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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Nov 25. 2023

3. 빈대가 되고 싶다.

빈대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붙어 쉽게 생명을 유지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의 아버지는 태생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타인의 삶에 붙어 자신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사람. 

어렸을 적엔 아빠에게 매일 같이 화를 내던 엄마, 차갑던 할아버지, 일곱 살 난 어린아이처럼 아빠를 대하는 할머니 등 총체적 난국의 집합체 같은 우리 가족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와 나는 둘도 없는 단짝친구로 봄이면 꽃구경 여름이면 물놀이 등 계절에 따라 풍류를 즐겼고 남들 가본 곳엔 다 가봤으며 꽤 괜찮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도 입었다.

그래! 인정하긴 싫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영향을 준 것도 아빠의 공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세상 일은 늘 좋은 대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성인이 된 후로부터 누군가 내게 마법의 주문을 뿅! 하고 풀어줬고 그 효과는 너무나도 강력해 <현실세계에서 적응하고 살기> 아니 <현실세계에서 반드시 살아남기!>라는 과제들을 던져주었다.


첫 시작은 학교에서 받아온 장학금

알바비

조금씩 돈을 모아 구매한 DSLR카메라 

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고가의 상품권

노트북

심지어 내가 그린 그림

휴대폰

휴대폰 비용 

심지어 이런 것 까지 판다고??


하는 물건들 까지 팔 수 있는 모 - 든 것을 다 팔아버리는 아빠는 결국엔 우리 집도, 우리 재정도, 우리의 행복도 내다 팔아버렸다. 


살던 집에 더 이상 살 수 없어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가저갈 수 없는 물건을 거의 다 내버리던 이사 전날 풍경은 사진처럼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한꺼번에 다 가지고 내려갈 수가 없어 아빠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이 몇 번이고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했고 좁은 집으로 가기 위해 그동안 사용하던 물건을 버리던 그때, 버려진 것은 물건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사랑의 마음, 친절한 태도도 같이 내다 버린 걸 지도 모른다.


이사 당일 집에 가기 싫어 집 주변을 뱅뱅 돌다 해가 지고 나서야 기어 들어간 나에게 아빠에게 내야 할 화를 나에게 쏟아붓던 엄마, 순진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치를 봐가며 말 잘 듣던 착한 동생, 정작 이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는 가족들에게 떠맡긴 채 사라졌다.




나의 아버지는 내게 기쁨과 슬픔, 그리움과 즐거움,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동시에 안겨준 스펙터클한 존재이다.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한 사람에게 이렇게 거대하고 다양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는 똑바로 살아야 한다.


빈대는 매우 초월적인 존재이다. 상대방이 무시하는 말을 퍼부어도, 강력한 비난의 말을 던져도 빈대는 절대 자기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책임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는다.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희생이라는 막대한 책임감 뒤에 숨어 자신의 안위를 평온하고 고상하게 즐기는 존재.

나는 빈대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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