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 두브로브니크
여행은 익숙함보다 시각이나 미각, 촉각 등의 다름을 즐겨야 하는 과정이어야 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알고 느끼는게 전부가 아님을 배우는것, 작은 나를 발견하는 겸손의 여정이다.
어디나 그곳이 그곳인 듯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도시의 특색이 여행객을 즐겁게 한다.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도시인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이 나라의 정수를 모아놓은 결정판이라 표현해도 뭐 그리 과장은 아닌 곳이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여정지인 그곳 '두브로브니크'로 향했다.
아침으로 호텔의 커피와 마트에서 전날 구입한 먹거리들로 거한 아침상을 차렸는데, 구입목록은 이랬다.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크로아티아 우유(Dukat)와 대표적 생수 야나(Jana) 레몬워터, 연어와 크로와상, 컵과일 그리고 대표적인 초콜릿인 크라쉬(Kras) 등이었다. 다음날에는 컵라면 유사한 뭔가를 사서 뜨거운 물을 부어 먹기도 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상표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고, 메모에도 없어서 그저 크로아티아식 컵라면이라 불렀다.
이곳의 콘줌마트는 심지어 우리나라 편의점보다 카테고리가 넓어 수산, 청과물과 야채, 구운 빵과 간단한 화장품, 약품 등 값싸고 망라된 라인업으로 인기 높은 국민마트이다.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는 230킬로, 3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며, 우리는 해안도로 쪽을 택해서 중간에 마카르스카(Makarska), 네움(Neum) 등의 소도시를 둘러보기로 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식사와 출발 준비를 일찍 마치고, 하루 사이에 정든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마쳤다.
아드리아해의 찬란한 경치와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60킬로 정도 지나자 비오보코 산맥과 접하는 지점에 마카르스카가 나온다. 이곳은 인구 2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로 모든 것이 적절해 보이는 이곳 역시 아름다웠고, 조개껍데기 수집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린치스코회 수도원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청과물 시장과 꽃 시장이 교회 광장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지나쳐야 했다.
소박한 도시지만, 수녀원과 작은 시장을 둘러싼 분위기는 경건한 현자들이 모여살 것 같은 느낌의 동네다.
지체된 시간 때문에 돌아가는 동선을 타기 힘들어, 접경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네움(Neum)을 둘러볼 기회를 기약 없이 미루고 지나쳐야 했다.
길게 뻗은 크로아티아 해안선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단절되어 생뚱맞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토라고 검문소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 도시가 네움이고, 유일하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토 내에서 아드리아해에 접해있는 도시이다.
17세기 베네치아가 라구사 공화국(지금의 두브로부니크)의 본토 공격에 대비한 완충지역인데, 오스만 제국에게 카를로바츠 조약을 통해 넘겨준 땅으로, 현재는 우거진 올리브 산림과 유적, 풍광 좋은 해안으로 유명한 곳이라 익히 들어왔어서 들러보려 했던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이번 루트는 좀 길어 5시간이 걸려 두브르브니크에 들어서게 되었으나, 오는 길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때 모처럼 높다란 현대의 건축물이 보인다. 측면에 번지점프대까지 있는 다리인데, 그곳을 지나면서는 두브로브니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찾아보니 여기는 프라뇨 투드만(Franjo Tudman)다리로, 크로아티아 초대 대통령 이름을 딴것으로 보인다.
기분 좋은 영접을 받으며 입성한 두브르부니크는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 나름 지역 내에서 굳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독립 국가도시 라구사(Ragusa) 공화국이었던 곳이다.
나폴레옹의 정복활동으로 멸망하기 전까지 3만의 인구 중 5천 명 정도는 현재 두브로브니크 성내에 살고 있었고, 유고 내전, 1667년이 대지진 등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예약된 숙소를 찾았으나, 주차는 한참 떨어진 비싼 공용주차장밖에 없어서 차를 대고, 무거운 트렁크 2개를 100여 개의 골목 계단을 이고 지고 겨우 도착하여 체크인을 했다.
