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문학살롱 초고'에서 열린 이원하 시인의 낭독회 행사에 다녀와서 썼던 기록이다.
이원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문학동네, 2020)의 해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 자, 그러니 시집 전체가 아니라 이 시만 읽은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 어떤 마음의 역사가 이 시를 쓰게 하였는지를. 이 웃음 뒤에 어떤 세월이 있으며, 이 아름다운 경어체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를. 시집은 여기서 끝나고 그는 계속 가야 할 길이 있다. 자연에서 자유로 가는 길, 우리도 그 길 위에 있고, 시는 오로지 그 길 위에만 있다."(신형철,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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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에 좋아하는 시인의 시와 산문을 시인의 목소리로 좋아하는 공간에서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언젠가부터 낭독회나 북토크 등의 행사를 찾기 시작한 건 작품만으로는 그것을 쓴 사람에 관해 다 알 수 없고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섣부르다 믿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오늘 초고에서의 낭독회는 '짝사랑 상담소'라는 테마로 사연자들의 사연을 듣고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인이 처방/소개한 시와 산문을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야기들이 이야기와 만나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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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만 들리게 속으로 외쳤어요 만물이 솟아나는 곳의 반대편은 결실이라고"(「해의 동선」)라든가 "보고 싶다고 말하면 볼 수 있는 게/ 꽃과 해와 달입니다 술 한잔이 생각납니다"(「눈물이 구부러지면 나도 구부러져요」) 같은 시어와 시구들만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그것을 쓴 사람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만난 덕에 시인과 시가 더 좋아지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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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사랑을 하는 사람은 약자가 아니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시 속 여러 수많은 시어와 시구를 겹쳐 떠올리며, 거기 여러 번 끄덕였다. 이런 순간들은 "꽃을 들고 서 있지 않아도/ 내게 밑줄을 그어"(「풀밭에 서면 마치 내게 밑줄이 그어진 거 같죠」)준다. 오늘은 일부러 시집만 들고 갔다. 다음 기회가 생긴다면 산문집의 사인은 그때 받아야지. (2020.10.06.)