트폴리오 최적화와 리스크 분석에 양자컴퓨팅을 도입했다. IBM은 금융 분야에서 양자컴퓨터가 AI 기반 금융사기 탐지 시스템의 정확도를 현재 9095% 수준에서 99% 이상으로 향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8~2009년 금융 위기 당시 한 투자 은행가는 "양자컴퓨터가 있었더라면 은행 대차대조표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실시간으로 실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존 컴퓨터로는 하룻밤이 걸리던 계산이 양자컴퓨터로는 순식간에 가능해진다.
물류와 제조 분야의 최적화도 현실이 되고 있다. BMW는 양자컴퓨팅과 AI를 결합해 생산라인을 최적화하고 재고 비용을 25% 절감했다. 폭스바겐은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교통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수백만 가지 조합 중 최적 경로를 찾고, 실시간 수요 변동을 반영해 생산 계획을 조정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는 단순히 비용 절감을 넘어 탄소 배출 감소로 이어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양자컴퓨터가 2035년까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을 최대 150 기가톤까지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소재 혁신은 고효율 에너지 저장 장치 개발을 가속화하여 개인의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산업 탈탄소화를 촉진하여 깨끗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이는 통제 가능한 기술이 인류에게 선사하는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혜택이다.
한국에서도 움직임이 시작됐다. 포스코는 AI 기반 제강 공정 최적화로 에너지 소비를 15% 줄였으며, 향후 양자컴퓨팅을 도입해 더 복잡한 합금 설계에 도전할 계획이다. LG화학은 AI로 배터리 소재 후보를 선별하고, 양자 시뮬레이션으로 분자 수준 특성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 양자컴퓨팅 분야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일자리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 5월 기준,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 등 세계 주요 기술 기업에서 발표된 감원 규모는 약 7만 5천 명에 달했다. 업계는 이러한 감원 배경으로 AI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AI가 기존 업무를 대체하면서 나타난 구조적 변화를 꼽는다.
그러나 양자컴퓨팅 분야는 완전히 다른 흐름을 보인다. 링크드인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양자컴퓨팅 관련 직무 공고는 180% 증가해 2024년 중반 8,400건을 넘어섰고, 다른 조사에서는 같은 기간 450%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2025년 한 해에만 신규 양자 관련 일자리가 1만 개 이상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양자경제개발컨소시엄(QED-C)은 2030년까지 10만 명 이상의 추가 양자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양자컴퓨팅은 산업 전체 데이터셋 규모가 작고, 하드웨어와 알고리즘이 표준화되지 않은 초기 단계다. 기종과 아키텍처마다 최적화 방식이 다르고, 많은 기술이 소수 연구소와 기업에서 비공개로 개발되기 때문에 AI가 학습할 수 있는 공개 데이터가 제한적이다. 양자 알고리즘은 문제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학적 모델링이 필수이며, 물리적 제약과 수학적 최적화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현재 생성형 AI는 기존 알고리즘의 변형이나 결합에는 능하지만 새로운 계산 모델이나 수학적 증명을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로 AI는 양자 분야에서 보조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인간 전문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양자컴퓨팅 시스템 개발은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융합형 전문직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양자 칩 설계자(Qubit Engineer), 극저온 시스템 엔지니어, 양자 소재 연구원, 양자 클라우드 아키텍트 등이 대표적이다.
제조 분야에서는 수율 관리 및 공정 최적화를 위한 AI-제조 융합 전문가가 각광받고 있다. 양자컴퓨팅 관련 직무는 양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양자 알고리즘 개발자, 양자 하드웨어 엔지니어, 양자 기계학습 전문가, 양자 보안·암호 전문가 등으로 다양하다.
이러한 희소성과 전문성 덕분에 연봉 수준도 높다. 미국의 경우 양자컴퓨팅 엔지니어는 연 12만 5천~18만 달러(약 1억 7천만~2억 4천만 원), 박사급 연구원은 15만 ~ 25만 달러 이상(약 2억~ 3억 4천만 원)을 받는다. 초급 직무라도 8만~12만 달러(약 1억 1천만~1억 6천만 원) 수준이며, 유럽에서는 초급 엔지니어가 10만 달러 이상, 고급 전문가는 30만 달러(약 4억 원) 이상을 받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박사학위를 필수로 요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밍 실력과 기본적인 양자 지식만 갖춰도 진입할 수 있는 직무가 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입사 후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양자 역량을 강화한다. 이는 제조업 기반의 하드웨어 혁신이 실질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증거다.
