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초 안창훈 Oct 27. 2022

그곳, 크로아티아(7)

로맨틱한 역사의 도시 - 스플리트

여행은 반짝하는 놀라운 광경이나 즐거운 에피소드, 성찰의 시간들이 내내 지속되는 건 아니다.

계획과 준비의 설렘 이후에는 피곤한 여정,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만날 수 도 있고, 원하지 않는 바가지와 소통되지 않는 언어로 불쾌한 일들이 발생할 수 도 있다.

여행이란 그런 걸 거다. 그들이 살고, 살아왔던 삶 속에 우리는 그저 잠깐 들어가 보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트로기르에서 보았던 그들의 삶을 뒤로하고, 또 다른 역사의 도시 스플리트로 떠났다.

트로기르에서 스플리트는 70여 킬로,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로 멀지 않았다.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인들이 두브로브니크를 제외하고는 가장 자랑하고픈 도시이고, 북쪽의 자다르와 남쪽의 두브로브니크의 중간에 위치한 기나긴 해안선이 이어진 달마티아 지방의 교통 요충지여서 오가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겐 필수적인 코스로 소개된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의 동선은 중간에 스플리트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고, 렌트를 하여 여행을 한다면 중간중간의 소도시와 작은 마을에 들러 그들이 삶에 잠깐씩 잠입하여보는 것이 이 나라 여행의 가장 빛나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특히 맛집이나 휴양을 즐기는 장소로도 인기가 많아 젊은이들이 어느 도시보다 많이 보였다.


이곳은 3~4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빼고는 도시를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그의 출생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층민 출신으로 전임 황제의 경호대장을 거쳐 로마 황제까지 오른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가 4명의 황제가 통치하는 사두정치의 핵심으로 외침을 격퇴하고, 내부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를 박해하여 많은 순교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돌연 305년 황제직을 사퇴하고 달마티아의 스트라툼(현재의 스플리트)에 화려한 황궁을 짓고 말년에 채소를 기르면서 노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즉, 퇴위 후 고향에 건설한 도시가 이곳 스플리트이다.

그 중심에 있는 열주광장(Peristyle)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내 가장 화려한 곳으로, 관광객의 접근과 접촉을 차단해야 마땅해 보이는 이곳에는 별다른 제약 없이 앉고 누워서 유적을 바라보거나,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세계문화유산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유적의 파편이 있는 곳에서 이렇듯 자유로울 수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미 광장에는 유명한 '카페 룩소르(Cafe Lvxor)'가 있어서 커피나 음료를 팔고 있었고, 저녁이면 위병 교체식을 구경할 수 있고, 콘서트나 버스킹으로 저녁내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스플리트 디오클레디아노스 궁전 앞


7세기 이후 항구도시로 번성했던 이곳은 신선한 수산물과 과일을 파는 수산물시장과 청과물 시장이 유명하다. 수산시장의 남문 쪽으로 들어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숙소로 전화하니, 한참만에 한 남자가 나왔다.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오토바이 뒤에 짐칸을 연결하여 개조한 차량으로 성 돔니우스 성당 쪽으로 돌아 돌아 한참을 인도한 끝에, 차를 세워 그가 가리키는 손 끝선을 따라 겨우 주차를 했다.

다시 그의 차량 뒷칸에 트렁크와 나를 싣고 숙소 인근에 내려주며, 환한 웃음으로 내일 출발 시 다시 데리러 온단다. 이곳도 주차난이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크로아티아는 관광업이 발달하면서 부족한 상업용 호텔과 숙소가 많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호텔시설을 짓고, 민박을 장려하면서 그 수요를 충족해왔는데, 사실 우리가 2일 차에 어렵게 찾아갔던 산속의 라스토케의 농가도 사실 별 3.5개짜리 평판 좋은 숙소였다. 민박이 숙박의 60%를 담당한다는 얘기가 와닿았다.

주요 관광지의 호텔은 민가를 개조하거나, 오피스텔이나 농가를 손을 봐서 손님을 받기도 하는데 년 1,6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받기에는 아직도 현대화된 시설이 부족해 보였다. 나의 자본주의화된 시각으로는.

반면에 보전된 자연과 역사는 기원에 더 가까웠고, 그들의 친절한 미소는 인간본성에 더 가까웠다.


미리 평판 좋은 호텔을 예약했으나, 실재 호텔의 프런트 안에서는 한 사람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으로 젊은 여성이 체크인을 도왔다. 예약된 방도 그 프런트에서 5미터도 안 떨어진 맞은편 방이다. 

