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녹터널 애니멀스'(2016) 리뷰
@ 씨네엔드 월간영화인 8월 '에이미 아담스' 2회차 선정작
"우리는 영원히 이 장르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이다혜, 『아무튼, 스릴러』에서)
아무리 간접체험을 뛰어넘는 정도의 참혹함과 비극이라 해도, 관객이자 독자인 나는 안락한 환경에서 매체 뒤에 숨어 캐릭터와 서사를 관전하고 이것이 영화였음을, 소설이었음을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장벽을 뛰어넘게 해주기도 하는 것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그 장벽을 넘어서려는 행위 자체다. 안락함을 넘어 불쾌함과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일이 그것이며, 나아가 연출자와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는 일 역시 그것이다.
톰 포드의 <녹터널 애니멀스>(2016)는 오스틴 라이트의 원작 장편 『토니와 수잔』(1993)에 직접 비교한다면 여러모로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러나 같은 서사여도 문자 매체와 영상 매체는 동일해질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는 톰 포드의 각색 방향과 의도에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되는 면도 많이 있다. 요컨대 수잔이 에드워드의 소설을 읽는 행위는 원작 못지않게 영화에서도 독자와 작품/작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에 있었/없었는데 영화에서 없게/있게 된 것들은 대체로 제한된 분량과 환경 차이에 따른 매체 특성을 고려한 결과물로 헤아려진다.
책을 읽는 행위는 단지 서사를 받아들이는 일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과 자신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동반한다. 다층적 액자 구성이 각 층위가 별개로 있지 않고 각 층위 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녹터널 애니멀스>와 『토니와 수잔』은 픽션을 보는/읽는 행위가 현실의 관객/독자의 삶 자체도 달라지도록 영향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극도로 생생하게 증명한다. 에드워드의 소설 속 토니의 이야기 중 다수는 현실의 수잔과 에드워드 이야기와 밀접하게 혹은 은유적으로 맞닿아 있고, 수잔은 읽고 있는 소설 속 내용만이 아니라 자신과 에드워드의 관계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혼란과 고통을 느낀다.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 수잔에게 일어나는데 그건 물론 독자가 '수잔'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결국 이 퍼즐은 누구에게도 동일할 수 없는 피스와 파츠들로 이루어져, 읽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몰입시키는 행위를 통해서만 간신히 끼워 맞춰진다. 아직,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긴 글을 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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