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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 Nov 13. 2018

사랑

그 특별한 아름다움

  사랑은 정말 전 세계적으로 남녀노소에게 인기 있는 주제인 듯하다. 그것이 수많은 시, 소설, 드라마, 영화, 노래 등의 인기 있는 주제가 사랑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뭘까?


  이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뭐라고 딱 말하기는 어려운, 사랑은 대체 뭘까?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번 학기 사랑의 심리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데 이 질문에 정확히 딱 떠오르는 걸 결국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최선으로는,

사랑은 특별함이다.


  모든 특별함이 사랑일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랑은 특별함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특별함이라는 건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어떤 것들과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들만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일지라도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하다. 실은 난 누군가와 사랑해본 적이 없지만, 그런 것 같다.




사랑의 특별함을 잘 드러내는 시를 하나 읽어보자. 내 생각에 사랑의 특별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이 시는 한국인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한 사랑의 시이다. 이 시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에는 “나” 가 화자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한다. 화자는 여기서 자신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은 관계와 특별함의 시작, 기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이름을 기억해준다는 것, 불러준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까지는 아직 이름을 불러 주기 전이고, 특별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에게 있어서 다른 누군가와 다를 것 없는 상대를 사랑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지금 “그”는 화자에게 지나쳐가는 수많은 행인들의 모습, 몸짓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화자는 그에게 특별함을 가지게 되었다. 시의 더 아랫부분을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걸 보면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의 빛깔을 보고 향기를 맡은 뒤 그에 맞는 이름을 찾아 불러줘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일 화자가 그에 대해 특별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여전히 “그”는 화자에게 몸짓과도 같은 존재라면 이런 수고로움에도 이름을 불러 주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화자는 그를 특별히 여겼고, 그에게 자신이 지은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자신이 그에게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 알리는 과정도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의 감정을 알려주어야만 그는 나에게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랑이 되었다. 그는 이제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그다음 화자는 누군가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말한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어 자신도 그의 꽃이 되고 싶어 한다. 화자는 이제 자기 자신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꽃이 되어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화자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모두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분명 한 명이라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화자는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첫 부분에 등장했던 표현인 몸짓은 누구나 볼 수 있다. 보려고 하지 않아도 몸짓은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의 눈짓을 알아채려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신경을 써야만 한다. 우리들은 서로 상대방의 눈짓을 보고 의도를 알아챌 만큼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 이 시는

특별하다는 것.


이 무엇인지를 잘 느낄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특별함이 모든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자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딱히 사랑이나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물론 조금은 했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해야 하는 것"에 묶여있었으므로 그럴 시간 자체도 별로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오니 시간도 많아졌고, 비교적 다른 사람들을 많이, 다양하게 만나게 되었다. 물론 그런 데에는 내가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보니 그런 부분도 많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 대해서, 또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2달간 미국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참여했는데, 같이 갔던 형, 누나들이 나의 사랑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하고 물어보기도 해서 더 그랬다. 그때 많이 들었던 질문인 이상형이라는 것에 대해서 정리해보려 한다.
  이상형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상형을 물을 때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는 이상형을

만나면 좋아할 것 같은, 사랑할 것 같은 사람.


이라고 정의하여 이 글을 쓸 것이다. 나의 정의 방식에서 한 가지 특징은 조건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상형을 조건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틀에 맞는 사람을 찾아다닌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불만은 없다. 만약 본인 스스로를 정말 잘 안다면 꽤나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런 생각이 유용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정의한 이상형은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좋아할 것 같은, 그런 사람이다.


나는 나의 이상형을 한마디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때 생각해낸 나의 이상형은

세상의 추함을 알고도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사람.


   이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우선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다. 우선 이 아름다움은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과 세상의 아름다움으로 나뉜다.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이란 가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외모나 건강 정도겠지만, 기본적으로


닮고 싶음.


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쌓아온 지식, 많은 생각을 통해 쌓은 공고한 신념,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 따뜻한 마음씨 등 내가 그 사람에게서 닮고 싶은 정말 많은 것들이 그 혹은 그녀의 아름다움일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누군가를 보고 아름답다고 멋지다고 느끼는 것은 대개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아닌가?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내가 믿는 아름다운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특별한 재능이나, 부유함 따위가 없더라도 평범함만으로도 행복하기에 충분한, 그런 세상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보호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봉사활동 같은 직접적인 활동부터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사실 난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아무튼 기본적으론 이렇게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추함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실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꿈이 많은 아이들 중에는 아마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이렇게 아이들처럼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쫓는 이들은

희망.


이 그들의 의지의 원천이다. 희망이란 쉽게 표현하면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TV에서 나오는 아이돌을 보고 자기도 아이돌을 꿈으로 갖는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티며 노력하는 것이다. 또는 희망이 보상의 형태 때도 있다. "내가 착하게 살면 결국은 모두 나에게 돌아올 거야" 같은 어렸을 때 어른들이 자주 하던 말을 믿고 내가 베푼 것이 나에게 돌아오리라 기대하면서 정말 착하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희망이든 보상이든 분명 이들은 그런 것조차 없는 사람들보다는 열심히 노력하면서 산다. 문제는 이 희망과 기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노력해도 분명 실패할 수 있다. 우리가 베푼 것이 때론 돌아오지 않거나, 심지어 배신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결국 희망을 유일한 근원으로 삼는 사람은 이 기대가 무너졌을 때, 함께 무너지기 쉽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추함을 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나는 언제라도 실패할 수 있음을 아는 것, 내가 베풀어도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음을 아는 것. 사실 나의 희망을 갖는다면 행동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어쨌든 나의 이 행동으로 인해 언젠가는 나는 성공할 것이며,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면 나의 행동은 항상 미래를 위해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세상의 추함을 안다면 나의 행동은 무의미한 일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나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지키려 한다면 그 사람은 강하면서도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세상의 추함을 마주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지 않을까? 아름답게 만들려면 결국 추함을 찾아서 아름답게 바꿔야 하니까. 세상의 추함을 안다는 것은 또 한편으로 이런 것이다. 이 세상의 많은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 이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을 안다는 것. 그런 것들을 알아야 문제를 고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물론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고 아름다움을 쫓는 이들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추함을 알고도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은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상형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쉽지만 설명하는 것과 이해하기도 간단하지 않다. 실은 나도 정말 이게 나의 이상형일까에 대해서 의구심이 든다. 나는 물론 저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만나고 싶고, 친해지고 싶지만(이건 꼭 성별과는 상관없이) 내가 사랑할 사람이 정말 꼭 저런 사람만일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게 저리 복잡할까 싶다. 나의 이상형에 대해서 내가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시가 하나 있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공감이 많이 됐는데 아무래도 이 시를 읽는 것이 나의 앞선 긴 서술을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와닿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요소들이 아니라도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인문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 세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 마음씨가 고운 사람,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사람 등 이런 사람들만 해도 충분히 내가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완벽한 인간이란 없는 것이기도 하고, 서로 알고 지내면서 점점 바뀌는 것도 있을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큰 생각을 하며 살지 않았더라도 알고 지내면서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며 바뀌어갈 수도 있으니 나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결론은 내가 이상형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말을 했지만 사실은 결국 부질없는 일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누군가와 사랑을 해본 적도 없고, 이것들은 모두 "아마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면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어쩌면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언젠가는 찾고 싶다. 빨리 찾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지만 사실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는 남들에 비해 사람들을 많이 아는 편도 아닌 데다가 내가 위에서 말한 것들은 그 사람을 조금 안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찾다 보면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날을 위해 나 또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가꿔야지, 언젠가 만날 그녀와 서로의 아름다움을 알아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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