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2015), 조정래
일 년에 몇 편, 어떤 영화들은 단순히 관객들이 감상하고 향유하는 것을 넘어 영화 바깥에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체로 실화적 기록을 다루었거나 가상의 이야기임에도 현실의 어떤 사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다. 잊고 지냈던 사건을 공론화시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그것이 단발성 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잊혀지지 않고 회자되도록 기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여 좋은 소재의 영화는 반드시 봐야만 하는 무엇을 언제나 제공할까. 2월 24일 개봉한 <귀향>의 제작비는 25억 원 정도다. 그 중 크라우드 펀딩으로 절반을 조달해 완성되었다. <귀향>은 현실에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증언을 토대로 각본화돼 만들어진 극영화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귀향>의 연출과 각본 및 제작을 맡은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가 "문화적 증거물로서의 역할에 기여하고자 하는 진심에서 출발했다"고 전한다. 허술하고 부실한 기획 영화도 오로지 적절한 배급 시기와 스타 배우의 얼굴만으로도 초대형 흥행작으로 기록되는 한국영화 시장에서 분명히 반갑고도 필요한 진심이다. 그러나 그 순수하고 뜻깊은 진심이 영화의 결과물 자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다큐멘터리조차 그것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데 극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귀향>은 극영화로서의 기본적인 줄기조차 없이 관객의 시야를 가로막는 한편, 분노를 유발하는 데에 치중한다. 그 결과물이 어떤지는 주제 자체에 가려진 채 감정의 생산과 소비로만 이어진다. 게다가 성적 착취를 당한 여성의 황폐해진 마음을 국가적인 울분으로서만 전시한다. 역사나 문화를 다룰 때는 오히려 더 냉정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동주>를 보자. 이준익이라는 걸출한 감독과 강하늘, 박정민이라는 촉망 받는 배우가 있었지만 <동주>의 제작비는 불과 5억 원이다. 애초 욕심을 버렸기에 가능했다. 한국영화의 홍보 마케팅에 있어서 지극히 기본적으로 이루어지는 절차들만을 가지고 <동주>는 영화의 내적 완성도에 힘입어 관객들이 스스로 호응했고 자연히 예매율 상승과 상영관 확대로 이어졌다. (물론 처음부터 상영관은 적지 않았지만) 특정 거대 상업영화들의 스크린 과점을 차치하고 <귀향>은 여느 다양성/독립영화들의 개봉 초기 그것에 지극히 준하는 상영관으로 출발했다. 이것이 명절 전후로 개봉했던 거대 상업영화들의 상영관 수와 맞물려,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영화라 제대로 상영관이 배정되지 않았던 것처럼 여론이 조성되었고, 결국 개봉 이전에 상영관 확대가 이루어졌다. 배경이 일제 강점 하의 특정한 시기라는 점을 제외하면 <동주>와 <귀향>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귀향>은 철저히 민족적 정서와 그를 기반으로 한 감성적 호소로 일관한다. 다시 말해, 영화의 바깥에 있는 프레임을 영화를 가려버릴 만큼 확대 생산하여 일종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생겨난 여론이 아니라 만들어진 여론은, 경계부터 하게 된다.
꼭 봐야만 하는 영화는 없다. 영화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거나 다른 영화들보다 분명하게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영화는 많지만, 관객에게 선택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귀향>을 관람하지 않는다고 해서 애국심이 결여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귀향>이라는 영화의 내적 아쉬움이나 개선점에 대해 논한다고 해서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 야욕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것도, 전혀 아니다. 영화의 안과 밖은 때로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밖의 이야기가 과도하게 커지면, 정작 영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다루어지지 않는다. 좋은 뜻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대변해주지는 못한다. 평가받지 말아야 할 영화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정말 문화적 증거물이 되려면 분노를 이용하고 분노에 기댈 것이 아니라 냉철하고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 4/10점.)
<귀향>(2015), 조정래
2016년 2월 24일 개봉, 127분, 15세 관람가.
출연: 강하나, 최리, 손숙, 황화순, 정무성, 서미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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