작은 풀(Pool)이 있었고, 집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독서가 가능한 비치 의자도 마련된 정원을 가진 민박집으로 이곳에서 2박 3일을 보낼 예정이었다.
우리네 아담한 펜션 같은 느낌이었고, 주인네 딸이 친절하게 체크인을 도왔다.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갔다며 대략 관광포인트와 숙박 주요 시설 안내 후에 집에서 직접 담갔다는 과실주를 웰컴 기프트라고 주었으나, 미안하게도 기대 이상의 지나친 단맛으로 다 마시진 못했다.
4개의 방 중에 영국 젊은 커플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30대 중반의 남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천국은 여기라고 생각한다며 3주를 머물렀는데 1주일 더 연장할 계획이란다. '뭐 그렇게까지?..' 혼잣말이 나갔다. 한국어로.
숙소를 나와 구시가의 출발지인 필레 게이트(Pile Gate)로 나갔다.
성문에는 두브르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호의 조각이 많은 관광객들을 맞았고, 우리도 그 틈에서 설랬다.
성문 안은 플라차거리(Placa Ulica), 구시가를 관통하는 500미터 짧은 도로이지만 이곳에 기념품, 약국, 은행, 레스토랑 등이 양쪽으로 밀집해있고 석회암 바닥은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교행으로 지나치게 반짝인다.
안쪽에는 수호성인을 기리는 성 블라호 성당(St.Blaise Church), 인근에 두브로브니크 대성당(Dubrovnik Cathedral)이 있는데 이곳은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국보급 다수 유물이 보관된 주 성당이다.
필레게이트를 지나서 맞는 풍경은 중세시대의 완벽한 세트장에 들어선 느낌이고, 여전히 이곳이 허름해 보이지 않는 것이 과연 과거 라구사공화국이 중개무역으로 번성하여 융성했던 넘치는 부의 흔적이구나 싶었다.
플라처거리는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북적였고, 화려하진 않지만 초입에는 500년 된 라구사공화국의 수도꼭지 역할을 했던 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Fountain)가 있다.
지금도 맑은 물을 마실수 있는데, 20여 킬로 떨어진 수원지에서 성내로 물을 끌어온 기술을 보면 당시의 도시설계와 인프라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곳에 오면 프란체스코 수도원에서 사야 하는 품목이 있다고들 해서 수도원 내 말라 브라차 약국에 갔다.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되었다는 약국으로, 수도사들이 기른 허브와 꽃으로 천연화장품을 만들어 지역 내에서 판매하던 것이 지금은 특히 아시아 관광객 중에 가장 비중이 큰 한국인들에게는 필수코스가 돼버렸다.
선물용으로 몇 개의 로즈 워터와 라벤더 크림을 집어넣었는데, 나중에 선물을 수여받은 사람들의 후기는 유분이 과하다는 것이었고, 효과는 아직까지 미궁이다.
스트라둔(Stradun)끝에 라구사 공화국 행정수반이 머물렀다는 공관인 의장 궁전(Rector's Palace)과 르네상스 시대 물품교역 장소와 세관으로 쓰였던 스폰자 궁전(Sponza Palace)이 나온다.
스폰자 궁은 기다란 아케이드와 고딕 창문 등의 특징이 보인다. 이곳은 17세기 대지진에도 끄덕 없이 버틴 건축물로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의 개막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군돌라차(Gundulic Poljana) 광장을 지나면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St.Ignatius Church)이 나온다.
17세기에 지어진 크로아티아 대표적인 바로크 건축물인데, 내부에는 예수회 창립자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제단화, 벽화와 천정화가 인상 깊다고 해서 굳이 들어가 봤다.
16세기 후반에 지어진 이탈리아 로마에도 이그나티우스에게 봉헌된 일 제수(Church of II Gesu) 교회가 있는데, 예수회의 이상을 보석이나 대리석으로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놓았다는 건축물로 평판이 자자했고, 나도 감탄하며 보았던 기억이 있다. 뭐든 배경지식의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건축과 회화는 특히 그런거 같다.
이곳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 내부 회화가 그 적절한 예인데, 벽화, 천정의 프레스코화가 과연 압권이다.
