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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28. 2020

두 사람의 달리기는 어떻게 한 사람의 차지가 되는가

한가람 감독의 영화 '아워 바디'(2018)를 다시 보다

*영화 <아워 바디>(2018)의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한가람 감독의 영화 <아워 바디>(2018)에서 최희서가 연기한 ‘자영’은 8년째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주변에 알려져 있)다. 시험을 남일처럼 생각해 2차 시험날 고사장에 가지 않은 그는 “공무원은 못 되어도 사람답게 살아야지”라는 말을 남자 친구와 헤어지기 직전 듣고, 엄마에게는 식사 중 글자 그대로 밥그릇을 빼앗긴다. 아주 우연하고도 갑작스러운 계기로 ‘현주’(안지혜)가 있는 러닝 동호회에 가입해 달리기라는 세계에 눈을 뜨면서 벌어지는 ‘자영’의 이야기를 보며 <프란시스 하>(2012) 속 ‘프란시스’(그레타 거윅)의 “I'm not a real person yet.”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떠올렸다. “아직 1인분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의 이 말이 <프란시스 하>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립하는 것에 관한 주인공의 바람을 담고 있었다면 <아워 바디>는 ‘a real person'으로서의 사람을 이루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로 다가온다. 영화의 제목처럼 <아워 바디>는 그것을 육체에서 찾는데, 육체의 ’무엇‘으로부터 그걸 찾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견지한다. 이 모호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것 자체가 영화의 태도일까, 아니면 영화가 그것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못한 흔적일까. ‘모호한 것처럼 보이기’가 어쩌면 <아워 바디>의 의도일지 모른다고 생각해보면서 영화의 주요 장면과 ‘자영’의 행동들을 복기해보려 한다.


