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의 어떤 순간들
1. 촬영 중 휴식 시간, 릭 달튼은 같은 영화에 출연해 미라벨라 랜서 역을 맡은 아역 배우 트루디 프레이저와 대화를 나눈다. 트루디는 촬영장에서는 본명이 아닌 배역명(미라벨라)을 쓴다며 자신의 연기론을 늘어놓던 중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추구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건 연기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를 향하는 말이기도 하며, 스판 농장에 사는 히피족 중 한 명이 가볍게 내뱉는 "배우들은 다 가짜"라는 말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2. 샤론 테이트가 극장에 가서 자신이 조연으로 출연한 <렉킹 크루>(1969)를 본다. 관객들 틈에 섞여 샤론은 관객들의 리액션 하나하나에 미소 지으며 스크린 속으로, 그리고 상영관 안의 그 순간으로 빠져든다. 영사실에서 스크린을 향해 쏟아지는 불빛들, 관객의 웃음소리, 커다란 안경 너머 샤론의 눈빛, 어두운 상영관의 그 풍경을 보는 (이미 상영관 안에 있는) 관객은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싶은 독특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3. 앞서 릭이 상대 배우에게 자신의 '<대탈주>(1963)에 출연할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와 달리 샤론이 보는 영화 <렉킹 크루>의 장면에는 마고 로비가 아니라 실제 샤론 테이트의 풋티지가 그대로 쓰였다. <대탈주>에 출연하지 않은 릭이 이야기할 때 그 내용은 실현되지 못했으므로 스티브 맥퀸 대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얼굴이 쓰이지만 샤론은 <렉킹 크루>에 실제 출연했으므로 여기서 마고 로비의 얼굴을 합성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샤론은 작중 낸시 콴과의 격투 장면을 보며 그 영화의 가라테 자문을 맡은 이소룡에게 무술 지도를 받던 순간을 잠시 떠올린다.)
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샤론 테이트도 로만 폴란스키도 찰스 맨슨도 아니고 가공의 인물인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라는 점이다. 한물 간 이들이 지켜보는 그날의 일들. 대사를 까먹었다가 이내 다음 신을 한 테이크에 끝내고 감독에게 칭찬을 듣는 릭, 스판 농장에서 히피족 한 명을 때려눕히는 클리프. 둘의 하루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남편의 생일 선물로 책을 사는 샤론의 일상과 선명하게 대비되어 50년 전 중요한 변화를 맞기 전의 미국 영화 현장 안팎을 2019년에 생생하게 소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