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저 산 너머'(2019) 리뷰
『오세암』 등의 여러 동화를 쓴 故 정채봉 작가 원작을 각색한 영화 <저 산 너머>(2019)는 시대의 어른으로 존경받았던 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의 생애 가운데 유년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일제강점기 경북 군위의 시골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그가 어떻게 교계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펼쳐진다. 조부 때부터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으니 그가 신앙의 길을 걷는 게 자연스럽거나 당연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작중 다뤄지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보면 그것이 '당연한' 일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종교인의 삶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그 영화가 '종교적'인지의 여부와 직결되지는 않지만, <저 산 너머>는 관객 각자의 종교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닿을 수 있는 영화다. 가톨릭의 여러 의식들과 실존 인물의 일화가 언급되거나 묘사됨에도 불구하고 <저 산 너머>는 '수환'을 연기한 아역 이경훈 배우를 중심으로 이항나, 안내상, 강신일, 송창의 등 탄탄한 주, 조연진의 뒷받침으로 인간애 가득한 휴먼 드라마를 구축해낸다.
어린 '수환'의 집을 드나들던 신부(강신일)는 수환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면서 '마음밭'을 언급하는데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씨앗이 심어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그 씨앗이 무엇인지는 본인도 알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 신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린 '수환'의 조부가 어떻게 신앙인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 가족의 뿌리에 관한 내용들로 '수환'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다.
故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는 당시에도 천민으로 분류되었던 옹기장수였다고 한다. 김 추기경의 아호가 '옹기'였다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데, 영화에서 '수환'이 집에 즐비해 있는 옹기 중 하나의 안으로 들어가 밤하늘의 별을 보거나 옹기 벽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건 곧 마음을 비우면서 자신을 낮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영화 <저 산 너머>는 가톨릭 종교인에게라면 현대사회에서 믿음의 의미를 진정 돌아보게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비종교인이라 해도 시대의 어른이 된 한 인물이 어떤 유년기를 보냈는지를 지켜보며 어린 '수환'과 어머니 사이의 뭉클한 가족애를 만나게 되겠다. 제작비를 감안해도 군데군데 투박한 구석이 보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을 뛰어넘는 울림이 있을 것이다. (4월 30일 개봉, 112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