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리듯 시작된 크로아티아 여행은 우리에겐 의미 있는 알찬 이벤트였다.
그 여행의 뒤끝으로 2년을 지냈다.
기존에 패키지든 자유여행에서는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여행 가이드나 책자를 통해 주입된 감동이나 의미를 외우기에 바빴다면 이번엔 달랐다.
렌트를 하여 주요 스폿은 물론이고 소도시나 골목골목을 다니며,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뭘 먹는지 등 사변적인 것들에 더 관심을 가졌고, 그들이 영위하는 의식주의 행태가 지난 역사, 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즐거움과 슬픔 등을 뭉뚱그려 인생이라 표현하듯, 인생과 비슷한 여행도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영어 명칭 크로아티아(Croatia)의 정식 국호는 중세 크로아티아 공국일 때 쓰였던 '흐르바츠카(Hrvatska)'여서 국가도메인도. hr을 사용한다.
유고연방에 속해있다가 분리되어 크로아티아-세르비아-슬로베니아 연합왕국으로 시작해서 후에 공산주의 연방국가가 되었으나, 1995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강화협정으로 전쟁이 종결되고 복구가 시작되면서부터 비로소 우리에게도 관광지로 알려졌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90년대 비로소 시장경제가 도입되어서 아직도 적응 중이며, 조선업, 관광서비스, 농업이 주요 산업기반이다.
조선, 식품가공, 화학 등의 산업 부분이 27%, 농업이 6~7%, 관광이 30% 이상일 정도로 관광분야가 특화되어 있는 것은 유럽 최고의 관광지로 꼽히기도 하고, 실재 년 1,6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아서이다.
GDP가 1,420억 불로 우리나라(1조 6,000억 불) 1/10도 안되지만, 우리가 이들보다 10배 이상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반대로 그들은 어디에서든 미소가 가득하다.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은 배려와 친절이라고 했던 어떤 시인의 말은 우리가 서로를 돌보며 측은지심을 가질 때 우리가 사는 곳이 더 따뜻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크로아티아는 따뜻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익히 들었던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는 1903년에 프랑스를 육각형 형태의 동선을 수천 킬로 자전거로 달려 파리에 먼저 입성하는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100년이 넘은 사이클 경기인데, 초기에는 작은 도시들이 경로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다고 한다.
언젠가,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를 구경하러 나온 이들이 자신의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숙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그들이 2~3일을 경기 동선 근처 텐트에서 묵은 후에 자신의 선수를 응원하는 시간은 길어야 3분 정도라고 한다.
'이 무슨 비효율인가?' '뭐 그렇게까지.. ' 이런 우리의 반응이 통상적인데, 나는 갑자기 그들의 열정과 현재를 즐기는 방식에 감명을 받았다.
나의 현재와 그리 관계되지 않은 귀한 음반, 책이든 뭔가 또는 누군가를 잠깐 보기 위해 불원천리(不遠千里) 할 수 있는 그런 열정을 우리는 가진 적이 있던가?
큰 기대 없이 떠났던 여행은 조금 철이 들어서 돌아온 거 같다. 사실 이제는 철이 들 나이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사회적으로 계량화해서 정해준 것처럼 보이는 성공(成功, success), 행복(幸福, Happines)의 목표를 위해 정교한 계획을 짜서 일을 하고, 공부, 연습 또는 정치행위를 한다.
이 대단히 주관적인 가치,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들의 정의라는 것들을 마치 국회에서 입법으로 정해진 것처럼 우리는 신봉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의미는 나만 아는 것일 텐데.
우주인이라는 직업이 미치는 심리적 변화를 기술하는 용어 중에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라는 것이 있다.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탐험하는 이례적 경험을 하는 직군이랄 수 있는데, 우리가 들어온 대부분의 메시지는 지구는 아름답다는 정도 얘기였다.
그러나, 우주인들의 글을 보면 가장 많이 중복되는 단어는 '죽음' '집' '신(GOD)' '외로움' 이런 것들이다.
죽기 전에 우주에 가보고 싶은 나의 소원이 내 생애에 이루어져 그곳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태양과 지구, 별 이외에 우주에서 보이는 것들은 암흑과 영원한 것 같은 어둠, 시간의 단절 등이라고 한다.
인류의 대표적 경험을 하였던 우주인들은 우리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신이 드넓은 우주에 먼지 같은 지구 하나만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으로 외계행성들을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
그중 칼 세이건에 의해 제안되었다는 지구외 지적 생명체 탐사(SETI) 프로젝트, 거기에는 1972년과 73년에 발사된 파이오니아 10호와 11호에 외계인에게 보내는 골든 레코드(메시지)가 실려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우주인들처럼 지구, 나의 가족과 지인, 환경 등 누리고 있는 것들이 오히려 더 절실해졌다.
우리는 영겁의 우주 앞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이고, 시간 앞에서는 더 초라하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가치(Value), 나만의 추억, 사랑 이런 것들은 유한한 삶 속에서 영원의 생명을 부여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여행을 통해서 소중한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감각할 수 있는 것은, 불현듯 나의 루틴에서 동떨어져보는 여행의 체험에서 오는 교훈이었고, 새삼스러움을 통해 오감의 근육을 사용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거 같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자그레브로 되짚어오는 드라이빙은 더없이 시원했다.
청신한 아침 공기와 아드리아의 억만년의 원년 햇살이 눈부시다.
집에 오니 여기도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