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형 칼럼이란

비판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글쓰기

by 박대석

감사형 칼럼이란: 비판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글쓰기

"융복합적 분석과 창의적 대안의 글쓰기"


▌언론 칼럼의 현주소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


한국 언론계에는 매일 수많은 칼럼과 시론, 분석기사가 쏟아진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6개 중앙 일간지에 1년간 게재된 외부인 기고 칼럼만 5,749건에 달하며, 온라인 매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그러나 독자들은 과연 이 글들에서 무엇을 얻고 있는가. 대부분의 칼럼은 읽는 순간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다음 날이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문제를 지적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정작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침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는 은행과 주택금융공사 등에서 금융 및 감사 실무 경험을 쌓은 후, 지난 10여 년간 한경, 브레이크뉴스, FN투데이 등 다양한 매체에 약 1,000여 편의 칼럼을 기고하고 몇 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현재도 생업과 함께 왕성한 독서와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비판만 하는 칼럼은 읽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줄 수는 있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변화를 조금씩이라도 이끌어내려면 문제 지적을 넘어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언론 콘텐츠의 유형별 특성 비교


언론이 생산하는 콘텐츠는 그 목적과 형식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각 유형은 고유한 역할과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명확한 한계도 지닌다. 아래 표는 일간기사, 분석·기획기사, 일반 칼럼, 시론·사설, 그리고 감사형 칼럼의 특성을 비교한 것이다.


필자 작성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각 유형의 언론 콘텐츠는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일간기사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려주고, 분석·기획기사가 "왜 일어났는가"를 설명하며, 일반 칼럼과 시론·사설이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다면, 감사형 칼럼은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시도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 한국 언론계에서 마지막 질문, 즉 해결책을 제시하는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비판은 쉽고, 대안은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비난하고 비판하는 기사나 칼럼은 쓰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팩트를 수집하고 방향만 정하면 육하원칙에 맞추어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실책을 저질렀다", "기업이 이런 비리를 저질렀다", "사회가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는 식의 글은 취재력과 문장력만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물론 좋은 비판 기사를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구조는 단순하다. 문제를 발견하고, 사실을 나열하고, 비판적 논평을 덧붙이면 된다.


그러나 감사형 칼럼은 차원이 다르다. 현황을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표면에 드러난 현상 뒤에 어떤 구조적 원인이 있는지, 이해관계자들은 누구이며 각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이 문제가 방치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부분이 대안 제시다.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말하려면, 그 대안이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지, 예산은 얼마나 드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법적·제도적 장애물은 무엇인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내공이 필요하다. 하나의 감사형 칼럼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편의 자료를 읽고, 관련 통계를 분석하고, 때로는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일반 칼럼이 반나절이면 완성되는 반면, 감사형 칼럼은 며칠, 때로는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칼럼니스트들이 이 방식을 기피한다. 같은 시간에 일반 칼럼 서너 편을 쓸 수 있는데, 왜 굳이 힘들게 감사형 칼럼 한 편을 쓰겠는가.


▌힘든 글쓰기가 주는 선물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힘든 과정이야말로 필자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된다. 대안을 구상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고, 현실의 복잡한 제약 조건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필자 자신의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가 깊어진다. 비판만 하는 글을 백 편 써도 얻지 못하는 통찰을, 감사형 칼럼 한 편을 쓰면서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독자들도 이 차이를 안다. 단순히 분노를 자극하는 글은 읽는 순간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읽고 나면 허무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질문이 남기 때문이다. 반면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실현 가능한 대안까지 제시하는 글은 읽고 나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 이렇게 접근하면 되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감사형 칼럼이 일반 칼럼보다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높은 열독률을 기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언론이 해야 할 본연의 역할이다


