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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07. 2020

한줄평과 평점은 영화 이야기의
전부가 아닙니다

씨네21 '사냥의 시간' 평점 관련


0. 어떤 분이 제 댓글에 답글을 남겼다가 금방 지웠는데요,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에 대해 코멘트를 남깁니다. 출처는 씨네21 인스타그램의 <사냥의 시간>을 포함한 한줄평 게시물입니다. 아래의 제 댓글은 '사냥을 당한 시간이라며 관객들에게 욕을 먹는 영화가 어찌 5점만점에 4점을 받을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비평이 망했다는 증거', '올해의 졸작급 졸작에 별 3개, 4개라니...저러니 고이고 썩었단 소릴 듣지.' 같은 저 게시물의 일부 댓글들을 보며 든 생각에 대해 적은 것이고요.



이렇게 댓글을 남겼었고,
어떤 분이 이렇게 댓글의 답글을 남겼으나 얼마 후 스스로 삭제했다.


1. 물론 누구든지 기자나 평론가의 평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도 자격도 있죠.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과 기자/평론가 반응이 다르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비평이 고인물이 되었다, 망했다 같은 이야기를 할 근거가 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관객들의 반응과 기자/평론가(여기서는 굳이 전문가라고 칭하지 않겠습니다. 그들도 관객의 한 사람이니까요.)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영화는 <사냥의 시간> 외에도 굳이 예를 들 필요조차 없을 만큼 아주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게, 매체가 퀄리티가 떨어져서인가요? 관객에게 혹평받는 영화를 어떤 기자나 평론가가 좋게 평가하면 그 사람의 평은 퀄리티가 떨어지는 평인가요? 단지 영화를 보는 기준이 다를 뿐입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는 게 왜 '불편함'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를 들어 오락적인 재미를 주는 정도로 영화를 평가하느냐, 연출, 편집, 각본, 촬영, 음향, 연기 등 좀 더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하느냐 등의 차이는 있죠. 이건,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실 그 자체입니다. (관객평은 거의 항상 1점과 10점이 가장 많습니다.)(왓챠 등 영화 마니아/애호가 층이 모이는 플랫폼 제외)


어떤 영화든 마찬가지로, 관객이든 기자든 선호도와 만족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누구든 간에요. 그렇게 자신에게 졸작으로 다가왔다고 해서, 그 영화를 호의적으로 평가한 사람의 평이 고이고 썩은 것이 되나요? 제가 매체 관계자도 아니고 영화 관계자도 아니니 누굴 가르치거나 설득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습니다. 설혹 관계자라고 해도 그럴 생각도 필요도 없고요. 본인이 생각해야지 누가 뭐 하자고 가르치고 주입합니까, 영화 감상이 문제 풀고 답 찾는 영역도 아니고요.


2. 진정 한줄평과 평점이 매체의 전부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굳이 시간과 노고를 들여 인터뷰를 하고 리뷰를 쓰고 비평을 쓰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20자평은 평 자체가 아니라 기자나 평론가 각자의 영화에 대한 평에 덧붙이는 코멘트의 성격을 지녔지 그것 자체가 평이 된다면 애초 글을 쓸 필요도 글이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냥 '재밌었다'라고 하면 되지 글은 왜 쓰고 이야기는 왜 하나요? 뭐 하러 한 시간 두 시간씩 영화에 대해 해설하고 떠드나요. 그냥 웃고 울고 화 내고 떼쓰면 되지 감정 표현은 왜 굳이 언어로 하나요. 사람마다 지닌 차이와 그 다양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이것조차 '가르치려는 태도'라고 생각하신다면, 애초에 어떤 영화를 가지고도 더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없을 것 같습니다.


3. 어느 기자님께서 "20자평과 별점은 영화 기자들이 모든 일을 마치고 붙이는 추신에 불과하니 영화 저널리즘을 그것과 동일시하지 말아 주세요. 본인의 마음에 든 영화를 비판한 평에 필자를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다는 대신, 나는 그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그 편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요."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4. 자격이나 권리가 있다는 건 곧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윤리 의식도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나는 이 영화가 올해 졸작 수준으로 재미없었는데 이 기자랑 평론가들은 영화를 저렇게 평가하네, 영화사한테 돈 받았나? 비평은 고이고 썩었어.' 이게 과연 합당한 사고의 흐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라면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그 사람이 쓴 리뷰나 비평을 찾아볼 것 같습니다. 거기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건 당연히 다음 문제고요. 만약 어떤 리뷰나 비평을 읽고 거기에 대해 어떤 비판을 하거나 본인이 생각한 다른 점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씨네21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기자/평론가 한줄평에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다는 사람이 그 기자/평론가의 글을 읽은 사람이거나 매체의 '독자'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5. 만약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지는 영화에 기자, 전문가 평점이 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났다면 어땠을까요? 모 평론가의 블로그에는 그 평론가를 비'난'하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었죠. <연평해전>이나 <국제시장> 같은 영화에 대한 기자, 평론가 평점에 대해 인터넷상의 반응이 어땠는지, 혹은 좀 더 시간을 거슬러 <디 워> 같은 영화를 떠올려봐도 좋겠고요. 있어 보이려고 유식한 척한다? 대중과 유리되어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봐온 내용들이라 굳이 출처를 남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6. 혹시나, 대중들의 눈높이나 기준에 맞춘 리뷰와 비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자기 주관을 갖고 영화 저널리즘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왜 다른 사람들, 그것도 저널리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사람의 기준에 맞춰야 하나요. 저는 상대의 가치관을 헤아리거나 차이를 생각해보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까지도 존중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 저는 한줄평과 평점이 마치 영화 매체가 존재하는 이유의 전부인 양 취급하고 그것만으로 영화 저널리즘을 재단하고 매도하는 댓글들이 '불편'해서 이걸 퇴근길에 썼는데요, 원 댓글이 삭제된 관계로 씨네21 인스타그램의 해당 게시물에 남겨두지 않고 그냥 여기 올려두기로 했습니다. 피드에 굳이 남겨두는 이유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영화 리뷰와 비평을 향한 그러한 태도에 '불편'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사냥의 시간' 메인 포스터

*프립소셜클럽 [영화가 깊어지는 시간] 모집: (링크)

*매월 한 명의 영화인을 주제로 다루는 영화모임 '월간영화인': (링크)

*원데이 영화 글쓰기 수업 '오늘 시작하는 영화리뷰' 모집: (링크)

*원데이 클래스 '출간작가의 브런치 활용법' 모집: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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