문을 열고 나올 때는 난장이 되어버린 집구석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정면에다 지근거리다.

나는 '괜찮아, 누구나 그러고 살아' 이런 표정의 미소를 받으며 방을 들락거릴 것을 생각하면서, 과연 호텔의 등급과 비용이 걸맞은 것인지 궁금했으나, 막상 들어선 방은 아기자기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이곳이 오성급 호텔이라고 결정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커튼을 열어 젖히면서다. 

아! 숙소 커튼을 젖히자 디오클레디아누스 궁전이 앞 건물로 손에 잡힐 듯 인접해 있었고, 달빛에 더 고색창연(然)해 보였다. 그 말 그대로 오래된 담벼락에 낀 파란색 이끼처럼 옛 정취가 물씬하여 좀 감격스러웠고, 잠을 청할 때는 그곳이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느낌조차 들었다.


북문에서 스플리트를 시작한다면, 크로아티아어로 예배를 볼 수 있게 투쟁했던 그레고리우스 닌 주교동상의 (소원을 비는 관광객들에 의해)광이 난 엄지발가락을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쓰다듬고 내려올 수밖에 없다.

계단을 내려와 골든게이트의 16개 대리석과 12개의 기둥을 지나면 열주광장에 들어서는데, 거기가 핫 플레이스이다. 1900여 년을 지켜온 궁전과 광장은 그 세월이 무색하게 향후 그 이상도 버틸 듯 건장해 보인다.

황제가 애착하여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12개의 스핑크스 석상은 이제 1개만 남아 대성당 앞에 사진 찍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 식량창고로 사용되었던 지하궁전(Podrum)에서 이어진 지하시장은 옛 궁전의 아래층에 기념품과 악세서리,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좌판이 줄지어 있었는데, 과한 조명 없이 궁전 밖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도 적절하게 상품이 변별되는 것이 신기했다.

강건하게 서있는 1,500년 이상된 유적지 열주들 사이사이에서 상인들의 호객하는 소리는 높은 천장에 부딪혀 울려 퍼졌고, 그 음향과 공간감, 역사성 등은 표현하기 힘든 매우 특이한 체험이었다.

지하시장 밖으로 황제가 거주하던 침실과 생활공간 유적인 거소 유적(Imperial Residence)을 지나면, 성 돔니우스 대성당(Cathedral of St.Domnius)을 만나게 된다.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알려졌는데, 로마네스트와 고딕, 베네치안 양식이 섞여있는 아름다운 성당으로 성 돔니우스와 성모에게 헌정된 건축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기독교 박해자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영묘(陵墓)로 건축된 것을 7세기에 대성당으로 개축되었던 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들 역사가 심판한다고 말하는데, 심판할 당시의 역사도 후에 평가받을 일이라 생각한다면 약하고 아직도 어리석은 우리는 시간과 자연 앞에서 더없이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망델브로라는 수학자가 발견한 고사리 잎처럼 끝없이 유사 반복되는 '프렉탈(Fractal)구조'는 물리적인 우주의 구조뿐만 아니라 시간을 사는 인간사, 역사에도 적용되는 가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의 가지가 뻗어간다.


나로드니 광장(Narodni Trg, People's squre)으로 나갔다.

그곳의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허기를 깨웠고, 우리는 추천받은 Fife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파슈티차다(Pasticada)와 새우튀김, 우리 대구와 비슷한 생선찜 요리에 버섯을 얹은 메뉴를 시켰다.

파슈치차다는 크로아티아 전통음식으로 소고기에 이곳 특유의 소스를 얹어먹는 요리인데, 우려와 달리 내 입맛과는 큰 괴리가 없었지만, 크로아티아는 어디든 육고기보다 생선요리가 더 신선하고 와닿는 맛인 듯하다.

음료로는 맛 좋은 이곳 최고의 단기치 와인과 진판델(Zinfandel)와인을 주문했는데, 캘리포니아 포도 품종으로만 알려진 진판델은 실재 크로아티아가 원조라는 DNA 조사가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일반 마트, 레스토랑 어디서나 이곳 사람들은 적절한 가격에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즐기고 있었고, 스플리트와 인근 흐바르에도 와이너리 투어가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거길 들를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늦은 오후의 식사를 마치고, 길게 뻗은 해안가를 따라 걷는데 길가에 나와있는 노천카페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인, 맥주와 더불어 저물어가는 석양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오늘의 태양을 내일은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듯.