사실 감사형 칼럼이 추구하는 바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이 본래 해야 할 일이다. 언론의 사회적 기능은 단순히 사건을 보도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언론은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그 과정의 첫 단계일 뿐이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며, 사회적 논의를 촉진하는 것까지가 언론의 완전한 책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언론이 이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클릭 수와 조회 수에 쫓기는 디지털 환경에서, 자극적인 비판 기사가 차분한 해결책 기사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은 당장의 트래픽을 위해 분노와 갈등을 부추기는 콘텐츠를 양산하고, 정작 사회에 필요한 건설적 제언은 뒷전으로 밀린다. 이는 언론의 자기 배반이자,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감사형 칼럼은 이러한 흐름에 대한 작은 저항이다.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문제 지적에서 끝나지 않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글을 쓰려는 노력이다. 모든 언론인과 칼럼니스트가 이 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일부는 이런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비판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AI 시대, 감사형 칼럼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러한 논의에 새로운 차원을 더한다. 단순한 사실 전달이나 피상적인 비판은 이제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대형언어모델은 수초 만에 방대한 정보를 요약하고, 논리적 구조를 갖춘 글을 생성해 낸다. 만약 칼럼니스트의 역할이 단순히 정보를 정리하고 비판적 논평을 덧붙이는 것에 그친다면, 그 역할은 머지않아 AI에게 상당 부분 대체될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책임의 소재를 엄밀히 따지며, 창의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설계하는 영역은 AI가 쉽게 넘볼 수 없다. 현장의 미묘한 맥락을 읽고, 정치적 현실을 고려하며, 인간적 판단을 내리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감사형 칼럼이 요구하는 융복합적 분석력, 실무 경험에 기반한 현실 감각, 그리고 대안의 실행가능성을 검토하는 능력은 AI 시대에 칼럼니스트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다. 역설적으로, AI가 발전할수록 감사형 칼럼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게이트키핑의 불가피성과 필자의 정직한 고백


언론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 게이트키핑은 기자나 편집자와 같은 뉴스 결정권자가 수많은 정보 중 무엇을 보도하고 무엇을 걸러낼지 결정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모든 사건이 뉴스가 될 수 없고, 지면과 방송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누군가는 선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자 개인의 가치관, 교육 배경, 언론사의 전통과 규범, 광고주와의 관계, 정치권력과의 역학이 모두 개입된다. 어떤 언론사도 이러한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양비론은 양쪽을 똑같이 비판하여 시비를 가리기 어렵고 문제 본질을 흐리게 한다. 양시론은 모든 입장을 다 맞다고 하는 상대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어 명확한 판단을 방해한다. 균형 잡힌 글은 어느 쪽도 강하게 주장하지 않아 독자에게 혼란이나 무기력감을 줄 수 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다. 이 색채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우리 편은 옳고 저쪽은 틀렸다"는 식의 흑백논리에 갇히는 것은 경계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개인의 자유다. 국가나 집단이 개인의 삶을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간섭하는 것에 반대하며, 그 바탕 위에서 대한민국과 인류 전체의 번영을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라고 해서 좌파 진영의 모든 주장이 틀렸다고 믿지 않으며, 제기하는 문제의식 중 경청해야 할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해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앙가주망: 글로 세상을 바꾸는 지식인의 책무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앙가주망(engagemen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앙가주망은 지식인과 작가가 상아탑에 갇혀 있지 말고 현실 문제에 직접 참여하여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실천적 행위를 의미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글을 쓴다는 것은 곧 현실을 드러내고, 고발하고, 변화시키는 행위다. 작가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를 현실에 구속시킴으로써, 조금씩 세계를 변화시켜 나간다.


이 개념은 오늘날 칼럼니스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잘 쓴 칼럼 한 편이 국회의원 한 명의 활동보다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임기 4년 동안 수백 건의 법안을 발의하지만, 그중 실제로 통과되어 시행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반면 널리 읽히는 칼럼은 수십만 명의 여론을 형성하고, 정책 결정자들의 인식을 바꾸며, 때로는 직접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언론인들의 글이 민주화의 불씨를 지폈듯이, 펜의 힘은 정치권력 못지않게 강력하다.


물론 모든 칼럼이 이런 영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불만을 토로하거나, 자기 진영의 주장만 반복하거나, 추상적인 당위론에 머무르는 글은 아무리 많이 써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진정한 앙가주망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 문제의 본질에 대한 통찰, 그리고 실현 가능한 대안의 제시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이것이 바로 감사형 칼럼이 지향하는 바다.


▌감사형 칼럼의 구조와 방법론


감사형 칼럼은 기존 칼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적 글쓰기 방법론이다. 이 명칭은 대형 금융기관과 공공기관의 감사업무에서 활용되는 분석 프레임워크에서 비롯되었다.


감사보고서는 단순히 "이것이 잘못되었다"라고 지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선 사고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당 직원의 행위가 고의에 의한 것인지, 중대한 과실인지, 단순 과실인지를 엄밀하게 구분한다. 고의라면 징계와 법적 조치가 필요하고, 중과실이라면 교육과 시스템 보완이 병행되어야 하며, 단순 과실이라면 개인에 대한 문책보다 업무 프로세스 개선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구분 없이 무조건 담당자를 질책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책임 전가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감사보고서는 해당 사고가 일회성인지, 유사한 유형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지를 분석한다. 같은 부서에서, 같은 업무에서, 같은 시점에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결함의 징후다. 이 경우 담당자 교체나 징계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고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나아가 감사보고서는 시스템과 규정 자체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한다. 아무리 유능하고 성실한 직원이라도 시스템이 잘못 설계되어 있거나, 규정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거나, 상충되는 지침이 공존한다면 실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개인을 탓하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 규정을 만든 사람, 그것을 방치한 관리자에게 책임이 있다. 좋은 감사보고서는 이러한 제도적 결함을 파헤치고 개선안을 제시한다.


