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NYC
대 퇴사의 시대라고도 하고 코딩, UX 등으로 커리어를 전환하는 사람이 많다는 뉴스는 봤었는데, 막상 내 주위에는 커리어를 전환하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일했던 산업군, 뉴욕이라는 도시, 커리어 전환을 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막상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누구든 비슷한 고민이 있다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나도 비슷한 이유로 한참 망설였다. 내가 몸담았던 금융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 두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는데, 돈으로 돈을 벌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산업이다 보니 어떤 직무라도 다른 산업보다 연봉과 보너스가 높다. 특히 투자팀에 있는 사람들은 높은 연봉과 함께 보너스가 100% 이상인데 이미 수입에 맞춰 만든 라이프 스타일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기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회사 안과 밖에서 만난 많은 금융권 종사자의 목표는 일의 의미보다는 더 높은 연봉과 그 돈이 가능하게 만드는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물론 버는 만큼 일하기 때문에 연차를 다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하고, 휴가 중에도 이메일과 미팅 참여가 어느 정도 당연시되고 주말에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미국의 도시별 성격을 이야기한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뉴욕은 내가 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에 치중하는 도시라는 말이 참 와닿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 퇴사를 고민하며 UX 부트캠프를 들었다. 그때 나를 움직였던 한 문장이 ‘UX는 1년 차 연봉도 높다’였다. 코로나가 아직 한창이었을 때였는데, 그 당시 정말 많은 직장인이 부트캠프를 통해 코딩, 데이터 사이언스, UX로 이직했다. 내가 시작했을 때는 사실 좀 늦은 감이 있었다. 부트캠프가 끝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을 땐 관련 경력 없이 높은 연봉에 이직하고 싶은 부트캠프 졸업생이 너무 많아져서 회사에서 부트캠프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걸러버리는 사태가 발생했고, 많은 사람들이 열정 페이를 받으며 비영리 단체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마저도 경쟁이 심했다). 올해는 기술 산업에 해고의 물결이 퍼지고 있어서 그마저 인턴이나 주니어 직급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해고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는 퇴사를 준비하며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가장 큰 생활비로 나가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월세, 외식비, 교통비가 아닐까.
집을 소유하고 있다면 보통 대출을 끼고 하므로 매달 이자와 각종 보험 수수료, 세금을 낸다. 월세를 산다면 맨해튼 근처의 원룸이 약 3,000불 정도 한다 (코로나 이후로 더 올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실까지 방으로 만들어 하우스 메이트로 생활하는데, 그래도 깨끗한 신축 건물에 살려면 1,500불 이상은 필요하다. (만약 부모님이 뉴욕시에 살고 있다면 거의 로또에 당첨된 것과 같다. 그냥 부모님 집에 살면 된다.)
외식비의 경우 최근 여기저기서 언급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음식값 자체가 올랐고, 기본 팁의 시작이 20%가 됐다. 그리고 그 위에 8% 소비세가 붙는다. 애피타이저를 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메인 메뉴 하나 가격이 대략 25~30불 정도 되고 배달을 시키면 배달 팁과 수수료로 거의 40불이 돼버리는 현실. 그리고 배달 플랫폼은 50% 이상 마진을 떼기 때문에 음식점들이 가격을 더 올려서 받는다. 팬데믹 동안 애플 페이 혹은 신용카드 탭으로 결제가 되는 시스템이 늘어났는데, 결제 후 자동으로 팁을 얼마나 줄지 물어보는 스크린이 뜨는 바람에 커피 한 잔, 아이스크림을 사는데도 팁을 달라고 한다. (미국 팁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할 말이 정말 많다…).
내 경우 갭이어 생활비를 보너스 협상으로 만들기 위해 회사에 5개월이라는 긴 노티스를 줬다.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필요한 생활비는 어느 정도 만들었고 나머지는 짝꿍이 지원해 주기로 하면서 용기를 내게 됐다. 여전히 주위 친구들이 커리어와 생활비의 측면에서 갭이 생기는 기간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충분히 공감한다. 나도 혼자였으면 이미 뉴욕을 떠났거나 내리지 못할 결정이었다.
악명 높은 미국의 건강 보험 시스템은 아마도 퇴사 혹은 직장인의 삶을 벗어나는 삶을 막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지 싶다. 물론 저소득층을 위한 오바마 케어나 공공 보험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찾아갈 수 있는 의사의 퀄리티가 제한적이거나 수혜 자격을 주는 소득 한도가 정해져 있어 아무나 받을 수 없다. 금융권의 회사들은 이런 베네핏을 빵빵하게 주기 때문에 커버리지가 좋은 보험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고 비용의 70% 이상을 회사가 부담하기 때문에 개인이 내는 비용은 감당할 만하다.
그러나 프리랜서의 경우, 민간 보험을 사거나 오바마 케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많은 프리랜서가 비용 때문에 제대로 된 보험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금융 회사에서 제공하는 좋은 보험을 사려면 한 달에 2,000불이 넘는다. 그래서 퇴사를 고민하는 다른 친구도 보험 때문에 결정을 미루고 있다. (미국은 26세가 되면 더 이상 부모님 보험 아래 들어가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비자가 필요한 사람들의 경우, 똑같이 세금을 내지만 오바마케어나 다른 국가의 혜택으로부터 제한이 많고, 비자의 종류에 따라 이직에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직장 없이 체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취업비자 H1B는 전문직 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에게 주는 비자로 최대 5년까지 일 할 수 있으나 스타트업이나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는 마저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내가 회계를 택했던 가장 큰 이유도 4대 회계법인에 입사하면 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비자의 가장 큰 단점은 전문직이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받는 것이기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새롭게 비자를 받거나 영주권을 받지 않는 이상 직업 변화나 퇴사가 불가능하다. 퇴사를 하더라도 60일 내에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체류가 가능하다.
구구절절 적고 나니 숨이 막힌다. 그래도 퇴사 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넓어졌고 심적으로도 직장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와 삶이 어딘가에 갇힌 듯한 답답함에서 해방되고 있다. 벌써 퇴사를 한지 3개월이 다 돼간다. 그동안의 넘어짐과 배움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