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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Apr 22. 2023

엄마의 콩나물죽

아플 때는 엄마의 음식

엄마는 죽을 자주 드셨다. 거의 매번 콩나물죽이었다. 섬에는 전복, 문어, 바지락 등 신선하면서도 영양이 좋은 죽 재료들이 많았다. 하지만 엄마는 바다에서 난 것들은 소화에 부담이 된다 하시며 집에서 직접 기른 콩나물로 죽을 쑤셨다. 위 수술을 하신 후로 우리 가족은 모두 오십 번씩 씹고 삼키기를 하면서 엄마의 소화를 도왔지만 죽이 속이 편하다는 이유였다. 콩나물죽을 먹는 날은 상을 차릴 때부터 부엌에서 고소한 향이 진동했다. 우리 가족은 그 고소한 향과 함께 콩나물죽을 맛있게 먹곤 했다.


좀처럼 아프지 않은 체질이지만 한 번 아프면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끙끙거렸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렇게 아플 때면 어김없이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콩나물죽이 먹고 싶었다. 가장 아프고 힘든 이틀 정도를 지나면 물먹은 솜 같던 몸은 가벼워지며 회복 신호를 보내온다. 그때가 바로 김이 모락모락 한 뜨거운 콩나물죽 냄새가 코끝에서 느껴지며 식욕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어릴 때 엄마는 콩나물죽을 끓이실 때 시루에서 갓 뽑아 온 가지런히 누워있는 콩나물을 양푼에 넣고 다듬으셨다. 간혹 재미 삼아 엄마 옆에 앉아 같이 다듬던 기억이 있다. 비릿한 콩나물을 손질할 때면 처음 가르쳐줬던 방법을 생각하며 엄마를 따라 한다. 먼저 손질할 만큼을 왼손에 잡고 고개 숙인 노란 콩나물 대가리가 쓰고 있는 미끈미끈한 콩깍지를 벗겨낸다. 뿌리의 수염이 있는 부분은 엄지손톱으로 끊어낸다. 처음에는 내 엄지손톱으로 쉽게 끊어진 것이 재미있었다. 게다가 뿌리를 끊어낼 때 나는 아주 미세한 소리와 함께 손끝에서 떨려 나간 느낌은 내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콩깍지는 내 손에서 쉽게 떨려 나가지 않았는데 뿌리는 깨끗하게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것을 소리와 느낌으로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이 떨어지고 잠에서 조금 해방되어 콩나물죽이 당길 때는 아직 일어서있을 기운이 없지만 간신히 힘을 내어 주방으로 간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육수에 이제는 특별히 다듬어야 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씻기만 해도 되는 콩나물을 넣어 끓인다. 콩나물은 익으면 건져내고 국물에 미리 불려놓은 쌀을 넣고 끓인다.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죽의 고운 색을 위해 당근을 아주 조금만 채 썰어 다진다. 죽이 한 번 끓으면 쌀이 퍼질 수 있도록 저으면서 익힌다. 젓다가 잠깐 멈추면 쌀알이 끓으면서 죽 표면 위로 여기저기 동그란 모양을 만들다가 제풀에 ‘퍽’ 소리를 내며 터진다. 그러기를 반복하면 건져놓은 콩나물과 마늘, 당근을 넣어 젓다가 천일염으로 간을 한다. 마지막으로 쪽파의 초록 잎만 넣고 고소한 향을 위해 참기름을 넣고 한 번 저은 다음 바로 불을 끈다. 


 

적당하게 퍼진 콩나물죽을 그릇에 담는다. 물김치가 있다면 뜨거움을 덜기 위해 함께 먹는다. 뜨거운 콩나물죽을 공기에 덜어 식히노라면 콩나물의 노랑과 당근의 주황, 쪽파의 초록이 맛깔스럽게 느껴진다. 숟가락으로 죽을 떠 한입 먹으려 할 때 참기름과 콩나물죽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콧등에 땀방울이 생긴다. 이마에서도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렇게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두 끼 정도의 콩나물죽을 먹고 나면 나는 집안에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어 있다.


 

가정을 이루고 가장 서글펐던 것은 내 몸이 아플 때 힘든 몸을 이끌고 내가 먹고 싶은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때였다. 아플 때는 나도 어렸을 때처럼 앓으며 누워있고만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학교 과제며 준비물 등을 신경 쓰고 식사를 챙겨야 하니 마냥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아프면 아이들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마음에 걸려 마음 놓고 앓지도 못했다. 어렸을 때 엄마랑 먹었던 다양한 죽 중에서 콩나물 죽은 죽의 색깔과 냄새, 맛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특히 아플 때 콩나물죽이 생각나는 것은 엄마 품에 있었던 어릴 적, 어떤 생활의 책임도 없이 아플 때는 마냥 쉬었던 그때가 그립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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