또한 감사업무는 법률, 회계, 기술, 업무 프로세스, 조직 문화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금융사고 하나를 분석하더라도 금융감독 규정, 내부통제 기준, IT 시스템 구조, 담당자의 권한과 책임, 상급자의 감독 체계, 조직 내 의사소통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진정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나의 렌즈로만 보면 표면적 원인에 그치기 쉽다.


마지막으로, 개선 권고가 없는 감사보고서는 미완성으로 간주된다. 그 권고는 "앞으로 주의하겠다", "재발 방지에 노력하겠다"는 식의 추상적 답변을 용납하지 않는다.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며, 이행 여부를 추적 점검하는 사후관리(follow-up)까지 포함된다. 더 나아가 좋은 감사보고서는 당면한 문제의 재발 방지에 그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조직 전체의 업무 프로세스와 내부통제 체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방향까지 제시한다.


▌감사형 칼럼의 실제 적용: 전세 사기 문제를 예로


이 프레임워크가 실제 칼럼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예를 들어보자.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전세 사기를 다룬다고 가정하면, 일반 칼럼은 "사기꾼을 엄벌하라", "피해자를 구제하라"는 당위적 주장에 머무르기 쉽다. 그러나 감사형 칼럼은 다르게 접근한다.


먼저 이것이 개별 사기꾼의 범죄인지, 아니면 구조적 문제인지를 분석한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HUG)의 심사 기준에 허점이 있었는지, 공인중개사의 확인설명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등기부등본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무엇인지를 파헤친다. 나아가 전세제도 자체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한국 특유의 시스템이라는 점, 저금리 시대에 갭투자가 횡행하게 된 구조적 배경, 임대차 3 법 이후 시장 왜곡까지 복합적으로 검토한다.


그 위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라"가 아니라, HUG 보증 심사 기준 개정안, 공인중개사 책임보험 의무화 방안, 임대인 신용정보 공개 범위 확대, 전세보증금 에스크로 제도 도입 등 구체적인 정책 옵션을 비용과 효과, 법률 개정 필요 여부와 함께 제시한다. 이것이 "사기꾼을 잡아라"는 외침과 감사형 칼럼의 차이다.


▌국제적 흐름: 솔루션 저널리즘과 건설적 저널리즘


이러한 대안 제시형 글쓰기는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흐름이다. 2010년 뉴욕타임스는 데이비드 본스타인과 티나 로젠버그가 집필하는 'Fixes' 칼럼을 시작했다. 이 칼럼은 11년간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엄격하게 취재하고 분석하여 "무엇이 효과가 있고 왜 효과가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본스타인은 "의사가 진단만 하고 치료 옵션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환자는 두렵고 좌절할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로젠버그, 코트니 마틴과 함께 2013년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Solutions Journalism Network)를 설립하여 이 방법론을 전 세계 언론사에 보급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울릭 하게루프가 2017년 건설적 저널리즘 연구소(Constructive Institute)를 설립했다. 그는 덴마크 최고의 저널리즘 상과 기사작위까지 받은 정점에서 "내가 왜 기자가 되었는지 잊어버렸다"라고 고백하며, 부정적 뉴스 일변도에서 벗어나 사회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보도를 지향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2003년부터 'Reporters d'Espoirs(희망의 기자들)'가 활동하며 해결책 중심의 보도를 확산시키고 있다. BBC,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주요 언론사들이 이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나이지리아, 우크라이나, 엘살바도르에는 솔루션 저널리즘 전문 매체가 탄생했다.


물론 이 접근법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자칫 과도한 낙관주의에 빠지거나,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비판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감사형 칼럼이 추구하는 것은 맹목적인 낙관이 아니라, 비판의 날카로움을 유지하면서도 그 비판을 건설적 대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융복합적 분석과 역사적 사례의 활용


감사형 칼럼의 또 다른 특징은 융복합적 시각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단일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AI 정책을 논하려면 기술 트렌드뿐 아니라 산업 구조, 노동 시장, 교육 체계, 국제 경쟁 환경을 함께 봐야 한다. 부동산 정책을 분석하려면 금융, 세제, 도시계획, 인구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하나의 렌즈로만 세상을 보면 코끼리 다리만 만지고 코끼리 전체를 논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역사적 사례의 활용도 감사형 칼럼의 중요한 도구다. 현재 직면한 문제와 유사한 과거 사례를 발굴하여 그 교훈을 도출하면, 추상적 논의가 구체적 설득력을 갖게 된다. 예컨대 AI 투자 전략을 논하면서 1980년대 일본 TV 산업의 흥망성쇠를 비교하면, "하드웨어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역사적 근거를 가진 통찰로 다가온다.