해안의 리바를 걷다 보니, 프랑스 니스의 영국인의 산책로라 불리는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 해변 산책로가 떠오른다.

규모는 그에 비해 작지만, 좌우의 카페 풍경과 열광적인 태양과 젊음, 해변의 평화는 여행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세상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스페인 가수 리타 칼립소(Rita Calypso)가 부른 'Paper Mache' 는 여행중 백그라운드 음악으로 최고라 생각했는데, 그 곡이 여기에서 지금 흐른다면 나와 옆의 누군가는 대사를 치고있는 영화속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하게될 것이다.


스플리트 리바거리


20년 전의 프랑스 니스에서는 젊음과 자유, 누드비치, 뜨거운 태양 등이 있었다면, 지금 여기에서는 아름다운 석양과 익어가는 인생이 있었고, 이 또한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간 20년간 충실했고, 여러 번의 결정적인 순간과 결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때로 돌아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대도, 내가 사회를 바꾸거나, 적어도 내 인생에서 코페르쿠스적 변화의 선택지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거 같다. 모든 것이 가정이고 앞으로의 계획일 뿐이다.

결정적인 사실은 현재, 여기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 이것만이 진실 아닌가?


리바 끝에 가까워지면 보치니 광장(Vocni Trg, Fruit Square)이 나오는데, 이곳은 작은 규모의 베네치아의 '산 자코모 성당'앞 광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유럽 어디든 비슷한 도시 레이아웃과 유사한 건축물이 많은 것 같다. 공유하는 문화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리바를 되짚어 석양을 따라 내려왔다.

자연광이 도드라졌던 지하시장의 상인들은 이미 철수한 지 오래고, 카페의 총총한 불빛들이 저녁 2부의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스플리트에서는 어디서든 프로포즈의 장소로 적절해보이며, 가장 조화로워 보이는 도시인 듯 하다.


스플리트 리바 밤거리


부두너머 저 멀리서 환한 불빛의 유람선이 들어오고있고, 리바의 밤거리는 깊어간다.

우리는 이미 3만 보 이상을 쏘다녔고, 그만 지친 걸음을 옮겨 숙소인 좁은 프런트의 5성급 호텔로 돌아왔다.

프런트의 여성은 늦은 시간에도 상냥한 미소를 마네킹처럼 여전히 유지한 채였고, 창문 너머 앞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터는 여전히 고즈넉하다.

열주광장의 음악은 늦게까지 지칠 줄을 몰랐는데, 이 상황에 어떻게 잠을 자나 고민했던 건 기우였다. 

간단한 공상끝에 피곤이 우리를 간단히 재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계획대로 청과물 시장으로 나갔더니 역시 이미 정렬된 좌판이 이른 시간에 자리 잡고 있었고, 과일과 채소를 사러 나온 여성들도 여럿 보였다. 신선한 포도를 샀다.



스플리트 청과물시장


스플리트는 구시가를 살짝만 벗어나도 여타 다른 도시와 달리 넓은 주요 도로 양쪽에 신식 건물, 아파트와 백화점 등 현대화된 자본주의 액세서리들이 주렁거린다. 

인근에는 바츠비체(Bacvice Beach)해안의 해수욕장도 있어서 과거와 현재, 고즈넉함과 모던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고, 그래서 관광객이 많았고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여기가 로맨틱한 역사의 도시 스플리트다.


이제, 아쉬움 가득함을 두고 스플리트에서 나서면서 길을 물어 해안도로를 찾았다.

도로를 1시간여를 따라가 보니 아기자기한 동네에 아름다운 해변과 알차 보이는 호텔 등의 숙박시설이 보이는 동네가 있었는데, 수영복 차림으로 도로를 건너 해변과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많았다.


스플리트 해안도로


그래서 좁은 도로에 차는 막혔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흥겨운 몸짓이나 아이들의 경쾌함으로 지루하진 않았다.

이곳은 오미스(Omis)라는 동네는 카스트르 석회암 돌산을 배경으로 푸른빛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곳으로, 책자에 소개되어지지 않은듯 한데, 눈길을 끄는 정이 가는 마을로 기억된다.

그렇게 만나는 동네 풍경들은 우리의 발길을 잡고, 공부하게 만든다. 

그렇게 크로아티아를 배워가는 중이다.

스플리트 인근의 아름다운 도시기행까지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전 06화 그곳, 크로아티아(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