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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9. 2020

좋아하는 것들의 영토 지키기

전적으로 나를 위해서 쓴다

(...) <레디 플레이어 원>은 오아시스를 플랫폼이라기보다 하나의 콘텐츠로 취급한다. 그리고 영화를 이끄는 ‘플레이어’들은 그 콘텐츠를 권력이나 부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아니라 그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이들이다. 생전 할리데이는 자신이 방대한 대중문화를 아끼고 향유했던 것처럼, 오아시스 역시 오아시스 내에서의 생활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몰입하는 이들의 손에서, 변질되지 않고 자유롭게 운영되기를 꿈꿨다. 그 순수함은 온전히 지켜질 수 있을까.


무언가를 열렬하게 좋아하면 그것에 대해 반복해서 섭렵하고 점차 잘 알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습득된 정보와 경험은 단지 쌓이기만 하지 않고 사고를 확장시키며 그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좋아하는 척’ 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순수하다는 건 곧 무르고 약하다는 것이기도 할 텐데, 혼자일 땐 한없이 무력할지 모르지만 여럿이 되면 마침내 조금씩 단단해지고 혼자일 때는 결코 불가능했을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이 비단 게임에 대한 이야기일까. 이는 특정하게 언급한 것처럼 게임을 포함한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일상과 직업,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 곧 삶 자체와 직결된다. 콘텐츠와 취향의 마니아가 되기를 넘어서, 삶을 살아감 그 자체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일.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무엇인가에 몰두하며 나아가 좋아하는 행위 그 자체를 아끼는 일.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제목은 동전을 넣고 시작하는 오락실 게임에 대한 오마주이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것을 넘어 이 세상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지켜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가상현실이 아닌 진짜 현실은 그 어디에도 없는, ‘지금 여기’의 것이기 때문이다.


"에그 찾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미래는 더 이상 암울하지 않았다."

(어니스트 클라인, 『레디 플레이어 원』, 전정순 옮김, 에이콘출판, 32쪽, 2015.)


전에는 이 영화를 일컬어 "덕질이 세상을 구한다!"라고 요약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저 이렇게 말해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신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그게 이 글을 써 내려가는 마음이며,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영화가 아닌 무엇이든. 당신도 그 애정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9.03.11.)


(현재 [1인분 영화]라는 이름으로 지속하고 있는, 이메일 영화 글 연재 '봐서 읽는 영화' 2019년 3월의 첫 번째 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신도 좋아했으면 좋겠어' 중에서.)



이메일 연재를 처음 시작했던 달의 첫 번째 글에서 한 부분을 다시 읽었다. 그동안 좋아하는 것들의 영토가 넓어졌는가 하면 여전히 잘 모르겠고, 이 흔적들이 얼마나 읽을 만하고 새겨볼 만한 가치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도 잘은 알지 못하겠다. 넓히기로서의 쓰기보다는 지켜내기로서의 쓰기 뿐이었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넓어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 자리를 지켜왔다고는 간신히 말할 수 있겠다. 이긴다는 말과 지지 않는다는 말이 다를 수 있듯, 넓혀나가지는 못했더라도 좁아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다만 "기록은 쓰는 이의 마음부터 어루만진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혼자 기록할 따름이다. 첫 번째 독자는 언제나 자신이어야 해서. (2020.05.19.)





*신세계아카데미 2020 여름학기 글쓰기 강의 '나만의 영화 감상평 쓰기': (링크)

*씨네엔드 영화 살롱 '김동진의 월간영화인': (링크)

*탈잉 원데이 클래스 '오늘 시작하는 영화리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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