반대 의견을 다루는 방식도 일반 칼럼과 다르다. 감사형 칼럼은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견해를 회피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론 이런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우려를 제기한다"는 식으로 반대 의견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응답을 제시한다. 이렇게 하면 독자는 필자가 다양한 관점을 검토한 후 결론에 도달했음을 신뢰하게 되고, 설령 필자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논의 과정 자체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코끼리의 한쪽 다리만 보여주는 언론에 대한 경고


그러나 모든 언론과 칼럼니스트가 이런 자세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일부 언론은 자사의 정치적 노선에 맞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보도하고, 불리한 사실은 철저히 은폐한다. 마치 코끼리의 다리 한쪽만 보여주면서 "이것이 코끼리의 전부"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는 게이트키핑을 넘어선 조작에 가깝다.


진영 논리에 매몰된 언론은 팩트보다 내러티브를 우선시한다. 자기 진영에 유리한 팩트는 크게 보도하고, 불리한 팩트는 묻어버린다. 심지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거나, 맥락을 왜곡하여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보도가 반복되면 독자는 분열된 현실 인식을 갖게 되고, 사회적 합의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정치 양극화의 한 원인이다. 이러한 조작적 보도는 부끄러운 일이며, 언론계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


▌글은 필자와 함께 무덤에 간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1839년 영국의 작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이 남긴 이 문장은 글의 힘을 웅변한다. 칼은 한 사람을 해칠 수 있지만, 펜은 세대를 넘어 수백만 명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 힘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쓴 글은 그들과 함께 역사에 남는다. 훗날 사람들은 그 시대의 언론인들이 무엇을 보도했고, 무엇을 침묵했으며, 어떤 주장을 펼쳤는지를 평가할 것이다. 나치 시대 독일의 언론인들, 군사독재 시절 한국의 언론인들이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생각해 보라. 권력에 아부하고 진실을 외면한 언론인들의 이름은 수치와 함께 기록되었다. 반대로 목숨을 걸고 진실을 보도한 언론인들은 존경과 함께 기억된다.


오늘 쓰는 칼럼 한 편이 10년 후, 50년 후에 어떻게 읽힐 것인가. 그때도 당당하게 "나는 최선을 다해 진실을 추구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을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글은 필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아 그의 인격과 양심을 증언한다. 그렇기에 기자와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글 한 줄 한 줄에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


▌비판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일방적 비판과 비난만으로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비판은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첫 단추다. 그러나 첫 단추만으로는 옷이 완성되지 않는다. 문제 인식에서 해결책 모색으로, 해결책 모색에서 실행 계획 수립으로, 실행 계획에서 실제 이행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변화가 일어난다. 칼럼이 이 전체 과정 중 첫 단계에만 머문다면, 그 사회적 기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칼럼이 감사형 칼럼일 필요는 없고, 모든 칼럼니스트가 이 방법론을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짧고 날카로운 시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에세이,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적 칼럼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 다만 현재 한국 언론계에서 대안 제시형 칼럼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비판의 목소리는 넘쳐나고 건설적 제언의 목소리는 희소하다면, 그 불균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감사형 칼럼이 제시하는 대안은 '정답'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토론을 시작하기 위한 가장 정교한 '초안(Draft)'이다. 아무도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을 때,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먼저 구체적인 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용기, 그것이 감사형 칼럼의 핵심이다. 독자와 정책 결정자가 그 초안을 비판하고 수정하여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낸다면, 칼럼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논의의 출발점을 제공하는 것이지, 최종 결론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보수주의자이지만, 진영의 논리를 넘어 개인의 자유와 인류의 번영이라는 더 큰 가치를 추구한다. 좌파든 우파든 좋은 아이디어는 수용하고, 잘못된 주장은 진영과 관계없이 비판한다. 사르트르가 말한 앙가주망의 정신으로 현실에 참여하여,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못지않게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 칼럼니스트의 소명이라고 믿는다.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런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독자뿐 아니라 필자 자신도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언론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본연의 역할이다. 이러한 글쓰기가 확산된다면, 한국의 공론장은 조금 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역사가 이 시대의 언론을 평가할 때, 우리는 떳떳하게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