흔히 성적인 대상으로서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전례가 영화에 많았지만 <아워 바디>에서의 ‘자영’은 일단 순수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타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바라보는 주체가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동성을 향한 그의 시선이 성적 대상화의 여지를 비껴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영’과 ‘현주’를 동성애적 코드로 바라보는 해석도 종종 보인다) ‘자영’은 상대가 어떤 성별과 연령의 사람이든 간에 그렇게 바라봤을 것 같은 표정으로 상대를 보며 최희서 역시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주도록 연기한다. ‘자영’은 책장 위에 있는 만화책을 꺼내기 위해 발 뒤꿈치를 든 동생 ‘화영’(이재인)의 치마를 보고, 달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현주’의 여러 신체 부위들을 본다. 앞서 ‘자영’의 시선이 향했던 ‘화영’도 얼마 후 달리기를 시작한 언니의 몸을 보며 좀 변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엄마 역시 식사 도중 물을 가지러 간 ‘자영’의 몸을 ‘화영’이 그랬던 것과 비슷한 시선으로 훑어본다.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아워 바디>에서 ‘자영’은 이미 ‘현주’가 자신의 삶에 나타나기 전부터 인간의 조건으로서 몸에 관심을 가진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자영’의 첫 섹스 신은 기출문제 이야기를 하는 인터넷 강의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자영’의 모습, 봉지라면을 뜯으며 냄비를 꺼내는 ‘자영’의 모습과 나란히 이어진다. 고시 공부가 월세를 무탈하게 낼 수 있는 직업(공무원)으로서의 조건을 말하고 봉지라면이 영양소를 공급하는 에너지원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음식을 상징한다면 비록 기계적으로 ‘섹스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장면이지만 남자 친구와의 섹스 신은 인간의 기능에 생식이 포함돼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섹스를 마친 ‘자영’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천장을 보며 가만히 누워 있다.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몸’을 탐구한다면 ‘자영’이 다른 이들의 몸을 바라보는 건 자신과의 비교 때문일 것이다. 동생 ‘화영’에게 교복 치마가 야하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것도 자신보다 날씬한 ‘화영’의 하체가 치마가 짧아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고, (이후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소리를 듣지만 ‘자영’은 정작 자신의 청바지를 입지 못한다) 첫 만남부터 ‘현주’의 얼굴보다도 몸 이곳저곳을 살피는 것도 달리는 사람의 몸은 달리지 않는 자신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행위로 읽힌다. 캔 맥주를 사들고 터덜터덜 계단을 오르다 중간에 멈춰 앉은 자신과, 아래로 떨어지던 캔 맥주를 잽싸게 주워 계단을 민첩하게 뛰어 올라온 ‘현주’는 너무도 달라 보였을 것이고 ‘자영’은 주워 온 캔 맥주의 흙먼지를 털어서 내미는 ‘현주’를 그저 몇 초 간 지켜본다.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동네에서 세 번째로 ‘현주’를 마주친 그날 밤 ‘현주’를 무작정 쫓아가다가 ‘자영’은 체력을 소진한 듯 신발 끈도 풀린 채 중도에 멈춰 섰다. 하지만 ‘현주’의 말처럼 “완전 초보”였던 ‘자영’은 이내 ‘현주’에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라는 칭찬을 듣는다. 자신이 달린 경로와 길이 그리고 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스마트폰 앱을 ‘자영’은 신기한 듯 바라본다. ‘현주’를 뒤에서 쫓아가는 것도 벅차 했던 ‘자영’에게는 자신이 달린 행적을 누군가(스마트폰 앱)가 바라보고 이미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낯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달리기도 누군가의 시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자영’은 그때 알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잠시 살펴보고 언급한 탐구 대상은 생식과 같은 ‘기능’으로서의 몸이 첫 번째다. 그리고 두 번째는 ‘차이’로서의 몸이라고 해보겠다. ‘자영’의 몸은 왜 ‘현주’의 몸과 다른가. 차이는 곧 변화다. 고시 공부 말고는 하는 게 없었던 사람의 몸과 달리기를 7년 넘게 한 사람의 몸이 다르다는 건 러닝 동호회 멤버 ‘민호’(최준영)가 후반부 ‘자영’과의 섹스 신에서 말하는 “노력한 만큼 몸에 변화가 나타난다”라는 것의 증명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사람의 몸에 기능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생활환경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서 타인과 구분되는 나만의 몸을 갖게 된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예컨대 ‘현주’와 정확히 똑같은 기간 동안 달리기를 했어도 전혀 판이한 생활환경에서 사는 여성의 몸은 ‘현주’와 같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유전자 등의 차이로 인해 키와 같은 신체 조건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이런 차이는 ‘아워 바디’로 ‘자영’과 ‘현주’를 함께 지칭한다 해도 ‘현주’가 죽고 난 뒤 그가 남긴 사진을 따라 ‘자영’이 같은 자세를 취하여 본다고 해도 둘이 서로 같은 몸을 가질 수는 없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몸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겠다. 어째서 그는 나와 다를까 하는 궁금증을 영영 안고서 말이다.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자영’이 다년간 고시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중학교 동창이 대리로 있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다는 설정은 달리기와의 비교에 알맞아 보인다. ‘현주’와 함께 대회에 나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자영’의 사진을 엄마는 한동안 바라보지만 이내 “달리기에 집중할 정신으로 뭐라도 했겠다”라고 말한다. ‘뭐라도’는 물론 그 시간에 공부와 같은 ‘현실적인’ 것을 더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지극히 실리적인 판단이 개입된 말이고 이는 엄마뿐 아니라 ‘자영’에게 처음 일자리를 주선해준 ‘민지’(노수산나)의 관점과도 비슷하다. (후에 ‘민지’는 “부럽다 너, 현실 감각 없이 사는 거.”라고 말한다.) 요컨대 <아워 바디>는 달리기를 열심히 한다고 ‘자영’이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듯이 ‘자영’이 ‘현실 감각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장면들을 자주 개입시킨다. ‘자영’의 행동에는 그래서 종종 ‘왜’가 결여돼 있거나 희미하다.


그렇다면 <아워 바디>가 육체를 다루는 시선과 탐구의 방향이 얼핏 모호하게 보이는 것은 영화 속 여러 인물들이 말하는 ‘현실 감각’에 ‘자영’이 얽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영’과 ‘현주’의 관계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그럴 여지가 생기는데, 두 개의 장면 때문이다. 첫 번째는 사고로 ‘현주’가 죽은 뒤 모로 누워 있는 ‘자영’의 방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현주’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현주’는 ‘자영’에게 다가가 옆으로 나란히 눕는다. ‘자영’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현주’의 등을 아래에서부터 손으로 쓸어 올린다. 이때 영화에서 ‘자영’의 손의 움직임만큼이나 부각되는 건 ‘자영’의 손과 ‘현주’의 등이 접촉하는 순간 피부와 피부가 닿아서 만들어지는 마찰음이다. 이 소리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고 ‘현주’가 눈을 뜨는 순간 끊긴다. 두 번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앞서 ‘현주’와 술을 마시며 하던 대화 중 언급되었던 대로, ‘자영’은 고급 호텔 방에 가서 비싼 룸 서비스를 시켜 먹은 뒤 햇살이 비치는 소파에 홀로 눕는다. 이때 자위행위를 하는 ‘자영’의 모습에서 도드라지는 것 역시 ‘자영’이 자신의 몸을 쓸어내릴 때 발생하는 소리다. 이 장면 역시 영화는 그리 오래 보여주지 않고, 창밖을 보는 ‘자영’의 표정이 곧이어 <아워 바디>의 마지막 컷이 된다. 이때 ‘자영’이 누워 있는 모습과 방향은 앞서 죽은 ‘현주’가 방에 들어왔을 때 ‘자영’이 누워 있던 것과 거의 일치한다. 다시 말해 ‘현주’가 누워 있던 모습과 방향과는 여전히 반대된다. <아워 바디>의 중반과 마지막에 들어간 이 두 장면은 영화 전체를 달리 보이도록 한다.


