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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13. 2020

내 이야기가 태평양을 건넜다

나의 코로나 9월

'네이버 쪽지' 하나를 받았다. 작은따옴표를 굳이 붙인 건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제안이나 협업 문의는 대부분 인스타그램 메시지나 이메일로 온다. 평소 쪽지함을 잘 확인하는 편도 아닌데 그날은 메인 화면의 '쪽지 1'이라는 글자가 줌-인 된 것처럼 눈에 띄었다. 스팸이나 광고가 아니라 진짜 '쪽지'였다.


쪽지는 아득한 대양을 건너 한 남미 국가 주재의 대사관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현지인을 대상으로 영화 해설을 화상으로 진행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현지에서 한국 문화 교류 주간의 일환으로 마련된 행사 중 하나였고 내 이야기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스페인어로 통역될 예정이라고 했다. 현실을 초월한 기분으로 행사를 수락하고 영화를 선정하고 촬영 준비를 했다.


약 9만 명이 팔로우하는 대사관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재된 행사 알림 글에는 프로필 사진과 함께 'crítico de cine'(영화평론가)라고 내가 소개되어 있었다. 세상에. 갑자기 나라를 대표해 제대로 된 영화 해설을 전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몇 주 후 행사는 다행히 큰 무리 없이 진행했다. 1만 6천 킬로미터의 거리와 14시간의 시차를 넘어, 접속한 사람들은 현지의 언어로 인사를 했고 영화의 장면들이나 결말에 대해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연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우리에게는 '시네마'라는 하나의 언어가 있다"라고 했던 수상 소감이 이런 뜻일까 싶었던 순간이었다.


이 이야기가 메시지도 이메일도 아닌 쪽지로부터 시작된 건 행사를 담당한 서기관 님이 소셜미디어를 잘 이용하지 않아 포털 검색을 통해 내 블로그를 보신 덕분이었고 그 블로그는 내게 주된 채널이 아니라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등의 주요 글을 모아놓는 보조 저장소 같은 곳이었다. 기록해오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습관이었다. 과거의 시간들이 오늘의 경험을 만들었다.


그러니 그 쪽지는 네이버의 서버 어딘가에 있는 0과 1의 데이터가 아니라 영화에서처럼 현지에서 새의 발에 묶어 이곳으로 써서 보낸 서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무사히 닿아 나는 거기 응답해 다시 시공을 넘어 이야기로 응답한 것일 테고. '코로나 덕분'이라 하고 싶진 않지만, '코로나 19'가 창궐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내 이야기는 태평양을 건너 다른 언어와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었을까.


불확실한 상황들에 제대로 대비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일지는 모르겠다. 오늘 할 수 있는 건 다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이길 바라며 어제 했던 것을 반복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내게 있어 그건 단지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이다. 언젠가의 누군가에게 이것이 또 다른 방식으로 닿는 순간을 막연히 그려본다.


주 페루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진행한 온라인 영화 해설. 9월 10일에 대사관 페이스북에 공지가 게재되었다.

*본 글은 민음사의 [릿터 독자 수기 공모 - 나의 코로나 O월]에 참여한 글이다. (링크)



씨네엔드 월간영화인 - 10월 이안 감독 편(2회차 '라이프 오브 파이'): (링크)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모음(노션):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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