소프트웨어 기반 초지능과 제조업 기반 양자컴퓨팅의 결정적 차이는 '통제 가능성'에 있다. 소프트웨어 기반 초지능 AI는 일단 개발되면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전 세계로 즉각 확산될 수 있다. 코드 몇 줄이면 수백만 대의 시스템에서 동시에 작동할 수 있다.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순간 인류는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나게 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작동 자체가 극도로 까다로운 물리적 조건을 요구한다. 절대온도 0.015K라는 극저온을 유지해야 하고, 외부 진동과 전자기파를 완벽히 차단해야 하며, 각 큐비트를 나노급 정밀도로 제어해야 한다. 하나의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 수억 달러가 들고, 운영하는 데도 막대한 비용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물리적 제약은 자연스러운 확산 방지 장치가 된다. 악의적으로 사용하려 해도 쉽게 복제하거나 숨길 수 없다. 국제 사회가 감시하고 규제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2024년 12월 구글이 공개한 '윌로우' 칩은 이러한 제조 기술의 난이도를 잘 보여준다. 105개의 큐비트를 배치하고, 큐비트 수가 늘어도 오류율이 감소하는 '임계값 이하' 구조를 구현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 2025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마요라나 1' 칩은 손바닥 크기에 8 큐비트를 집적했지만, 향후 100만 개의 큐비트를 넣으려면 극저온 냉각 장치가 여전히 방 하나 크기로 필요하다. 아마존이 개발한 'Ocelot' 칩도 양자 오류 수정 비용을 90% 절감했지만, 여전히 복잡한 하드웨어 인프라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1,000명의 학자들이 제시하는 안전한 경로다. 초지능의 위험을 피하면서도 AI가 인류에게 가져다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양자컴퓨터는 AI가 풀지 못하는 복잡한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고, 신약 개발과 소재 개발을 가속화하며, 금융 시스템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물리적 제약이 자연스러운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한국은 반도체 제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7.7%로 2013년 이후 10년간 세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60.5%를 차지하며, DRAM 70.5%, NAND 52.6%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 대만에 이어 3번째로 큰 반도체 제조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세계 반도체 전체 생산능력의 약 17.9%를 차지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 보유한 극한 제조 기술이다. 극한제조(Extreme Manufacturing)는 일반적 제조업과 달리, 극한의 물리적 환경이나 첨단 기술 한계에 도전해 초정밀·초고효율·초소형·초대형 등 기존 한계치를 넘는 제품·소자·장비를 생산하는 미래형 제조 분야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나노급 미세공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025년 2nm 공정으로 진입했으며, 반도체공학회의 '기술 로드맵 2025'에 따르면 2028년 1.5nm급을 거쳐 2040년에는 0.3nm급 공정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2nm 이하 반도체 공정은 실리콘 원자 3~4개를 다루는 수준으로, 이는 사실상 양자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한다.
한국 기업들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극한 환경에서의 정밀 제조 기술, 대량 생산 노하우, 수율 관리 능력은 양자컴퓨팅 하드웨어 제조에 직접 적용될 수 있다. 반도체 장비와 소재 산업도 강력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은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의 24.4%, 소재 시장의 18.3%를 차지한다. 램리서치, ASML, TOK, 듀폰, 머크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들이 한국에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있으며, 국내 소부장 기업들도 R&D 비즈니스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등 국내 연구기관들도 양자컴퓨팅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연구단은 2024년 국내 최초로 20 큐비트급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냈고, 현재 50 큐비트 개발을 진행 중이며 2035년 상용 양자컴퓨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극저온 양자 제어 칩 연구는 아직 태동기에 불과하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이 극저온 양자 제어 칩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아직 늦지 않았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2025년 갤럭시 S25에 하드웨어 양자내성암호를 탑재한 보안 칩을 탑재했고, SK텔레콤은 양자키분배와 양자내성암호를 융합한 하이브리드 암호장비를 2024년 4분기에 공개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이 양자컴퓨팅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삼일 PwC경영연구원의 2025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양자컴퓨터 기술 수준을 100점으로 환산했을 때 2위인 중국은 35점, 독일·일본·영국은 각각 20점대로 미국과 큰 격차를 보였다.