프레스코의 특성상 천년을 지켜갈 색감과 세밀한 묘사, 인물의 동선이 살아있는 듯해서, 성당 내 불이 꺼지면
벽화 속 인물들이 내려와 움직일 것처럼 보였고, 지금은 스스로 그림인 척 저러고 있는 거 같았다.
성당 앞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일몰 명소인 부자바(Buza Bar)가 있는데, 절벽 위 맥주와 절경이 기가 막히다.
절벽에 아슬하게 자리 잡은 이 카페는 찾기 어려운 개구멍으로 들어가서야 절경의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진주빛의 아드리아해는 더없이 푸르렀고, 시름을 다 안고 있는 듯 푸르다 못해 검은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곳이 직장인 사람들에겐 스트레스가 없을까? 그렇진 않을 거다. 그러나 동유럽 최대의 핫플레이스인 이곳에서조차 다른 서유럽의 관광지와는 다르게 어디를 가나 미소와 친절이 넘쳐난다.
이것이 슬라브족의 속성이라 속단하기 어렵지만, 여타의 동유럽과 북아시아 계통의 슬라브 민족들은 사실 퉁명스러운 편인데, 여기는 어디를 가나 편안하다.
어스름해지는 시간이라 석양을 보기위해 성벽은 내일로 미루고, 해안가 대신 스르지 산(Sra Mountain)에 올라 구시가를 내려 보기로 했다.
크로아티아에선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은 어디나 아름답다.
그 중 석양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곳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론 단연 자다르의 석양이지만, 만만치 않은 곳으로 이스트라 반도의 로빈(Rovinj)을 빼놓을 수가 없다.
파스텔톤의 지붕들이 즐비하게 이어져있고, 항구에는 어선과 요트가 빽빽한데, 멀리 보이는 고성과 우뚝 솟은 첨탑이 적절하게 자리하고 있어 달력의 배경이미지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저녁이면 작은 이 동네의 불빛을 모아놓은 형상이, 먼바다에서 본다면 어둔 숲의 반딧불이 같아 보일 듯했다.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낮과 밤의 고유한, 덧칠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과연 지겹지 않다.
여기 두브로브니크의 낙조와 아경 또한 화려하기 그지없다. 상업적인 자본주의 조명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
스르지산을 향해 가파르게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여행객들은 이미 흥분으로 술렁거렸다.
그 와중에 침착하려 애썼으나, 낙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는 나도 그 속에 과몰입되어 있었다.
5분남짓의 운행, 그리 넓지 않은 전망대에 모인 사람들은 각각의 포즈로 어떻게 이 심상을 카메라에 담을지 고민하기도 하고, 배경에 힘입어 자신이 더 하이라이트 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를 취하기에 바쁘다.
낙조로 이미 두브로브니크의 진수를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태양이 물밑으로 떨어지고, 구시가의 불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다음 스테이지의 주인공이 바뀌는 순간이다.
아드리아해는 여전한데, 총총한 불빛은 도시의 저녁을 더없이 아늑하고 경건하게 바꾸고 있었다.
여기 이 시간에는, 내일을 향한 젊음의 에너지보다 아스라한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차분하게 생각하게 하는 격려의 맛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치를 즐기는 동안 마지막 케이블카 시간 때문에 우리는 아쉬움을 두고 내려왔다.
배고픈 줄 모르고 두브로브니크를 즐겼는데, 돌아오는 길은 피곤 때문인지 매우 멀게 느껴졌다.
숙소로 오르는 100여 개의 계단을 생각하며 칭얼거리자, 프란체스코 수도원 근처 최고의 아이스크림집에 들러 맛을 보자며 발길을 돌렸는데, 다행히 12시까지 문을 연다면서 덤으로 환한 웃음을 젤타또에 올려준다.
돌체 비타(Dolce Vita)라는 유명한 집이었는데, 여기가 이탈리아 어떤 젤라또보다 나은 듯하다.
숙소에서 간단한 저녁에 단기치와인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휘영한 달빛이 우리 방 창가와 작은 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