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인디포럼' 상영작에 이 영화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안 일과, 7월 '인디다큐페스티발'을 통해 이 영화를 처음 만난 일, 그리고 11월 감독님 초대를 통해 7월과 같은 장소인 인디스페이스에서 16분 정도가 추가된 극장 개봉판을 시사회로 만난 일, 그리고 오늘 인디토크 GV를 통해 영화를 세 번째로 만난 일까지. 지난 몇 개월의 경험과 생각들이 하나의 순간처럼 이어지는 기분이다.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영화제 상영 버전에서 극장 개봉 버전으로 넘어오면서, 엔딩 크레디트에 내 이름이 추가됐다. 영화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지만, 다만 6월에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적었고 7월에는 이 영화가 좋았다고 적었다. 그리고 영화가 참 소중했다고 그 영화를 만든 사람에게 말해주었다. 11월에는 그 영화가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떤 기여 혹은 응원 같은 게 될 수는 있겠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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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언니전지현과 나>의 중반에는 '일랜시아'(1999)와 같은 개발/유통사인 넥슨의 2003년작 '메이플스토리'의 인-게임 화면이 잠시 지나간다. '차원의 도서관' 던전에 얽힌 에피소드와 관련해 '나인하트'라는 NPC가 유저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쓰고 고민하고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해주고 싶다. “누군가는 분명히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당신의 용기, 당신의 선택, 당신의 여정을요.” 내가 그것을 만나게 된다면, 나도 그것을 기억할 것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아직 만나지 못했으나 여전히 내 앞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거나 웅크리고 있을 그 미지의 영화들을 떠올린다. 2020년 가장 각별했던 한국 영화로 내게는 <내언니전지현과 나> 외 다른 영화가 달리 생각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더 많이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시간들이 소중했다고,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2020년 12월 6일, '내언니전지현과 나' 인디토크 @인디스페이스 (김시선, 박윤진 감독)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세 번째로 보면서도 '개발자님은 자신이 청춘을 바쳐 만들었으나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세계를 마주했다. 그곳에 아직도 남겨진 다음 세대를 통해서.' 이 자막을 떨쳐낼 수 없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 개발자의 표정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안경 너머로, 세월의 너머로 마주하는, 자신에게는 지나간 것이 되었으나 누군가에겐 여전히 현재이고 또 어떤 누군가에겐 내일일 수도 있을 그 그래픽과 텍스트들. 서버 한구석 어딘가의 0과 1에 불과할 그 데이터들이, 누군가에게는 고스란히 세월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오늘은 괜히 내 흔적들을 찾아봤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고 길드 카페 게시물로만 응고되어 있는 시간들.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고 싶은가? 그러면 그것대로 좋기야 하겠지. 그런데 내게는 그것들보다도 지금이 더 소중하다. <싱 스트리트>(2015)에서 라피나가 말한 "Happy Sad"라는 게 어쩌면 이런 것일 것 같다. 그때로 되돌릴 순 없지만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다행인 것인지도 몰라.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것처럼. (2020.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