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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 Oct 31. 2018

신념의 덫

  4월 27일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며 놀랍게도 북한에서 비핵화와 종전 등의 파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대체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한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고 세 번 속으면 그때는 공범이 된다”라며 비판적인 평가를 한다. 나는 지금 이 생각 옳다 그르다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을 보면 참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서 생각이 다른 것 같다. 모두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어느 정도 중요한 것들은 같은 생각일 법도 한데 말이다. 어느 한쪽이 바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쪽은 일부러 나라를 망치려고 몰래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걸까? 내가 보기에 그런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리고 

“여론 조작이나 일삼는 가짜 여론조사기관과 댓글 조작으로 여론 조작하는 세력들이 어용언론을 동원해 국민을 현혹해도 나는 깨어 있는 국민만 믿고 앞으로 나아간다” 말하는 홍준표 대표도 분명 스스로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옳으며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 자신의 신념을 따르며.



  신념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내가 위에서 신념으로 표현한 것을 보았다면 내가 지금 말하는 신념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판단에 굉장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것이 옳다고, 혹은 어떤 것이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는 것을 얼핏 느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말하는 신념은 자기 자신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믿고 따르며, 실천하려고 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종교적 신념도 있을 것이며, 두려워서 사실하고 싶지 않지만 신념을 따르기 위해 행동하는 것도 포함한다는 뜻이다. 지금 말하는 것들은 사실 신념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따르는 것은 자기도 모른 채 자신의 행위에 강력히 관여하는 고정관념, 편견들과 함께 있을지 모르는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애초에 이성적으로 "그것이 옳다",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나의 "이성적" 판단인가? 자기 형편이 어려워도 불우한 이들에게 기부를 하는 것은 과거에 배고 팠던 경험 때문은 아닌가? 하나님의 존재를 강력하게 믿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은 부모님과 교회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 아닌가? 어쩌면 그것도 "자기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신념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신념을 정의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하다. 어떤 사전에서는 신념에 대해 "흔들림 없는 태도를 취하며 변하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반만 맞는 말이다. 신념은 변한다. 개인의 모든 경험 속에서, 생각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변해간다. 또한 강력한 "외부 존재"가 어느 정도의 메커니즘에 따라 의도적으로 신념을 바꾸려고 작정하면 꽤 쉽게 변한다. 사실 신념은 쉽게 바뀌지만 자신이 자신의 것을 바꾸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신념의 형성에 대해서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교육, 경험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신념은 자신, 자신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신념이 무엇인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자신을 소개하는데 가장 적절한 표현을 생각해보아라. 예를 들어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한 자식"이라면 자신의 가장 큰 신념은 기독교와 성경일 것이고, "노력하는 아빠"라면 아마 그의 가장 큰 신념은 자식들에게 잘해주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념을 버리거나 스스로 바꾸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니 성경은 근거가 너무 부실한 것 같아."라고 신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지금까지 그걸 따랐던 나의 역사, 나의 삶, 나의 판단, 그리고 지금 나의 가장 커다란 부분을 사실 상 없었던 것으로 지워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신념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까?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까? 내가 보기에 신념의 힘은 인간이 정신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신념은 평범한 인간을 독립운동가로 만들 수도 있고, 테러리스트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판단은 이러한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신념이 나의 판단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들의 것도 신념이고, 히틀러와 자살테러범의 것도 신념이다. 우리는 그들 자신이 아닌 외부적 존재로서 그들을 판단한다. 독립운동가들은 좋은 사람. 히틀러, 테러범은 나쁜 사람. 하지만 우리를 그 나쁜 사람의 자리에 넣어보자. 자살 테러범은 아마 스스로의 행위가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이것이 옳음은 물론이요, 아주 중요하며 자신의 조직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본능의 두려움을 이기고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한 신념을 가진 우리가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간단한 예로 자신이 정치인이라고 생각해보면, 진보는 보수든 어떠한 것이 옳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고 그 반대편의 생각은 어떠 어떠한 부분에서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이 맞는지 어떻게 아냐는 것이다. 물론 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것들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못하는 편이다. 항상 판단에 조심한다. 하지만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모른다고 판단을 유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그 어떤 것도 모른 채로 살아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수많은 철학자들이 생각한 것일 테니. 하지만 내가 가질 신념이 독립운동가의 것인지 히틀러의 것인지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걸 매우 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누가 히틀러 같은 사상을 찬성해?" 라며. 하지만 그 시대 독일을 보라. 그건 사람들이 단체로 미쳤던 게 아니라 인간 신념의 강한 힘과 자신의 신념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그렇게나 어려운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의 교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교리에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적혀 있지 않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것부터(이웃을 사랑하고...)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나의 믿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신념을 조절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신념에 대해 아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문제를 고칠 수 없는 것과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여러 판단의 과정 속에서 이 판단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도 모르고 있던 신념들은 정말 인간이 하기 어려운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저 정치인이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지 않았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나는 키가 작은 정치인들을 잘 못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다음부터 의식적으로 그렇게 보지 않으려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신이 믿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강력한 것들은 대개 어느 정도 튼튼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강력한 정치적 신념, 사이비 종교 등. 이 경우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인간이 자신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는 능력이 생각보다 엄청나다. 이 부분은 윤리학과도 큰 상관이 있을 듯하다.

  나는 종교나 신념을 갖는 것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오히려 내 주변엔 열심히 사는 사람 중에 종교인이 많았다.) 특히 공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신념은 개인에게 강력한 의지와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니,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단점은 신념의 구축은 의심 불가 영역을 늘린다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의견에 대해 개방적인, 자신도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자세여야 하는 것 같다. 


I would never die for my beliefs because I might be wrong. 
-Bertrand Russ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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