돌이켜보면 ‘현주’는 첫 등장부터 다소 현실을 벗어난 듯한 면이 있었다. 계단에 주저앉은 ‘자영’이 비닐봉지 안에 든 캔 맥주를 꺼내면서 다른 캔 하나를 봉지 바깥으로 흘린 바로 그 순간 나타난 ‘현주’는 구르는 캔 맥주를 정확히 집어 들어 ‘자영’의 앞에 ‘도착’한다. ‘자영’은 전체 계단의 절반 이상을 올라와 앉았는데, 일정 부분 점프 컷이 있음을 감안해도 캔 맥주가 굴러간 시간과 계단 한 칸씩을 떨어질 때마다 낸 소리에 비해서 ‘현주’가 그것을 주운 위치는 더 아래로 보이며 ‘현주’가 올라온 계단의 수 역시 캔 맥주가 구른 만큼보다 더 많아 보인다. 여기서 계단이 몇 칸이고 그만큼을 뛰어오르는 데 정확히 몇 초가 걸렸으며 캔 맥주 이동 속도가 얼마였는지 같은 것을 계산하는 일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현주’는 계단 한가운데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현주’의 발소리는 평지를 달리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소리가 아니라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었던 발소리처럼 들린다. 캔 맥주를 손에 받아 든 ‘자영’의 어리둥절한 표정과 계단 위쪽으로 사라지는 ‘현주’의 멀어지는 발소리가 겹쳐지는 바로 그 시점이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 시점이라는 점도 중요하겠다.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두 번째로 ‘현주’가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앞선 첫 등장에서와 거의 비슷한 음악이 쓰이며 평지라는 점을 제외하면 장면의 톤이 일관되게 이어진다. (‘자영’은 이때도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현주’가 세 번째로 등장할 때서야 ‘자영’은 무작정 그를 쫓아가기 시작하고 신발 끈이 풀린 채 울고 있는 ‘자영’의 모습을 ‘현주’도 그제야 제대로 바라본다. ‘자영’이 달리기 시작하기 전의 ‘현주’는 그렇게 비현실적인 이미지처럼 존재했고 ‘자영’이 따라 달리고 나서야 ‘현주’는 ‘자영’과 관계하는(함께 달릴 것을 제안하는) 사람이 되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듯한 ‘현주’는 ‘자영’의 시선에서 여러모로 신비로운 인물이다. 집 거실에는 자전거 운동 기기와 작은 소파 정도를 제외하면 ‘곧 떠날 사람’처럼 가구가 없다. 술을 실컷 마시기 위해 운동한다며 직접 만든 술을 ‘자영’에게 권하고, 옷을 최소한으로 입은 채 오피스텔 복도에 쓰레기 봉지를 버리러 나갈 때는 달리던 ‘현주’를 ‘자영’이 처음 두 번 만났을 때와 유사한 톤의 음악이 삽입된다. ‘화영’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도중 ‘자영’이 우연히 본 ‘현주’는 검은 옷을 입고 이미 죽음을 예비한 것처럼 초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현주’가 죽던 날 밤, 남자 동료들은 멀찍이 앞서 나가고 ‘자영’의 뒤에서 뛴다던 ‘현주’는 어느새 ‘자영’과 거리를 두고 앞서 나간다. 차에 치이기 전 잠시 멈춰 선 채 뒤돌아 ‘자영’을 응시하는 ‘현주’의 표정은 평소 달리기를 함께하며 시간을 보내던 ‘현주’의 일상적인 모습과는 이질적으로 대비된다.


