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2015)
각자의 남편과 남자친구가 있지만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이끌림에 의해 사랑에 빠진 두 여자가 있다. 195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Carol, 2015)>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해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라는 감상이 있다.
어떤 발언에 대하여, 그 내용을 언어로 표현된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고,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서 재해석하는 방법이 있다. (동성애자인) 토드 헤인즈 감독이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로 읽히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던 내용을 차치하고, 이 경우 전자는 '동성애를 말하기 위한 영화였다기보다는 소재는 동성 간의 사랑이지만 결국 (자신이 보기에)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영화다'가 될 것이고, 후자는 '동성애로 보기에는 소재가 거북하게 다가오니 난 이걸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로 보겠다' 같은, 그 외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후자의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영화는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동성애 영화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확고한 사고의 프레임이다. 같은 '이성애'('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하는 것 자체에 있어서도 시각의 차이가 개입될 여지가 있겠으나)에 있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가 남성(혹은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거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사람이 있다.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라는 언급에 대해서 해당 내용 자체만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전후에 전제되어 있는 내용들과 맥락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앞 내용,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하필이면 그 사람이 여자더라"라는 언급에 대해 "주인공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양성애자(or 이성애자)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동성애를 폄하했다는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캐롤>은 동성애 영화이므로 그렇게 봐야 한다'라는 확고부동의 주관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사랑 앞에서는 성별이나 사회적 계층과 구분 같은 것보다 사랑 그 자체다 더 숭고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이 영화를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은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어느 평론가의 중립적인 감상에 대해 해명이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수준과 정도의 뭔가가 나오지 않는다면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감상이나 비평에도 내재적 비평과 외재적 비평 따위의, 여러가지 성향이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성향의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 비평가의 직업 윤리 의식이 부족해서인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요구하는 그 관점이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감상의 하나인데 그것이 마땅히 필요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일까.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어떤 두 주장이 있을 때, 그것들 사이의 타협점이 없을 경우는 유감스럽게도 그냥 거기까지인 것이다. 더 나아가면 그저 인신 공격이나 비난에 불과해질 뿐이다. 텍스트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 <캐롤>을 동성애의 시각으로 볼 것인지 보편적인 사랑으로 볼 것인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모든 것에 대해 상대주의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모두 존중하고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관점이 마땅히 배려받아야 하듯, 그 누구의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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