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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05. 2020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일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 생각 끼적

태산 같던 부모의 무기력하고 나약해진 뒷모습. 그들이 저만큼 걸어가고 난 후 빈자리. 있는 듯 없는 듯 감추고 살아온 각자의 비밀과 상처. 그러거나 말거나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들. 또래보다 너무 일찍 자란 아이. 산보를 나가 손을 뻗어 꽃을 꺾어오고, 꺾어온 그 꽃을 물 반쯤 채운 화병에 가만히 놓아둔 채 잠들지 못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는 일. 나비를 가만히 바라보다 "저 노랑나비는 말이야, 겨울이 돼서도 죽지 않았던 배추흰나비가 이듬해에 노랗게 변해서 돌아온 거래."라고 말하는 일. 그 이야길 어디서 들었냐고 물으면 "누구였더라..." 하고 말을 아끼는 일도.


누군가를 저마다의 이유와 의미로 잃은 가족의 단면들이 빼곡하게 빈틈없이 펼쳐진 채 오히려 빈자리와 공백을 채우지 않는 방식으로 완성되는 이야기. 거기 남아 몇 계절 후의 언덕과 바다를 응시하는 이야기. 그리고 오래도록 계단에 시선을 두는 이야기. 누군가는 늘 한 걸음씩 늦고, 누군가는 멀어지려 해도 가깝고 닮아 있으며, 또 누군가는 조금 앞서서 간다. 조금 앞에서 걷다 한 번씩 뒤돌아보고, 또 지치지 않게 일부러 조금 뒤에서 걷는다.


삶의 많은 것들은 매 순간 새로 쓰이거나 다시 쓰이면서 보이지 않는 파장을 만드는데 그중 어떤 것은 지나고 난 뒤에야 본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기회 봐서", "시간 되면" 하다가 꼭 "늘 이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어." 하고 뒤늦게 중얼거리고. 돌아보면 그게 인생이고. 그게 삶이라는 것이 내 일만은 아니어서 그게 형언할 수 없는 위로가 되곤 하는 것이고.


*씨네엔드 '월간영화인' 6월 고레에다 히로카즈 모임 선정 작품.


영화 '걸어도 걸어도' 중에서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lnk.bio/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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