한국은 2점대로 조사대상 12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양자컴퓨팅 투자는 2025년 1,981억 원으로 전년 대비 54% 증가했지만, 중국(15.3억 달러), 미국(3.8억 달러), 독일(5.2억 달러)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중국은 2017년 세계 최대 규모의 양자연구소를 설립했고, 2018년부터 6년간 1,000억 위안(약 20조 원)을 투자했다. 중국은 이미 양자 통신 위성 '묵자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베이징-상하이 간 2,000km 양자 통신망을 구축했다. 유럽연합은 2018년부터 10년간 10억 유로(약 1조 5,050억 원)를 투입하는 '양자 플래그십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며, 독일은 자국 내에서만 20억 유로를 추가로 투자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5년부터 100조 원 규모의 AI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계획은 GPU 확보와 데이터센터 건설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1,000명 이상의 저명인사들이 경고하는 초지능의 위험을 피하면서도, AI가 인류에게 가져다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조업 중심의 양자컴퓨팅 개발이다.
양자컴퓨팅의 관점에서 보면, 인프라 투자보다는 핵심 제조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극저온 환경 제어 기술, 큐비트 제조 공정 기술, 정밀 패키징 기술, 오류 수정 하드웨어 기술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은 오픈소스와 글로벌 협력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지만, 하드웨어 제조 능력은 쉽게 이전되거나 모방되지 않는다.
국가 양자 메가팹 건설, 퀀텀 태스크포스 조직, 융합형 인재 대규모 양성이 시급하다. 대학과 연구소, 기업이 긴밀히 협력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양자물리학, 극저온 공학, 정밀 제조 기술을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를 대규모로 양성해야 한다.
양자내성암호(PQC) 전환도 시급하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2024년 8월 새로운 PQC 표준을 발표했다.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자 저항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양자내성암호 칩' 개발은 이 하이브리드 전환 시대를 대비하는 핵심 전략이다.
유럽연합, 일본, 인도와의 전략적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양자 공동연구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영국·덴마크·스위스 등 양자기술 강국과 양자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2025년 6월 '퀀텀 코리아 2025' 행사를 통해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고, 핀란드 IQM처럼 개방형 생태계 전략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유엔은 2025년을 '세계 양자과학 및 기술의 해'로 지정했고, CES 2025에서는 양자컴퓨팅 부문이 신설됐다. 대표적인 양자컴퓨팅 ETF인 '디파이언스 퀀텀 ETF(QTUM)'에는 2024년 12월에만 2억 5,000만 달러가 유입됐다. 아이온큐, 리게티 컴퓨팅 등 양자컴퓨팅 관련 종목들은 최근 1년간 각각 237.8%, 612.4%의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론 이러한 급등세에 대해서는 과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개별 양자 기업들의 연율화 변동성이 90% 수준으로, 고위험성으로 알려진 원유나 암호화폐 투자보다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 전망은 밝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간한 『양자정보기술 백서』에 따르면, 글로벌 양자컴퓨팅 시장은 연평균 20.1% 성장해 2031년 3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시장도 2024년 789억 원에서 연평균 22.1% 성장해 2031년 3,197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맥킨지는 2040년 양자컴퓨팅 시장이 930억 달러(약 125조 원) 규모로 성장하며, 화학·생명과학·금융·자동차 산업을 통해 2035년에 6,200억~1조 2,700억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수십만 개의 직·간접적인 신산업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양자컴퓨팅이 강점을 갖는 분야는 시뮬레이션, 최적화, 머신러닝으로 정리된다. 보건·의료, 금융, 정부·공공 안전, 화학, 제조, 에너지, 물류 등 거의 모든 산업이 양자컴퓨팅의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복잡한 최적화 문제, 대규모 데이터 분석, 분자 수준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분야에서 기존 컴퓨터로는 불가능했던 혁신이 가능해진다.
양자컴퓨팅 상용화 시기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지만, 기술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2024년 11월 마이크로소프트와 아톰 컴퓨팅이 협력해 24개의 논리적 큐비트를 생성하고 얽히게 하는 데 성공했고, 엔비디아는 2025년 하반기부터 보스턴에 세계 최대 규모의 가속 양자 연구센터(NVAQC)를 설립할 계획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전문가들조차 예측하기 어렵다. 회의론만 고수하다가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결국 양자컴퓨팅 시대의 승자는 가장 화려한 알고리즘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가장 정밀한 제조 능력을 가진 나라가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복사가 가능하지만, 극저온에서 작동하는 큐비트를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능력은 수십 년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초지능 AI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한국이 반도체 제조에서 세계 2위 국가로 올라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80년대 초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미국과 일본보다 27년이나 늦은 출발이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대규모 투자, 그리고 무엇보다 제조 현장에서 축적된 노하우로 결국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양자컴퓨팅도 마찬가지다.