갑자기 나타나고 갑자기 퇴장하는 ‘현주’는 ‘자영’에게 딱 달리기라는 세계(그리고 ‘러너스 하이’라는 동호회의 세계)에 적당히 입문하고 적응하도록 만드는 역할만 수행하고 사라지는 캐릭터다. “안 죽을 것 같은” 캐릭터로서 ‘현주’가 그렇게 죽고 난 뒤 영화는 다시 ‘자영’만 빼면 모두 현실 감각을 되찾은 것처럼 ‘자영’의 직장 내 문제들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현주’의 잔영은 남는다. ‘자영’은 “서른 살 많은 남자랑 하면 어떨지 궁금하다”라고 했던 ‘현주’의 말을 실천하듯 부장과 성적 접촉을 하고 그에 앞서 달리기 앱에서 ‘현주’의 개인 페이지에 남아 있는 그의 지난 경로를 보며 ‘현주’의 흔적(기운)을 찾듯이 따라가면서 달린다. ‘현주’가 없는 집에서 ‘현주’가 만든 술을 마시며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현주’의 소설 원고를 읽는다. ‘현주’가 쓴 소설이 무엇에 관한 것이며 어떤 내용이었을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지만, ‘자영’은 마치 ‘현주’가 자기 삶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현주’가 거기 여전히 있는 것처럼, 아니 자신의 삶(몸)이 ‘현주’의 삶(몸)이기도 한 것처럼 ‘현실 감각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선택한다. 그것이 앞에서 이야기 한 호텔 방에서 일어나는 장면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화영’이 다시 달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달리는 ‘현주’를 보며 처음 ‘자영’이 자기도 달리고 싶다고 생각한 것처럼. 영화가 끝날 무렵의 ‘자영’-‘화영’의 관계는 영화 중반까지의 ‘현주’-‘자영’의 관계와 비슷해지는 것이다.


맨 처음 언급한 ‘모호함’이라는 건 육체를 대하는 시선의 모호함이 아니라 ‘현실 감각’과 ‘판타지 감각’ 사이의 줄타기에서 오는 균형 때문인 것 같다. 월세 꼬박꼬박 낸다고 사람 구실 하는 건 아니라고 했던 ‘자영’의 엄마는 후반부의 식사 장면에서 약간 태도가 바뀐 듯 “조금만 더 있으면 (고시 공부를 계속했다면) 날개 달고 훨훨 날아갈 것 같은데 안타까워서 그런다”라고 말한다. 여기서도 엄마는 ‘자영’이 다시 고시 공부를 했으면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자영’의 길을 굳이 막지는 않는다.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요컨대 ‘자영’은 처음에는 단지 몸의 기능을 탐구하는 사람이었다면 ‘현주’와의 관계를 계기로 조금씩 생리적 기능을 벗어나 차이와 변화를 탐구하는 사람으로 나아간다. 물론 달리기를 통해 건강한 몸을 갖게 되고 조금씩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시선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 ‘현주’의 영향으로 ‘자영’에게 일어난다. 타인들이 말하는 ‘현실 감각’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달리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달리기가 <아워 바디>에서 행해진다. 그래서 ‘자영’이 자신이 앉아 있던 회사 PC를 초기화 한 뒤 나오는 달리기 장면도 육체의 기능을 실감하고 신체적 변화를 가져오는 달리기가 아닌 판타지에 충실한 달리기에 가깝다. PC가 초기화되는 모습 바로 다음 컷에서 ‘자영’은 ‘현주’가 입고 있던 것과 유사한 흰색 트레이닝 복 상의를 입고 있다. 그 뒤 흰 옷을 입고 달리는 사람(의 뒷모습)은 어느새 ‘현주’ 혹은 다른 누군가인 것처럼 바뀌어 있고 ‘자영’은 진한 회색의 옷을 입은 채 달리고 있다. 발소리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소리가 된다. ‘자영’이 흰 옷을 입고 달린 어떤 날과 진회색 옷을 입고 달린 어떤 날을 나란히 이어 붙인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회색 옷을 입은 ‘자영’의 뒤로 죽던 날처럼 검은 옷을 입은 ‘현주’의 모습이 개입하며 이는 하루의 일이 된다. “달릴 때 무슨 생각해?”라고 ‘자영’이 묻지만 ‘현주’로부터 그것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몸 이곳저곳을 훑으며 시작되었던 달리기는 이제 ‘자영’ 혼자의 것이 되었다. ‘현주’는 그래서 “너는?”이라고 되물었고, 이제 ‘자영’은 답을 직접 찾을 차례다.


‘현주’는 원래 야외에서 달리지 않고 러닝머신 위에서 달렸는데 그 이유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영’ 역시 그런 사람이 되었다. 호텔을 나선 뒤 ‘자영’은 아마도 생계와 관계없이 달리기를 계속할 것이고 거기에는 종종 ‘화영’이 동행하겠지만, ‘자영’은 이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달리는 사람일 것이다. 마지막 자위가 공허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몸이 살아 있음과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뚜렷하게 인식한 행위처럼 보이는 이유다. ‘자영’과 ‘현주’ 두 사람의 달리기는 그렇게 ‘자영’ 혼자의 차지가 되었다.


영화 '아워 바디' 국내 메인 포스터

*본 글은 경기영상위원회에서 진행하는 <경기씨네영화관> 영화평론 공모전에 공모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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