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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Nov 07. 2023

2. 박력 넘치는 연애

유난히 춥고 힘들었던 겨울을 지나 이제 막 봄을 맞이하던 계절, 나는 문득 연애가 하고 싶었다. 이런 감정을 맞이하게 된 것이 너무나도 오랜만 이여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되었다고 여겼다. 여자들의 감수성이란 알 수 없어 이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주변은 벌써 내가 시집을 간 사람마냥 기뻐해주고 즐거워해주었다. '나는 네가 혼자 살고 싶다 하길래 하마터면 진짜 그럴까 봐 내심 걱정했다구.'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하는 말이었다.


왜인지 유난하게 구는 그녀들의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설렘을 느꼈고 마침 꽃까지 흐드러지게 떨어져 내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계절이란 이처럼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이때부터 운명의 상대를, 그리고 내가 믿는 신이 나를 위해 준비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이든 사적이든 우연히든 사람은 어딘가에서 반드시 만나게 돼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인 상대에게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나다. 나는 이렇게 내 주변의 <무> 들을 찾아 <유>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나는 <그>를 만난다.


<그>는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실하다는 단어가 아까울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며 심지어 똑똑하고 잘났었기에 어딘가 나와는 다른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푹 빠져있던 <그>는 그가 인생을 살아가며 써먹은 성실을 나에게 적용하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내가 꽤 소중하고 행복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분류의 사람과 연애를 하기는 처음이어서 신기하기도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도 나는 의미를 만들어내 운명의 상대라 여겼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도 우리도 <그>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마음속 비어있는 공간 하나정도는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늘 이것을 꽁꽁 감추고 있지만 이내 타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람 중 가장 가까운 상대인 "연인"에게는 들키고야 만다. 그 공간에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지, 화분을 들여놓을 수는 있는지, 그 안에서 잠을 잘 수 있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공간에 내 물건 하나도 들여다 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늘 모르는 척했다.  

왜냐면 나는 정말로 정말로 그가 내 평생의 짝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의 만남을 거듭하며 몇몇 사항들을 요구했다. 몇 가지는 어느 연인들이나 늘 하는 귀여운 질투나 구속 같은 것들이었고 몇 가지는 나의 정서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것들이었다. 후자에 해당되는 것들 중 나의 살아온 시간과 주변인들에 대해 상세히 알고 싶어 하는 <그>의 면이 특히 나를 괴롭혔는데 거북이처럼 천천히 마음 문을 여는 나의 태도가 <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늘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말해 달라 하는 <그>의 대화방식에 나는 조금씩 지쳐갔지만 한편으론 그런 모습이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나의 부모님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또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어떤 직업이었는지, 나는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지, 심지어 자신이 무슨 질문을 할지 까지도.


*여기서 내가 만났던 상대방의 방식에 대해 무조건 적인 비난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나열하는 것들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매우 힘들고 지쳤던 부분들이며 이것은 사람이 살아온 인생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한걸음 한걸음 뒤쳐지는 날 보며 늘 다그쳤고 그때마다 내 마음은 무너졌으나 나를 이만큼 생각해 주는 사람은 <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 이토록 박력 넘치게 간섭하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를 향한 <그>의 다그침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는 알 수 없는 끈끈함을 느꼈다.


내가 믿는 종교에는 늘 고난이 따른다고 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더더욱 말이다. 그와 나는 절대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난을 감내해 가며 꾸역꾸역 맞췄다.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믿는 신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에서 분명히 망가지고 있었다. 내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독립적인 삶이 아니라 타인에게 의지하는 삶을 꿈꿔왔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싶었다.





그는 늘 내게 화를 냈으나 우리가 결혼할 사이라는 말로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그는 내가 던진 유머가 수준 낮은 농담이라 하였다. 그는 나의 친구들이 수준이 낮다고 하였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이 그저 그런 일이라고 하였다. 그는 나보고 울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미래에 내가 강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크리스천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였다. 그는 아빠와 연락을 다시 하라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그>를 위해 가족들 간의 암묵적 약속이었던 <아빠와 절대 연락하고 살지 않기!>의 룰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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