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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17. 2020

안녕이라고 말을 건넬 수 없어 아프던 그 유년의 날들로

김금희 장편소설 '복자에게'(2020, 문학동네)로부터

소설가 김금희의 새 장편소설 『복자에게』(문학동네, 2020)를 예약주문하여 배송 받은 날, 이렇게 썼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에 관해서라면 여러 차례 언급해왔지만 오늘도 한 번 더 써야겠다. 예약판매 후 2주 정도를 기다려 『복자에게』를 받은 날. 어떤 작가나 작품을 좋아하는 건, 그(들)의 존재가 단지 호감이나 매력 같은 것만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매 순간 나아가면서도 한결같은 방식으로 거기 그 자리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를 읽었을 때나 『경애의 마음』을 접했을 때나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만났을 때나 계속해서 한 작가를 좋아하는 작가의 목록 맨 앞에서 언급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이 이야기도 종종 언급했던 것이지만 이것 역시도 오늘 한 번 더 써야겠다. 나는 픽션을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 이렇게 마음을 다해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이 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쓰는 사람의 이야기에 언제나 벅참을 느끼고 감동이나 위로를 만나며 세계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이 소설 덕분에, 그리고 이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 덕분에, 나 역시 혼자가 아닌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영화를 만나는 일만큼이나 좋은 책을 만나는 일이 행복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책을 마주하는 순간 덕분이다. 첫 장을 시작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작가의 말부터 펼쳤지만, 그럼에도 나는 분명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그렇듯 버텨내는 자들에게 기꺼이 복을 약속하지만 소설은 무엇도 약속할 수 없어 이렇듯 길고 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작가의 말', 242쪽)



그리고, 며칠 동안 내내 영초롱의 이야기를 통해 복자와 여러 고고리섬 사람들과 함께했다. 문자를 통해 만났을 뿐이지만, 분명 나는 거기 어느 정도 함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함께 걷기 시작한 그애와 내가 그날의 해변 길에 있다. 한번 불어오면 나를 통과하며 저절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써서 내가 찢고 나가야 하는 듯 느껴지는 거센 바닷바람 속에, 해야 하는 인사를 하지 않은 데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며 앞장서 가는 그애의 뒷모습 속에, 방파제의 갯강구들을 밧줄로 괜히 훑어 바다로 빠뜨리며 걷는 그애의 전진 속에, 그해 그 섬에서의 시작이 있었다." (21쪽)


"복자의 말을 들으며 오름을 내려가는데 맑았던 날씨가 또 바뀌어 서리가 흩날렸다. 나는 지금 눈가에 번지는 건 눈물이 아니라 서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대화가 가능한 오름에서의 날이란 전혀 불행하지 않다. 불행이 침범할 수가 없고 슬픔이 흩날리지 않는다. 복자도 울지 않으니까 나도 수가 없다." (215쪽)



좋은 소설이 뭐냐고 물었을 때 소설을 통해 가장 특수하고 고유한 상황과 사람과 세계를 만들어 그로부터 인간 보편의 어떤 마음이나 윤리에 관해서 이야기해내는 일이라고 답한다면, 거기서 나는 김금희의 『복자에게』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제주에서만 있을 수 있고 섬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육지와 섬'을 오가며 살아온 어떤 사정이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속에, 우리가 흔히 '사람이라면 그래야지'라든가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지'라든가 하는 말들을 하게 되는 일들이 가득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초롱도 복자도 오세도 고모도 준욱도 각자의 방식으로 존엄과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되는 심정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고, 접어두고 표시해둔 수많은 페이지들로 되돌아가 각각의 단어와 문장을 다시 생각했다.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아파' 했던 모두의 마음들이, 안녕이라는 흔한 말조차 누군가에게 꺼내도 좋을지 어떨지를 생각해보는 세심한 감정들이,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되는 무게와 끊임없이 유동하는 내면의 갈등과 번민'을 안고 사는 이들의 삶이, 조금 더 평화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런 소설의 존재가, 이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있음이, 바로 문학이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지시해줄 수 있는 것이었으면.

이변이 없는 한 올해의 소설이 될 것 같다며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언급한 게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거기 『복자에게』를 함께 적고 싶다. (2020.09.17.)


*

글의 제목은 책 126쪽에서 일부를 가져왔다. "고오세가 물었지만 혼자 있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남았을 때야 나는 비로소 이곳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마음을 보내도 가닿지 못하던, 아무리 누군가의 마음을 수신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던, 차마 복자에게 안녕, 이라고 말을 건넬 수 없어 아프던 그 유년의 날들로."


*

"누구는 그런 말도 한다. 아이를 유산한 나 같은 경우에는 산재가 인정될 확률이 높다고. 그 돈으로 건강해져서 얼른 아이 다시 가지라고. 근데 나 있잖아, 다시 건강해진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 다시 그렇게 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어떻게 내가 다시 그렇게 돼." (138쪽)



인스타그램: @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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