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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09. 2020

최근 몇 편의 짧은 영화기록

다시 만나거나 처음 만난 순간들


1. <소년 아메드>(2019),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8월 4일(화) CGV여의도에서


<소년 아메드>(2019)는 잘 만든 영화임에도 다르덴 형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걸작의 반열에 들 만한 작품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관해 다소 국소적으로 다룬다는 생각도 들고 '아메드'가 극단주의 사상에 매료된 계기보다 그 결과 자체만을 그린다는 인상도 준다. 클로즈업과 핸드헬드가 주로 쓰이는 카메라도 오히려 '아메드'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기보다 약간의 거리를 두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미성숙하고 타인의 영향을 쉽고 강력하게 받는 10대 주인공의 시점에서, <소년 아메드>는 진정한 반성만큼은 누군가의 영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해를 위해 손에 쥐었던 도구가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쓰이는 한 장면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건 한편으로 쉽게 감화받고 쉽게 변화하는 익숙하고 멜로드라마적인 기존 서사들을 답습하지 않는 선택이기도 하다. 끝내 감독의 시선과 낙관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엔딩 크레딧에 쓰인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B플랫 장조 D.960)이 궁금해 찾아봤더니 슈베르트가 세상을 뜨기 불과 두 달 전에 만든 곡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 선곡이 <소년 아메드>의 결말을 부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7/10)


CGV여의도에서, 영화 '소년 아메드' 포토티켓

2. <컨택트>(2016), 드니 빌뇌브 - 8월 1일(토) 저녁 씨네엔드 '월간영화인'에서 다룬 영화


"인간의 지성은 한정되고 그 수명은 짧지만, 그가 가진 기억에 의해 인간은 정신의 불멸성을 획득한다. 인간의 생명은 연약하여 머지않아 스러질 것이기에 오히려 영원할 수 있다. (...) 한 사람의 삶은 우주 전체의 삶이며,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시간은 그것이 아무리 짧아도 영원에 이르는 시간이다." (황현산)

기껏해야 우리는 헵타포드의 언어와 사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인간일 뿐이지만, 소통하는 마음과 포용하는 자세에 따라 어쩌면 비선형적 인생관을 살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여정을 알면서도, 그 끝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일. <컨택트>(Arrival, 2016)는 아홉 번을 봐도 루이스의 선택은 나로서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어서 겸허해지고, 열 번을 봐도 언어와 사고와 존재를 넘어 살아있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볼 때마다 나날이 더 각별해지는 영화가 있다. 지금 놓여있는 이 길이 환희의 극치를 가져다줄지 고통의 극치를 가져다줄지 나는 알지 못하겠지만, 이 이야기는 몇 번이고 계속 시작될 것이다. 2020년 8월 1일, 씨네엔드 월간영화인 8월 에이미 아담스 첫 모임 <컨택트>에서.



3. <이창>(1954), 알프레드 히치콕 - 8월 2일(일) 씨네엔드 '클래식 무비 챌린지'에서


<이창>(1954)은 창문에서 시작해 창문에서 끝난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이 누군가를 들여다본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관음이 호기심과 윤리 사이에서 어떤 줄다리기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창>이 담고 있고 시사하는 바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더 깊게 생각해보게 만든다. 히치콕이 생각하고 믿는 방식으로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일'을 옹호하면서도 그것의 양면성을 성찰하는 작품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트뤼포는 그래서 "영화에 관한 영화"라고 <이창>을 언급했던 것이겠다. '실제처럼' 일일이 구현된 정교한 세트 안에서, 제한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만으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재미는 물론 몰입감과 긴장감, 유머, 메시지, 기법까지 놓치지 않은 이 20세기 걸작에 21세기의 내가 지금 점수를 매기는 일 자체가 별 의미는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관찰은 제프가 하고 행동은 리사가 했으니, 제임스 스튜어트가 아닌 그레이스 켈리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점도 새삼 묘하게 다가오는 면도 있다. 좋은 영화는 관객에게 도전하고, 다른 방식으로 보며, 끝난 뒤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 10/10)



4. <녹터널 애니멀스>(2016), 톰 포드 - 8월 15일(토) 저녁 씨네엔드 '월간영화인'에서 다룰 영화

2016년 5월 방영된 KBS1 [TV 책] '채식주의자 - 한강을 만나다' 편에서 한강 작가는 "폭력이 견디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보여주기 위해서는 폭력적인 장면을 힘겹게 써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톰 포드가 감독한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2016)를 보면서, '수잔'(에이미 아담스)이 읽는 책 속의 이야기, 아니 그 책을 '수잔'이 읽는 경험 자체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수잔'은 독서 중 몇 번이나 책을 내려놓고, 숨을 가다듬고, 동요한다. 그건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가 보내준 소설 속 이야기가 글자에 머물지 않고 '수잔'의 몸과 마음을 향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읽는 행위는 그렇게 읽기에 머물지 않고 감정을 뒤흔든다. 누군가의 상처, 누군가의 폭력은 그렇게 타인에게 전이된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스틸컷

인스타그램: @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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