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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10. 2016

사랑은 틀에 얽매이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다

<캐롤>(2015), 토드 헤인즈

일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간혹, 자신의 삶을 그를 만나기 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대체로 처음 눈을 마주하는 순간, (어떤 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이나 혹은 인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특정한 하나를 필요 이상의 지배적인 비중으로 놓고 보게 되면 편협하거나 지엽적인 해석에 빠지게 된다. <캐롤> 역시도 생각해 봄직한 주제들이 많았으나 그 모든 것들의 바탕이 되는 것은 백화점에서 장난감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던 '테레즈'가 '캐롤'을 우연히 손님으로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다.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는 것처럼 <캐롤>이 주목하는 대상은 '캐롤'이지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딱 '테레즈'가 겪고 느끼는 만큼의 것만을 관객에게 전달함으로써 <캐롤>의 서사는 닫혀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테레즈'가 어느 시점까지는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조차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준비돼 있지도 못하기 때문에 <캐롤>을 보면서 자연히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저 대사 사이의 쉼과 그 쉼이 만드는 둘 사이의 공기, 서로를 바라보는 서로의 표정들이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의 발전 내지는 완성을 저해하는 갈등들이 등장하고 익히 예상 가능한 수순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멜로드라마의 전형성을 <캐롤>은 보기 좋게 극복한다, 그 익숙함을 피하지 않음으로써. 게다가 반 세기 전의 질감을 그득 느끼게 하는 <캐롤>의 시선은 오로지 인물만을 향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그리고 그 사랑을 이루고 지키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던지는 사람의 표정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단지 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은 사랑은 서로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바꿔놓는다. 근래의 멜로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수준의 완벽한 마지막 장면은, 그것이 덧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두 사람의 미래를 그려보게 만든다. 두 배우를 바라보는 카메라마저 설렘의 시선으로 가득하다. (★ 9/10점.)




<캐롤(Carol, 2015)>, 토드 헤인즈

2016년 2월 4일 (국내) 개봉, 118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카일 챈들러, 사라 폴슨, 제이크 레이시, 세이디 헤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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