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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모 Jul 01. 2023

뉴욕 회계사라는 정체성과 작별인사

해방일기

노트북 반납 후 집에 가는 택시 안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은 참 이상하다. 그 끝에 다다르기까지 참 많은 감정들을 마주하는데 '제발 이 레이스가 끝났으면' 하는 마음은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더 간절해진다. 그리고 결승점에 다다랐을 때, 안도와 해방감이 잠시 머문 뒤 내가 달려온 레이스와 관련된 많은 과거의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보너스 협상을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했던 5개월 퇴사 노티스는 예상했던 것만큼 고통스러웠다. 정식 퇴사 날짜는 이틀 후지만 내가 해야 할 인수인계는 모두 끝이 났기에 미리 노트북을 반납했다 (더 이상의 업무를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다). 몇 년간 쌓아온 관계를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프로페셔널하게 마무리했지만, 많은 동료들에게 따로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을 정도로 진저리가 났던 회사.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넌 평생 내 딸이나 다름없어”라는 농담을 던지는 보스와 이야기한 후 그동안 쌓여온 분노도 노트북과 함께 반납하고 떠나기로 했다. 


얼른 오피스에서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급하게 마지막 인수인계 이메일을 보내고 오후 2시 약속을 맞춰 회사를 나오는 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가면서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참 많은 일이 있었던 약 5년간의 시간. 처음 이 빌딩에 인터뷰를 하러 왔을 때, 모던하고 깔끔한 로비를 보고 떨리고 설렜던 마음을 시작으로 이직을 성공한 후의 뿌듯함,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회사 생활이 야기한 불안한 마음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교환 학생 후 미국에 남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피 터지게 공부하고 인사 담당자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도록 가기 싫은 네트워킹 이벤트에 열심히 참여했던 날들, KPMG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던 순간, 여름을 포기하고 공부해 마지막 CPA 시험을 통과했을 때의 희열. 그 후 법인 일에서 보람이나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이직 인터뷰를 하러 다녔지만,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학점과 백그라운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할 수 있는 회사의 폭이 줄어들었을 때의 분노와 그 안에서 최고의 오퍼를 찾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간. 이직 후 CFO의 이직과 서서히 찾아온 팀 분열로 인해 다른 팀으로 옮기기까지의 과정. 팬데믹 이후 회사의 비용 절감으로 산더미처럼 늘어난 업무, 그사이에 찾아온 무기력함과 정체성 혼란의 시간. 2년간 새벽시간과 퇴근 후 참여한 두 번의 부트캠프 과정. 비자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준 파트너와의 결혼. 월급의 반이 렌트비로 나가던 회사원 1년 차의 삶에서 함께 집을 살 때 down payment에 보탤 수 있는 현금이 모이고 퇴사 후 1년간의 생활비를 저금이나 투자금을 깨지 않고 준비하기까지 사실 회계사라는 직업은 뉴욕에서 정착할 수 있는 삶의 기반을 만들어 냈다.


잘하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던 회계 일. 어쩌면 내가 있었던 회사나 금융/투자란 산업이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으나, 다른 산업이나 회사에서 회계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어져 버렸기에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친구들은 내 퇴사를 '회계사 은퇴(retirement)'라고 지칭했다. 


약 8년이란 시간을 함께해 준 이 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뉴욕에 정착하고 새로운 삶의 챕터를 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와 finish line을 마주한 나 자신을 향한 감사함과 기특함을 기록하고 싶다. 이렇게 나의 다사다난했던 뉴욕에서 10년간의 챕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새로운 챕터를 살아갈 날들을 응원한다. 


나는 이제 어떻게 나를 소개하게 될까?




마지막 출근길 아침에 눈에 들어온 H&M의 빌딩 배너. LGBTQ 커뮤니티를 응원하는 메시지였는데, 부모님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아직 퇴사 결정을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내 선택을 존중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나 보다. 첫째로 크면서 끊임없이 들어온 '동생에게 모범이 되는 삶', '부모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라는 내가 정의 내리지 않은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다. 이제는 내 삶이니만큼 나를 먼저 그 무게에서 해방시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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