삼일 PwC가 지적했듯 한국은 현재 최하위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후발주자인 한국에게도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면 선두로 도약할 기회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지금은 누구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이 제조 역량을 집중한다면 충분히 선도국가가 될 수 있다.
결국 양자컴퓨팅은 단순히 빠른 계산을 넘어 우리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신약 개발 기간 단축은 난치병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에너지 효율 향상은 가계 부담을 줄이며, 탄소 배출 감축은 우리 아이들에게 깨끗한 미래를 약속한다. 제조업 기반의 하드웨어 혁신이 고급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산업 전반의 효율을 극적으로 높이며, 금융 시스템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초지능 AI와는 다른, 제조업이 주도하는 Quantum AI의 실체다. 초지능의 위험에서 벗어나 AI를 인간 문명의 핵심 인프라로 안전하게 통합하는 경로가 될 것이다. 한국이 반도체 제조에서 세계 2위 국가로서 쌓아온 극한제조 역량은 바로 이 새로운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결정적 자산이다.
2025년 10월,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1,000명이 경고하는 초지능의 위험을 피하면서도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길, 그것은 제조업이 결정하는 양자컴퓨팅의 미래다. 한국은 이미 그 역량을 증명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치권의 결단이다.
AI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고, 최소 10조 원 이상을 양자컴퓨팅 핵심 제조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국가 양자 메가팹을 건설하고, 퀀텀 태스크포스를 조직하며, 융합형 인재를 대규모로 양성해야 한다. 유럽연합, 일본, 인도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실증 사례를 조기에 창출해야 한다.
진짜 문제는 늘 그렇듯이 하류 정치다. 'Quantum AI 기반 제조업'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다시 한번 제조업 강국의 저력을 보여주고, 동시에 인류를 초지능의 위험에서 구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한국이 이 변화의 중심에 서서 Quantum AI 시대의 정상국가가 될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선택의 시간은 지금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주요 참고자료
Future of Life Institute, "Open Letter on Superintelligence Development Moratorium" (2025년 10월)
Google Quantum AI, "Willow: A State-of-the-art Quantum Computing Chip", Nature (2024년 12월 9일)
Microsoft Research, "Majorana 1: Topological Quantum Computing Chip", Nature (2025년 2월 19일)
가트너, "2025 생성형 AI 지출 전망" (2025)
삼일 PwC경영연구원, "큐비트의 마법, 상상을 계산하는 양자컴퓨터 혁명" (2025년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양자정보기술 백서" (2025)
맥킨지, "The Economic Potential of Quantum Computing" (2024)
Fortune Business Insights, "Quantum Computing Market" (2025)
월스트리트저널, "양자컴퓨터의 기후대응 잠재력" (2025)
링크드인, "양자컴퓨팅 직무 공고 추이" (2024)
미국 양자경제개발컨소시엄(QED-C), "양자 전문 인력 수요 전망" (2025)
ZDNet Korea, "양자컴퓨팅, 황금일터로 뜬다…4년 새 채용 450% 폭증" (2025년 8월)
그리니엄, "2025년, AI 가고 양자컴퓨팅 온다" (2025년 1월)
CIO Korea, "2024년의 양자 컴퓨팅 이정표 11선" (2024년 12월)
IQM 퀀텀 컴퓨터스, "양자컴퓨터 개방형 생태계 전략", ZDNet Korea (2025년 10월)
한국수출입은행, "2025년 반도체산업 수출 전망" (2025)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양자과학기술 퀀텀 이니셔티브 전략" (2025년 3월)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반도체산업 현황" (2024)
한국반도체공학회, "반도체 기술 로드맵 2025" (2024년 12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20큐비트급 초전도 양자컴퓨팅 시스템 개발" (2024)
UNIST 김제형 교수팀, "상온 작동 양자 소재 개발" (2021)
IBM, "양자컴퓨터 개발 로드맵", ZDNet Korea (2022년 5월)
KB금융, "2025년 핫한 테마 투자 '기술 경쟁의 게임체인저, 양자컴퓨팅'" (202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